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의 존재이유

[목각인형과 달팽이의 집] 부스러기

등록 2009.05.08 13:50수정 2009.05.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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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스러기입니다.

덩이가 헐면 잘게 분리되어 떨어져 버린 존재, 버려지고 잊혀 버리는 존재입니다.

잘게 부스러진 찌꺼기, 바스러질 대로 바스러지고 깨질 대로 깨어진 존재입니다. 매일 작아지는 내 몸을 보면서,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나의 몸을 보면서 나는 늘 슬펐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늘 바스러지고 깨져야만 하나요?"

"결국, 이 세상이 모든 것도 그렇게 된단다. 먼지가 되어 훨훨 날아가지."

"나도 누군가를 위한 존재가 되고 싶은데……."

"이미 너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있단다. 먼지벌레* 같은 것들은 네가 있어 살 수 있지."

"그렇게 작은 벌레를 위한 삶이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다. 더 큰 일을 하고 싶다는 게지."

 

그랬습니다.

비록 지금은 부스러기가 되어버렸지만, 먼지벌레 같은 작은 벌레들의 먹이가 되므로 나의 삶을 마감하는 것은 싫었습니다. 먼지가 되어 버리는 것도 싫었죠. 물론 그 일이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덩이에서 버림받았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슬픔이었습니다.

 

"얘야, 네 안에 들어 있는 슬픔, 분노를 떨쳐 버려야 한다. 그것 없이 너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단다. 사랑만이 너의 존재를 밝히 드러낼 것이다."

"사랑이요? 지금 내 모습을 어떻게 사랑하고, 또 다른 부스러기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죠?"

"사랑, 물린 말 같지만 너를 사랑할 수 있을 때 네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떨어져 버린 존재, 잊혀 가는 존재, 먼지 같은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였지요. 그리고 나 아닌 다른 부스러기들도 늘 혼자였답니다. 그렇게 홀로 떨어져 살아가면서 늘 외로웠지요. 외로움이 커지면 그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서로 더 멀리 떨어져 살아갔답니다. 그렇게 외로움과 슬픔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내 몸은 이렇게 작아지는데 외로움과 슬픔은 내 몸보다 더 커진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예수라는 사나이 앞에 왔습니다.

 

"제 딸을 살려주십시오."

"자녀의 먹을 떡을 개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요."

"옳습니다. 그러나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돌아가라. 네 딸이 낳았다."

 

부스러기의 기적, 그랬습니다.

그 여인은 상아래 떨어진 부스러기 사랑으로 기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나를 돌아보니 여전히 작고,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부스러기 사랑이 기적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작은 내 몸이 작아 보이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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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기 "너희들처럼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이 있어 세상은 존재하는 거런다." ⓒ 위창남

▲ 부스러기 "너희들처럼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이 있어 세상은 존재하는 거런다." ⓒ 위창남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야.'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그 순간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던 슬픔, 외로움이 조각조각 깨어지며 작은 부스러기가 되어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나는 곁에 있는 부스러기에게 다가갔습니다.

 

"너도 보았니?"

"응, 나도 보았어. 참 감동적이지 않니?"

"너, 나를 안아주지 않겠니? 나 너무 외로웠거든."

"나도 그랬어."

 

둘은 꼭 껴안았습니다.

주변에 부스러기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작은 부스러기들은 서로 껴안으며 하나가 되어 꽃의 형상도 만들고, 무지개도 만들고, 사람의 형상도 만듭니다. 먼지로 돌아갈 운명을 타고난 모든 것을 만듭니다.

 

"저게 나였어!"

 

부스러기들은 외칩니다.

그들의 작은 몸 속에 슬픔이나 외로움 대신에 기쁨, 사랑 같은 것들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작은 부스러기들은 갖가지 형상을 만듭니다.

 

"그래, 너희처럼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이 있어 이 세상은 존재할 수 있는 거란다. 아직도 슬프고 외로우냐?"

 

한껏 잔치를 벌인 부스러기들은 자기들보다 더 커진 기쁨 혹은 사랑 같은 것을 마음에 담고 자신들이 떨어졌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먼지벌레, 개미, 새 작은 곤충이나 동물들의 먹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젠 활짝 웃습니다. 부스러기가 덩이가 된 것은 아니지만, 부스러기로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009.05.08 13:50 ⓒ 2009 OhmyNews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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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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