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에 만난 노무현 변호사는 "반칙의 정치는 용서할 수 없다"며 이인제 당시 신한국당 후보의 경선불복을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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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17세기 초에 창조한 소설 속 인물이다. '무모함'의 대명사로 자주 쓰인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를 상징하기도 한다. 변할 것 같지 않는 현실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상주의자 말이다.
내가 97년 10월에 만난 '노무현 변호사'는 분명히 그런 의미를 가진 돈키호테였다. 그는 반칙의 정치와 지역주의 정치가 판을 치는 한국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았다. 그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정직한 정치를 통해서 성공하는 모범을 보이고 성공하는 모범을 통해서 대중의 민심이 변했음을 정치인들에게 경고해주고 싶다. '도대체 돈키호테처럼 현실적 감각이 없는 놈이 대중적 지지를 받아 성공한다', 나는 그 하나의 모델이 대중적 의식을 바꾸고 정치인의 의식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내 소망은 타협하지 않고 도저히 현실적이지 않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이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80년대 젊은이들의 새로운 정치입지를 열어가는 데 커다란 돌파구가 될 것이다." '더러운 마루'와 '더 더러운 걸레'의 비유월간 <사회평론 길>이라는, 좀 '레프트'(left)한 잡지의 2년차 기자였던 나는 97년 10월 6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위치한 도렴빌딩에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났다. 그의 나이 52세. '좌희정'으로 불리우는 안희정 현 민주당 최고위원이 '우리들'이라는 간판을 달고 그의 곁을 지키고 있을 때다.
당시 노 변호사는 '3김 정치'에 가장 비판적인 정치세력이었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대선국면에서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말해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노 변호사의 '독자출마' 발언은 다소 '돌발적인' 것이었다. 본인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했는데 다분히 '통추' 일부의 논의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라고 '돌발성'을 인정했다. 다만 그는 '독자출마' 발언을 통해 두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다.
'이인제 후보는 세대교체론을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
'진정한 세대교체란 무엇인가?'
먼저 노 변호사는 "이인제 후보는 세대교체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를 아주 직설적으로 풀어놓았는데, '더러운 마루(한국 정치)와 더 더러운 걸레(이인제)'의 비유가 대표적이었다.
"3김 청산, 세대교체라는 말을 문자로 해석하지 말고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뜻으로 해석하면 바로 음모와 반칙, 야합 등 비민주적이고 부도덕한 정치풍토를 바꾸자는 게 세대교체 아닌가. 그런데 자기 스스로 3김 정치의 전철을 똑같이 밟아 나가면서 3김 청산을 얘기하면 정치의 구태가 청산되겠는가. 마루가 더럽다고 걸레질을 하는데 걸레가 더 더러우면 마루가 깨끗해지는가?"노 변호사는 이인제 후보의 경선불복과 같은 '반칙의 정치'가 한국 정치를 '불신의 정치'로 만들었다고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세대교체'는 '불신의 정치'를 '신뢰의 정치'로 바꾸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그가 내세운 '정치인의 자질론'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보수냐 진보냐 지역주의냐 하는데 가장 중요한 틀이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정치는 믿을 수 없다' '정치인은 거짓말쟁이다' 이런 것이다. 이런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것이 한편으론 추상적이긴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거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지도자, 사심이 없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정치인의 도덕성이라는 것은 정직성과 공정성이다. 거짓말을 하지 말 것, 공정할 것, 자기 욕심 때문에 공적 이익을 희생시키지 말 것-공평무사. 그 다음엔 성실할 것. 자리만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맡은 바 책무를 성실하게 하는 모습, 이것이 정치인의 자질에 또 중요한 거다. 이것은 진보냐 보수냐 하는 것 이전의 것이다. 역량이 있고 없음, 역량이 높고 낮음, 진보와 보수 이전의 것이고 이것이 갖추어져야 할 기본이다." DJ를 향한 애증...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정치적 원한이 있다"
▲노무현 변호사는 "'돈키호테처럼 현실적 감각이 없는 놈이 성공하는 모델이 대중과 정치인의 의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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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통추'는 대선 전략을 놓고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당시 개혁·진보진영에서는 '정권교체론'이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추는 쉽사리 이에 동참하지 못했다. DJ(김대중)를 향한 애증 때문이었다. 특히 노 변호사의 눈에는 DJ의 정계 복귀와 신당 창당은 또다시 한국 정치를 황폐화시키는 '반칙의 정치'로 보였을 게 분명하다.
"지난 번 선거 때 '국민회의'에서 자기들이 분당하면서 이철 의원에게 그 책임을 묻고, 안나가려는 유재건씨를 어거지로 내보내놓고, 거기서 나온 전략이 이철 의원을 부정축재자로 모는 것이었다. 동명이인의 재산세 문건을 가지고 이철 의원을 부정축재자로 몰아서 침몰시켰다. 제정구 의원은 박광태 의원 측근에게 의총 자리에서 멱살을 잡힌 사람이다. 그게 정치인가. 깡패의 폭력이지. 김원기 대표 하나 떨어뜨리려고 DJ가 부인까지 내세워 정읍을 누비고 다니지 않았나. 김원기 대표를 죽이기 위해서 벼랑끝 정치를 했다. 그러니 지금 얘기가 되겠는가. 그 정서를 얘기하는 것이다. 정치를 크게 내다보고 그래도 '나라의 정치가 뭔가 달라지기 위해서 정권교체가 돼야 하지 않느냐'라는 공적 명분의 힘이 있는가 하면, 공적 명분에 가기를 굽히려고 해도 고개가 안숙여지는 그런 고통스러운 현실이 있다. 가슴에 비수처럼 와 꽂히는 정치적 원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가 이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노 변호사는 '세대교체'와 '정권교체'를 동시에 이루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97년 대선지형상 이 두 개의 역사적 열망이 동시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 역시 통추의 분열을 예감하고 있었다.
"통추 내부의 논의가 정권교체 쪽으로 합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여진다. DJ에 대한 거부 정서 같은 것 때문에 합류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정권교체에 동의할 때도 미래에 대한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자는 의미에서 우리 통추가 세대교체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추 내부가 정권교체라는 깃발을 들자고 할 때 합류하기 어려운 정서들이 있고, 그러면 통추가 찢어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 상실이 얼마나 크겠는가."노 변호사의 불안한 예감대로 통추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걸었다. 그와 인터뷰 한 지 한달여가 지난 11월 13일 그를 비롯해 김원기·김정길·원혜영·유인태·박석무 등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반면 제정구·김홍신·이철·홍성우 등은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묘하게 '지역주의 연합'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DJP연합이 성사된 이후였다. 그는 당 지도부인 부총재에 임명됐고, '정권교체 공신'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가슴에 비수처럼 와 꽂히는 정치적 원한이 있다"며 정권교체 깃발 앞에서 머뭇거리던 노 변호사는 자신의 정치세력을 해체시켰던 DJ와 국민회의를 선택함으로써 5년 뒤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노 변호사는 집권한 직후 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다. 이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민주당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12년 전 '신뢰의 정치'를 그토록 강조했던 그는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인터뷰 어록 "정치권 대 비정치권의 전선이 가장 심각하다" |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전선이 무엇인지 아는가? 정치권 대 비정치권의 전선이 가장 심각한 전선이다. … 지금 다른 전선은 사람들 마음 속에 없다. 민주노총도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노동자들에게만 계급전선이 있고, 나머지는 지역주의 전선에 서 있다고 본다. 영남의 노동자와 호남의 노동자가 전혀 다르지 않는가. 그 지역주의 전선 위에 정치 대 비정치의 전선이 있는 거다. 이걸 하나하나 깨나가야 한다."
"비록 적장이라도 훌륭하면 살려주고 키워주고 그런 멋있는 정치를 한번 했으면 좋겠다. 나는 나와 역사의식을 함께 하는 한에서 동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제일 존경한다. 그리고 어떤 시대의 가치에 대한 판단을 달리해서 상대쪽에 가 있더라도 그가 정정당당하고 훌륭하고 탁월한 적장이면 적장으로 아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익을 좇아서 옳은 것을 훼손한 일이 있는가? 적어도 굵직굵직한 정치적 경륜에서 그런 건 없다. … 그런데 내가 일할 장은 없었고 싸울 장만 있었다. 즉 힘겹게 힘겹게 저항하고 싸울 장은 있었지만 건설의 장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건설의 망치, 건설의 장만 주어진다면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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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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