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카페에서 만난 김지현 씨.빨간 재킷을 멋스럽게 차려입고 취업과 꿈에 대해 이야기 하는 모습이 당당해보인다.
이유진
-번역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죠?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원래는 취업을 하려고 했었어요. 부모님께서도 제가 취업하기를 원하셨고, 돈도 벌어야 했고. 또 제 꿈이 원래 소설가인데, 사회생활을 해 봐야 경험도 쌓고 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작년부터 경기가 많이 안 좋아졌잖아요.(웃음) 그래서 취업에 실패를 했죠. 그 후에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도대체 뭘 해야 할까. 2월에 졸업을 했으니까, 아예 취업 쪽으로 나갈 거라면 상반기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년에도 안됐는데, 올해라고 될까? 또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올해는 더 힘들 거라고 하고요. 사실 저는 취업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거든요. 하고 싶은 일까지 포기하면서 중소기업에 취직을 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어차피 돈을 많이 못 버는 건 둘 다 같은데, 이왕 힘들 거라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 는 게 낫잖아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어떤 종류든 '글'쓰는 직업을 갖겠다고요. 그러고 나니까 번역이 딱 눈에 들어왔어요. 그동안 '언어'를 너무 좋아해서 영어공부, 한국어공부를 열심히 해왔거든요. 번역이라면 제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겠다 싶었죠."
-번역이라는 직업이 일을 구하는 데 있어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지는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일 구하시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네. 아무래도 번역일은 대기업 채용과는 확실히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죠. 인맥이나 이런 것들이 중요해요. 그렇지만 저 같은 경우는 오랫동안 웹진에서 필진으로 활동해왔고, 출판․소설 계통에서 꾸준히 인맥을 쌓아왔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예요. 물론 번역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번역에 필요한 훈련을 받을 필요는 있었지만요.(웃음)"
-그렇지만 번역일은 대기업에 비해서 소득이 낮지 않나요?"하하.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저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페이에 대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어요. 워낙 글 쓰는 쪽이 돈 벌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일을 하고보니 수입이 꼭 낮기만 한 건 아니더라고요. 프리랜서라 자기가 시간 관리하기 나름이거든요. 경험 많고, 부지런히 일하시는 분들은 웬만한 대기업 연봉수준으로 벌기도 해요. 그렇지만 저는 아직 초보니까, 저렴하게 살고 있죠.(웃음)"
-그렇다면, 거의 대부분의 20대가 취업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번역의 길로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 현재의 취업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요즘 20대 취업준비생들을 놓고 말이 많죠. '루저문화다, 꿈도 도전정신도 없다, 중소기업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눈만 높아서 실직자인거다'라는 식으로요. 그런 기사나 칼럼을 보면 정말 화가 나요. 오늘날 20대의 현실을 알고나 하는 말인지…. 오늘날의 취업난은 20대가 의욕이 없어서, 혹은 눈이 높아서 벌어진 게 아니잖아요.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벌어진 일을 20대 개인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언론이나 기성세대의 모습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와요.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해주시겠어요?"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눈이 높아서 실직자인거다'라는 비난에 반박하자면, 저도 취업 준비할 때, 왜 대기업만 고집하느냐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잘 안되면 중소기업에서부터 시작하라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서울에서 이름 들으면 다 알만한 대학 다니는 애들이 중소기업에 지원하면 기업에서도 잘 안받아줘요. 좋은 학교 졸업한 학생들은 중소기업에서 경력만 쌓고 나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사실 우리도 지금까지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공부해왔는데, 적은 연봉부터 시작하고 싶지는 않잖아요. 대기업 연봉도 외국에 비하면 크게 높지 않은데, 중소기업이면 더 심하겠죠. 아니, 중소기업에서 시작해도 쑥쑥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만 형성되어 있어도 이렇게 대기업만 고집하게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첫발을 어디에 담그느냐가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 첫발에 따라서 앞으로 사회적인 지위나 생활수준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이런 사회적 분위는 고치지 않으면서 무작정 20대를 비난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김지현씨도 현재 번역을 하시면서 많은 돈을 벌고 있지는 않다고 하셨는데, 중소기업 연봉이 적어서 싫으신 거라면 번역일도 싫어하셔야 되지 않나요?"음, 그건 서로 다른 문제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취업'은 원래 제 뜻이 아니었거든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번역을 하기로 결심한 건 이왕 대기업에 들어가서 돈을 많이 못 벌 바에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또 글도 쓸 수 있고요."
"공무원 교사에만 매달리는 거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