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서 봉하마을에 자원봉사 왔어요"

미국 유학생 박지영씨, 25일 귀국해 장례식까지 활동

등록 2009.05.27 09:52수정 2009.05.3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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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미국 유학생 박지영씨가 26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앞에서 추모객들을 위해 방명록 작성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미국 유학생 박지영씨가 26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앞에서 추모객들을 위해 방명록 작성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미국 유학생 박지영씨가 26일 저녁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 앞에서 추모객들을 위해 방명록 작성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박지영(36)씨. 2006년부터 미국 보스턴에 살고 있다. 사랑스런 부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15개월 된 아이와 산다. 한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던 그는 지금 버지니아에 있는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23일(현지 시각 22일) 오후 그는 가족들과 쇼핑을 다녀왔다. 무심코 튼 미국 전국라디오 방송(NPR)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미국 라디오가 알려준 것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비행기 타고 봉하마을 도착

 

믿기지 않았다. 곧바로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사실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보스턴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로 갔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분향소라도 만들기로 했다.

 

'케네디공원'에 노 전 대통령의 사진과 양초, 태극기를 갖다 놓았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분향소가 미 보스턴에 마련된 것이다. 분향소 마련을 준비하던 박씨는 노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또 다른 일을 준비했다. 바로 한국행 비행기표 구입이었다. 다행이 김해공항에 도착하는 좌석을 구했다.

 

"봉하마을에 가겠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집사람한테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곧바로 짐을 챙겨 비행기에 올랐다."

 

김해공항에서 그는 곧바로 택시(비용 5만 원)를 타고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그 때가 25일 밤 9시경. 자원봉사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마을 입구에 접수창구가 있어 곧바로 신청했다. 짐 꾸러미를 사무실에 맡겨 놓은 뒤 조문부터 했다.

 

이때부터 자원봉사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는 26일 오전까지 방명록 안내와 촛농 제거, 쓰레기 줍기 등의 활동을 했다. 인근 찜질방에 가서 잠시 휴식한 뒤 이날 오후 다시 봉사활동에 들어갔다.

 

무엇이 그를 미국에서 봉하마을까지 오도록 했을까? 박지영씨한테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느냐고 물었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가 다니던 대학에서 후보 초청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가 노 전 대통령한테 질문을 던진 것.

 

그가 던진 질문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기 위해서는 후보가 단일화 되어야만 이길 수 있을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박씨는 "당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답변을 들었는데, 솔직하고 사심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인상이 매우 깊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분의 희생으로 우리 사회 발전하길"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재직시 잘못한다고 할 때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있으면서도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조사는 제대로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객관성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검찰은 수사와 관련해 언론에 공개했는데, 모욕을 주기 위해 최대한 동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사모'냐고 물었다. 대답은 '아니다'였다. 그는 "노사모에 대해서는 알지만 회원은 아니다"면서 "여기 자원봉사자들은 순수한 시민들이 많고, 밤을 새우거나 가정 일도 잠시 미루고 와서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구름처럼 몰려드는 방문객들을 향해 "서명하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는 노 전 대통령이 애를 쓰는 것을 국민들이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문 인파를 본 그는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를 걱정했다. 그는 "한국사회가 방향을 잃을까 걱정이다"며 "젊은 세대는 민주주의에 대해 귀를 닫아 버린 것 같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지는 상황을 보면서, 한 분의 희생으로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는 장례식이 다 끝난 뒤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는 조문객을 향해 역사적인 현장을 방명록에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안내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방명록의 기록과 같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 그의 가슴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어떤 선물'을 안고 갈 것이다.

2009.05.27 09:52ⓒ 2009 OhmyNews
#노무현 서거 #자원봉사 #박지영 #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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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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