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5일 내내 울었어"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그녀도 통곡했습니다

등록 2009.05.27 16:51수정 2009.05.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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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집 아줌마는 우리 작은 애가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이유는, 그녀가 '막말의 대가'기 때문이지요. 이 대목에서 한바탕 웃어야 했습니다. 아줌마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가 막말을 너무 잘해서라니? 아마 자신도 아줌마처럼 거침없이 막말을 내뱉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어제 오후 난 막말의 대가이자, 우리 작은 애가 존경하는 인물인 앞 집 아줌마를 만났습니다. 오후에 마트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집 앞에서 열무를 다듬고 있더군요. 마침 시간도 많고 심심하던 터라 집에 가서 칼을 들고 나와 그녀 옆에서 열무 다듬는 걸 도와주면서 막말의 대가인 그녀가 바라보는 현 시국을 경청했습니다.

 

"나  5일 내내 울었어."

 

최근 사람들 만나서 하는 첫 마디가 노무현대통령 서거에 관한 안타까움이라 이 얘기를 꺼내면서 과연 아줌마가 무슨 말을 할까, 기대했는데 아줌마의 대답은 좀 뜻밖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줌마는 노무현 대통령 아들인 노건호씨에 대해서 신랄한 비평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 보니까 모가지가 뻗뻗한게 감옥에서 한 10년은 썩어야 되겠더라."

 

노건호씨가 수사를 받으러 나오면서 보인 모습이 아줌마에게는 시건방지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상황 보다는 그냥 텔레비전에 비친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고 독설을 가차 없이 날리던 아줌마입니다. 수사 받으러 나온 걸 보면 죄인인데, 그렇다면 기가 죽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아줌마의 생각이었던 게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에게 이렇게까지 독설을 날리던 아주마라 난 그녀가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5일 내내 울었다는 말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전의 독설로 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감정도 별로 좋지 않은 걸로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사람이 자기가 욕했던 사람을 위해서 5일이나 울었다는 게 좀 납득이 안 갔던 것입니다.

 

아줌마는 유서 때문에 울었다고  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유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전부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했습니다. 유서를 읽으면서 아줌마는 비로소 다른 한 사람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텔레비전에 유서가 나올 때마다  아줌마는 울고 또 울었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전 대통령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에 공감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줌마는 요즘 여러 가지 문제로 좀 사는 게 복잡하고 울고 싶었습니다. 아줌마가 주업으로 삼는 주식은 연일 쪽박 차고 있고, 돈 백 만원 들여 비싼 과외를 시킨 막내아들의 중간고사 성적은 돈이 아까울 정도로 신통찮고, 정년을 얼마 안 남긴 남편의 진로도 걱정되고, 그래서 사는데 막막함을 느끼고 있던 아줌마에게서 텔레비전에서 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는 딱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끄집어낸 것처럼 공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전  대통령의 서거에 통곡을 했던 것입니다.

 

아줌마는 분명 이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비리가 연일 언론에 보도될 때 전 대통령을 욕했고, 또 앞선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다고 한 걸 보면 분명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일처럼 울고 또 울었습니다.

 

지지자였든 아니든 지금은 누구나 울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람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그의 진실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진실한 모습을 보였고, 또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진실한 언어기에 사람들 마음을 파고들었고, 그래서 우리 앞 집 아줌마 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 비지지자도 울고 또 울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9.05.27 16:51 ⓒ 2009 OhmyNews
#노무현대통령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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