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임꺽정이네,괜찮아, 우린 서민들이니까"

[여행] 평원의 협곡 한탄강 골짜기의 절경 고석정에서 만난 의적

등록 2009.05.16 17:35수정 2009.05.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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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정 넓은 마당의 임꺽정 상 ⓒ 이승철


"어이쿠! 이게 누구야? 우리 앞을 턱 가로막고 나선 험상궂은 저 인물!"
"임꺽정이네, 괜찮아, 우린 다 서민들이니까. 꺽정이가 우릴 해치겠어? 허허허."

지난 13일 오전, 고석정으로 들어가는 광장 한복판에 서있는 험상궂게 생긴 인물상이 우리들의 앞길을 턱 가로막아 모두들 발길을 멈추었다. 임꺽정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바로 조선 명종 때 의적으로 이름을 날렸던 임꺽정이 은거했던 곳이었다.


바위를 깎아 세운 높고 커다란 문설주와 작고 낮은 문설주 사이에 양팔을 벌리고 서있는 임꺽정상은 당시 지배계층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의 이미지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큰 칼을 등에 멘 임꺽정이 양반가의 솟을대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듯한 당당한 기상이 엿보였다.

절경 고석정으로 가는 입구에서 만난 의적 임꺽정

넓은 마당에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주변에 가게들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자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나타났다. 골짜기 양쪽은 깎아지른 절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석정 골짜기는 평지에 솟아 있는 산과 산 사이의 산골짜기가 아니라 평원이 푹 꺼져 내린 협곡골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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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절벽 위 어디쯤엔가 임꺽정의 산채가 있었을 것이다 ⓒ 이승철


이곳 지질형성은 지금으로부터 27만여 년 전 평강의 오리산(462m)에서 폭발한 화산이 엄청난 양의 용암을 분출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이 용암이 흘러내려 평강고원은 물론 철원평야까지 뒤덮어 버렸다. 이 용암들이 층층이 쌓여 현무암층을 이룬 지역이 바로 이곳 한탄강 유역인 것이다.

그 현무암층이 침식작용에 의하여 꺼져 내리고 오랜 세월동안 강물이 흐르면서 형성된 골짜기가 천하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고석정이다. 평강에서 시작되어 이곳을 거쳐 전곡에 이르는 이 골짜기를 추가령 열곡이라고도 부른다.


골짜기에 내려서기 전까지는 이 드넓은 평원에 이런 협곡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이 안 됐다. 그런데 협곡에 들어와서 목격한 풍경은 정말 놀라웠다. 이곳을 처음 찾은 일행 두 사람은 깎아지른 절벽과 굽이도는 협곡의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추가령 열곡이 빚어 놓은 절경의 지질과 형성과정

물이 감돌아 흐르는 건너편에는 바위절벽 위로 불쑥 솟아오른 봉우리가 푸른 숲으로 덮여 있다. 저 봉우리 어디쯤에서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이 돌담을 쌓아 산채를 만들어 놓고 은거하며 한양과 서북지역을 오가는 양반들의 행차나 임금에게 바치는 봉물을 강탈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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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물이 흐르는 고석정 골짜기 ⓒ 이승철


"꼼짝 마라! 나 임꺽정이다. 재물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돌아가겠느냐? 아니면 내 칼을 받아보겠느냐?"

임꺽정이란 이름과 천둥치듯 우렁찬 호령소리 한 마디에 혼비백산한 양반들과 벼슬아치들, 그리고 임금에게 바치는 봉물을 운반하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벌벌 떨며 주저앉고 말았다. 당시 임꺽정의 명성은 그만큼 대단했었다고 한다.

당시 힘없는 농민들과 백성들은 지배계층의 끝없는 수탈과 학정, 부정부패로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극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사농공상의 냉엄한 신분질서 속에서 백정이라는 천민 출신인 의적 임꺽정의 출현은 세상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임꺽정은 도적이었지만 민초들의 삶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악질 관리와 돈 많은 양반들, 지방에서 한양의 왕실과 지위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보내는 봉물들만 강탈했다. 그리고 그렇게 강탈한 재물의 일부를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그는 도적이었지만 '의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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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사이에 작은 섬처럼 솟아있는 바위절벽 ⓒ 이승철


그는 벼슬아치와 양반들에게는 혹시 호젓한 어느 길에서 마주치거나 만날까봐 두려운 존재였고, 힘없고 불쌍한 백성들에게는 억울하고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존재였으며 희망이기도 했었다. 그가 바로 한때 이 고석정 개울 건너 절벽 위에 은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들의 풍류놀이터가 왜 도적의 소굴이 되었을까?

고석정은 풍광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만큼 이곳을 이용한 역사도 그만큼 깊다. 개울양안의 절벽 사이에 솟아있는 바위절벽봉우리 석굴암벽에 시문이 새겨졌던 흔적이 있는데, 이것은 일찍이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때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고려 27대 충숙왕이 정자를 세우고 풍류를 즐긴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옛 왕들이 풍류를 즐기던 놀이터가 도적의 소굴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의적 임꺽정 탓만 할 일이던가. 원인은 잘못된 정치와 제도, 지배계층의 탐욕, 그리고 힘없는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수탈하여 민생파탄을 일으킨 왕실과 지배계층에게 있다.

잘못된 제도와 타락한 권력에 맞서 혼신을 불태웠던 의적 임꺽정은 그러나 그 권력에게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약자인 농민 민중들의 지지와 기대는 너무나 허약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항상 가진자들, 기득권자들의 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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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부분 기둥들이 콘크리트로 세워진 고석정 ⓒ 이승철


"아주머니,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골짜기에 웬 흙탕물이 흘러요?"

골짜기를 둘러보고 있는데 근처에서 장사하는 상인 아주머니가 화장실에 내려온 것을 발견하고 일행이 묻는다. 골짜기엔 정말 거짓말처럼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량도 제법 많은 편이었다.

"북한 지방에 비가 많이 내렸나 봐요. 북쪽에 비가 많이 내리면 이렇게 흙탕물이 흘러내려오거든요, 아니면 요즘 모내기철이라 논바닥을 고른 흙물이 개울로 흘러들었던가."

평소에는 항상 맑은 물이 흘러 주변 경치와 잘 어울리는데 이날따라 흙탕물이 흘러내려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고 아주머니도 거들고 나선다. 그러나 흙탕물이 흐르는 개울이었지만 골짜기 양안에 거의 수직으로 서있는 바위절벽과 절벽 위의 싱그러운 숲이 멋진 절경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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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협곡 고석정 골짜기 풍경 ⓒ 이승철


"저 정자가 고석정인가? 정자는 운치 있고 골짜기 풍경과 잘 어울리는데 정자 아랫부분의 콘크리트 기둥과 구조물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구먼."

정말 그랬다. 이 아름다운 골짜기에 조망이 좋은 정자 하나 없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러나 정자는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리도록 지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의 정자는 아랫부분이 콘크리트로 지어져 있어서 멋진 운치를 많이 손상시키고 있었다. 본래 있던 정자는 6·25 한국전쟁 때 불타버려 지금의 정자는 1971년에 이곳  철원의 유지들이 힘을 합쳐 세운 것이었다.

오랜 옛날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으로 이루어진 지층이 침식작용으로 푹 꺼져내려 만들어진, 평원을 흐르는 아름다운 협곡 고석정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아주 특이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덧붙이는 글 | 고석정 가는 길
*대중교통: 수유리-직행버스-신철원-시내버스-고석정(2시간소요)
*자가운전:서울-43국도-문혜리-223국도-4거리-463지방도-고석정(1시간50분소요)


덧붙이는 글 고석정 가는 길
*대중교통: 수유리-직행버스-신철원-시내버스-고석정(2시간소요)
*자가운전:서울-43국도-문혜리-223국도-4거리-463지방도-고석정(1시간50분소요)
#고석정 #한탄강 #이승철 #철원평야 #의적 임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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