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뻔뻔했으면... 바보 노무현

스무살 내게 "약자의 편에 서라"고 말해준 국회의원 노무현

등록 2009.05.25 18:43수정 2009.05.2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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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대 초. 꽤 큰 학내(덕성여대) 집회였다. 평소 학교 문제와 사회 문제에 발언을 많이 하시는 교수님이 개악된 사학법의 적용을 받아 재임용에 탈락을 했고 그 문제로 학내에는 교수님 지키기 투쟁이 꽤 길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투쟁기금 마련과 이 일을 알리기 위한 대규모 문화행사 겸 집회가 열렸고, 당시 학보사 문화부 기자였던 나는 집회 취재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다.


행사가 시작되고 참석한 재야 문화계 인사들 소개가 있었다. 그때 갑자기 단상에 초대하지 않은 한 사람이 나타났다. 노무현이었다.

"아니, 왜 저는 초대해 주시지 않은 겁니까? 그래서 이렇게 표 사서 찾아왔습니다."

예의 그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인사를 하며 직접 산 티켓을 흔들고 있었다.

"지금 이 싸움은 한 학교의 싸움이 아닙니다. 사회구조의 모순 속에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단기전이 아닌 사회 변혁을 향한 큰 싸움 속에서 이해하세요."

현직 국회의원치고 꽤 과격한 발언이었다. 당시 그는 잘 나가는 국회의원이었다. 인권변호사에서 제도권 정치로 들어온 청문회 스타였고, 특유의 소신있는 행동과 열정적인 행동으로 뉴스의 중심에 자주 섰던 정치인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 대학교의 문화집회에(물론 당시 사학법 개악은 작은 문제가 아니었고 이후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어 부패할 대로 부패한 사학법에 칼을 댔고 사학계의 기득권층과 부단히도 부딪쳤다) 스스로 찾아오다니 참 특이했다.

대학 문화집회에 자진해서 찾아온 국회의원 노무현


그때 단상에 나타난 노무현을 보고 나는 열광했다. 평소 노무현의 행보를 보며 그가 보여주는 감동적인 연설과 약한 자에 편에 서는 모습을 보고 은근 '팬'이 되었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제도권 정치인이었지만!

집회를 마치고 총총 학교를 빠져나가는 그를 잡았다. 물론 학보사 기자로 공식적이지만, 사심 가득한 인터뷰 요청이었다. 하지만 사적으로 찾아온 자리라며 극구 거절했고 수행원들이 가로막았다. 그래서 이번엔 사적으로 몇 가지 물을 것이 있으니 시간을 내주셨으면 좋겠다고 청했다(지금의 나 같았으면 못했을 텐데, 그 시절 나 꽤 당돌했네).

"그럴까요? 그럼 차 있는 곳까지 슬슬 걸으면서 얘기 나누죠."

햇병아리 학보사 기자의 청에 그는 그렇게 기꺼이 응해주었다. 그 가을 밤, 나는 그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현안이 되고 있었던 사안에 대해 물었을 때,

"그러면 노동자, 농민, 철거민들은 다 죽으라는 말입니까? 그건 그분들에게 무기없이 전쟁에 나가 다 죽으라는 것과 똑같은 말입니다."

내가 너무나 원하는 대답이었지만, 현실 정치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노무현이었기에 가능한 대답이었다.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별로 기억나는 것은 없다. 단지 얼마나 시간이 빨리 지나갔는지, 함께 대화 나누었던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만 기억에 남을 뿐.

하지만 당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 지독히도 열병을 앓고 있던 나에게 "정의롭게 살라"고, "약자의 편에 서라"고 어깨 두드리며 해준 이야기는 마음에 남아 있다. 아마도 얼굴 가득 여드름을 안고 삶을 고민하던 젊은이에게 말 한 마디로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었을 것이리라. 마지막 악수를 나눴던 두툼한 그의 두 손은 참 따뜻했었다.

환호하고 실망도 했지만, 조금 더 뻔뻔했으면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200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그날, 그는 모든 축하 행사를 마치고 명륜동 자택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표를 던진 진보정당 대표는 고배를 마셨지만, 그래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서 참 좋아!" 이러며 사람들과 술 한 잔 하고 기분좋게 비틀비틀 집으로 들어오던 길, 같은 동네에 살았기에 골목길에서 그의 차와 만난 것이다.

차창 문을 활짝 열고 부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가던 길을 멈춰 서고 환호성을 지르며 열렬히 박수를 보내주었다.

'아저씨, 저 기억해요? 멋져요! 앞으로 5년을 기대할 게요!'

물론 그 5년은 순탄지 않았다.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할 때 실망했고,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할 때 내 마음 속에서 조용히 그를 보냈다. 그러며 생각했다.

'그냥 인권변호사 하지, 그냥 재야정치인으로 남지.'

그런데 대학생이던 내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주었던 그가 정치하는 멋진 아저씨였던 그가 떠나버렸다. 짧은 유서 한 장 달랑 남기고. '책도 읽지 못하고 글도 쓰지 못했다'는 문장에서 숨이 턱 막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수천억 돈을 받고도,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청와대에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왜 그가 떠나야 하는지. 그가 조금 더 뻔뻔했으면 좋았을 텐데. 바보 노무현. 

ps. 엄마가 조계사에 가자고 한다. 어디에서라도 아저씨 가는 길에 인사는 해야겠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바보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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