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작 편지북
권영숙
딸의 연애, 독후감, 진로문제까지 '어버이날 선물'에 다 들어있다.큰딸은 5월 5일부터 한달간 저와 남편에게 따로 따로 매일 편지를 썼습니다. 어떤 날은 짜증이 묻어나는 대로, 어떤 날은 흥분돼서, 또 어떤 날은 읽은 책에 대해 느낀 점을, 딸이 준 편지는 매우 다양한 내용이었습니다.
딸에게 사귀자고 고백한 아이의 이야기도 있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딸의 답답함도 있습니다. 편지를 다 읽은 저는 진지하게 고백한 그 아이와 사귀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사귀라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딸에게 "니 나이에 연애를 안하면 언제 할래?"라고 했습니다. 딸은 자기가 남자를 사귀기에 너무 이르답니다. 중3 이면 하나도 이르지 않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제게 "그런데 엄마가 연애를 알긴 알아?"하면서 저를 무시합니다. 아니, 아무려면 마흔을 넘긴 엄마가 십대인 딸보다 연애를 모르겠습니까, 열 명의 남자를 사귀고 니 아빠랑 결혼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딸은 귓등으로 듣습니다. 엄마의 연애실력이 검증되지 않는 것은 다 남편 탓입니다^^
어쨌든 딸의 편지 북을 읽으면서 제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어도 아이는 빛을 향해 나무가 뻗듯 잘 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길아, 너무 고맙다. 이런 선물 처음이야.""그럼 고마워야지.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이야.""응, 그래 다음엔 팔도 아플 텐데 기냥 니 용돈으로 비싼 지갑 같은 거 사줘.""헐? 엄마!!!!! 진짜 엄마 맞아? 다른 집 엄마들은 그렇게 말 안해." "나 실은 너희 엄마 아니야. 옆집 아줌마야~"이렇게 해서 한바탕 딸들과 웃습니다.
난 가식적이지 않아서 고맙다는 편지는 안 쓴다는 해주올해 어버이날은 어떨까요? 큰딸은 작년에 하도 디었는지 아직 전화도 없습니다. 둘째 해주는 아침에 편지를 주면서 말합니다. "엄마, **는 편지를 쓰면서 부모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는 자신이 너무 가식적이래. 근데 난 진심이야. 엄마, 아빠한테 정말 고마워. 딴 집은 한번 말해서 안 들으면 바로 아웃인데 그래도 엄마는 세 번까지는 봐주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