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새의 알
정명희
인터넷을 뒤져 봐도 내 눈으로는 똑같은 새를 찾을 수 없는데 알고 나면 피식 웃음을 흘릴 만큼 익숙한 이름의 새일 것은 틀림없지 싶다. 아무튼, 그 많고 많은 베란다 중에 '새님'께서 우리 집에 알을 낳고 가셨다.
4월 중순쯤 베란다 밖으로 가끔씩 끼룩끼룩 하면서 새가 한바탕 유영을 하기에 그저 창밖이 산이다 보니 새도 보이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갈색 새의 날개가 하도 우아하여 '그놈 참 잘 생겼네, 비둘기보다는 확실히 화려하네'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은 그 녀석이 우리 집 에어컨 실외기가 놓인 곳에 들어왔다가 후다닥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보며 나는 당연히 새가 잘못 날아서 실외기 놓인 난간에 끼어들어오게 되어, '어머나 이일을 어쩐 담?' 하며 부리나케 출구를 찾아 나서다 나에게 들킨 줄 알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날았기에 여기에 끼어들어와서 생고생을 하노?' 하면서 정말 평소에 잘 열지 않던 에어컨 실외기가 놓인 쪽 창문을 열어 살폈다. 그랬는데 열고 보니 세상에, 새알이 네 개나 있지 않은가. 해서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즉, 새는 잘못 날아서 우리 집 실외기 놓인 공간에 끼어들어왔던 게 아니라 알을 놓아두고 수시로 들락거렸던 것이었다.
창밖에서 유유히 한 번씩 날았던 것은 주인집 사람들의 동태를 살핀 것이거나, '내 알을 낳아둔 에어컨 실외기가 놓인 집이 대체 어디야?' 하며 찾느라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웃음) 우좌간, 새가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 모양을 봐야 한다니 살짝 흥분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우리 가족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헝겊이라도 하나 깔아줄까 했으나 아서라 말어라 모른 척 해주는 것이 가장 큰 예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알 구경은 새가 볼일 보러 가고 없을 때 잠시 할 것을 주문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알을 낳아놓고 저대로 놀러 가버린 듯 했는데 어느 날부터 보니 늘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에디슨이 병아리 낳는다며 달걀을 품었던 것이 생각나면서, 하루 이틀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저렇게 늘 품어줘야 되는구나 싶었다. 해서 많이 아는 척은 할 수 없고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문안인사 하듯 한번씩 살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우리를 보는 녀석의 눈빛을 보자면 괜히 미안해졌다. 마치 우리가 지 새끼를 어쩌나 싶은지 알을 꼭 품은 채 고개를 100도도 더 돌려 뚫어질듯한 시선으로 처다 보는 것이 아닌가.
'알았다, 알았어.'
때문에, 최대한 덤덤하게 녀석을 대했고, 시간은 흘렀다. '새는 며칠 만에 부화하는 것일까.' 한번 찾아봐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하였다. 그러다 그제는 밤새 비가 내렸기에 '아니 이 녀석들이 밤새 무사했을까' 걱정이 되어 모처럼 베란다 문을 열었는데, 어머나 세상에, 이미 새알은 부화된 것이 아닌가. '아니 언제 부화되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