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반대, 노무현 지지자와 함께 하고 싶다

23일 만찬회장과 봉하 분향소, 엇갈린 운명들을 떠올리며

등록 2009.05.30 16:15수정 2009.05.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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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재임 중 그에게 바랐던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가 어렵게 결단하고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성사, 또 하나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금개혁 이었다. (···) 이 중 적어도 그가 주도한 한·미 FTA만큼은 조속히 국회 비준을 마무리해 그의 외교경제적 식견을 기릴 수 있게끔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다.

 

- '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노 전 대통령이 결단했던 한·미 FTA 비준 서둘러야'

<중앙일보> 5월 25일자.

 

5월 23일 오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유럽연합 통상담당집행위원장과 자유무역협정을 논의하는 회담을 진행했다. 그는 이날 열린 EU 대표단과의 만찬회장에도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는 김현종 삼성전자 사장도 있었다. 김종훈씨와 김현종씨는 지난 정부 시절 한미FTA의 선봉에 선 인물들이다. 절대적인 고독 속에 세상을 등진 전 대통령과 여전히 이너서클의 파워를 구가하고 있는 그들의 운명은 그날 완전히 엇갈렸다.

 

참여정부 초기 경제개혁의 상징적 인사였지만 개혁의 후퇴에 사랑하는 정치인을 등졌던 이정우, 정태인씨는 그날 급히 봉하마을로 내려갔던 모양이다. 운구를 맞이하는 행렬 그 왼편에 이정우씨가 보인다. 정태인씨는 진보신당 게시판에서 노건호, 노정연씨의 울음에, 작은 것들이 큰 승부에 희생당하는 생각에 화가 난다는 심경을 밝혔다. 

 

소위 진보개혁파들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린 절대적 계기는 두가지로, 이라크파병과 한미FTA였다. 이 사건들로 인해 김선일과 허세욱이라는 희생자가 나왔고 시민사회가 몸살을 앓았으며 집권여당 내부에서도 전선이 그어졌다. 그래서인지 이에 비해 새만금강행, 대연정 파문, 황우석사태 등은 매우 소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노 전 대통령도 이라크파병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역사에 나쁘게 남으리라는 예감을 내비치기도 했었다. 한국사회 구성원 대다수도 그랬다. '명분이냐 실익이냐'라는 질문엔 이미 침략전쟁동조는 그릇되었다는 가치판단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한미FTA는 미스터리다. 어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이런저런 사상적 한계를 논했고 관료-재벌의 특권동맹에 포위되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진단을 내렸지만 쉬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소수의 어떤 이들은 이라크파병과 마찬가지로 남·북·미관계를 의식한 결정이었으리라 추정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 대통령의 결심은 마치 베트남파병 당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선제적이었고, 이라크파병 당시의 곤혹스러움도 배어나오지 않을 정도로 확고했다. 필자도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민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심사를 이해하려 애써보기도 했다. 동북아균형자론에 깔린 발상이 'FTA허브론'으로, 미국 뿐 아니라 EU, 중국, 일본과도 FTA를 맺음으로써 사방의 바람을 동시에 맞으면 쓰러지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변이된 것은 아닌가 하는 어슴푸레한 추측도 가졌다. 하지만 조항을 아무리 들여봐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은 추후에 다시 논의하는 '빌트 인 아젠다'에 갇혔다. 협상이 잘 되었다던 자동차·섬유 부문도 허점투성이었다. 자동차 부문에서는 한국의 비관세장벽이 대거 헐렸고, 다수의 섬유 품목도 한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할 지경이었다. 막았다는 쌀개방은 어차피 협상의제가 아니며 몇해 지나 전면적으로 이뤄질 예정이었다. 서비스시장의 개방과 개혁을 위해 추진한다던 애초 찬성론자들의 다짐이 협상이 타결된 후 서비스시장의 지나친 개방을 막아냈다는 논리로 뒤바뀐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자본이 간접수용을 빌미로 정부 정책을 훼방하는 투자자-국가직접제소제(ISD), 협정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없게끔 하는 역진불가장치(래칫), 현재유보 등 자유무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상식적인 장치들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필자는 2002년 노무현 후보에 투표한 이후엔 계속 진보정당을 지지해 왔으나, 참여정부가 잘되길 늘 빌었다. 하지만 집권 후반부의 한미FTA는 필자와 같은 시민들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필자는 한미FTA가 이명박 정권의 압승을 불러왔다고, 노 전 대통령은 좌우 모두에게 성토당함으로써 극단적인 외로움에 처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이명박 정권은 참여정부보다 훨씬 무능하고 몰상식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대했으며 한미FTA 비준을 강행했다. 필자는 그에 즈음해 노 전 대통령의 성찰과 해명을, 또 이어질 그다운 승부수를 원했다. 한미FTA와 이라크파병의 전말에 대한 고백을 내심 기다렸다. 그동안 한국정치에서 '현직 대통령'이 누릴 인기의 높이와 기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지만, 퇴임한 전임 대통령이 존경받을 가능성은, 적어도 문민정부 이래 세 분의 전직 대통령에게는 충분히 있었다(가령 김영삼·김대중 두 분은, 물론 시기를 거의 놓친 것 같은데, 지역구도해소와 한반도평화를 놓고 화해하며 힘을 합쳤어야 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기나긴 시간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시장은 인간이 빈곤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통로다. 패자가 예속되지 않는, 비천한 지배 없도록 하는 것이 정치다. 법인세 2% 낮추지 않고 그 돈으로 교육 투자 했으면…. 국회서 도저히 안 돼 법인세를 낮췄다. 예산 구조조정 했지만 교육에서의 소외나 낙오를 국가가 충분한 구제장치를 마련했나. 아니다.

 

5년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경제 성장 부분에 대해선 당당하지만 균등, 복지, 미래잠재력에 대한 투자 부문은 부끄럽다. 복지비 20% 늘린다 어쩐다 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웠다. 지표를 말 안 했지만 그런 논리로 당당하게 비판하는 세력이 없지 않았나. 2030 프로젝트를 하려면 (솔직히) 조세부담률 2∼3% 늘려야 한다. 지금의 조세부담률이 21%인데 24%는 돼야 한다. 그런데 세금 더 내라 말 못 하고 우물우물 물러나고 말았다. 내가 느낀 가장 큰 딜레마는 지지율이 올라야 일할 수 있는데, 일하면 지지율이 깨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점이다. 국가를 합리적이고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데 책임 있게 하고, 밀린 과제 정리하고 기본 틀 만드는 데는 최선을 다했다. 좌파정부로서 정작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못 하고, 성실한 정부를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했다.

 

5월 2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2007년 12월 노 전 대통령의 송년모임 연설의 일부다(굵은 글씨는 필자 강조). 허나 더 많은 것들을 고백하기도 전에, 자전거를 타고 천진하게 시골길을 내달리던 그는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그리하여 이제 현 정권의 극악무도한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지금, 시민들의 분향을 두고 노태우 정권도 하기 힘들었을 짓을 서슴지 않는 오늘날, 결단의 시간이 이승에 남은 우리들에게,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찾아왔다. 

 

노 전 대통령은 자전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의 한 대목에서 민주투사 김영삼을 향해 옛날에 지녔던 존경과 열망을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3당합당을 거부하며 김영삼과 헤어져 지역주의와의 정면대결에 나섰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는 김대중과도 갈라섰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신자라고 욕한다면, 지지자들은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의 장점을 계승하고 발전시켰으며, 그들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이견에서는 자신의 주관에 충실했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바로 그점을 노 전 대통령과 공유하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것을 가장 갈망했던 이는 노 전 대통령일지 모른다. '나를 버리라'고 호소했을 때, 그분은 제 지지자들의 정의감과 청렴성, 개혁성을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었을 것이다.

 

민주화의 장도에 나섰고 지금도 함께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노선을 가지고 있다. 참다운 진보와 보수도 비로소 그 안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을 만큼. 그래서 툭하면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폭력인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갈등은 이제 종식시키자. 대립의 요인들을 정리하자. 논리와 토의와 참여로써. '한미FTA는 누가 추진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자신감을 가지고 돌파하면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주술은 걷어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목적으로 삼은 법안이 되레 대량 해고사태를 초래했음도, 미국의 북한침공을 저지한 것이 남한의 이라크파병이 아닌 이라크 민중의 결사항전이라는 것도 직시해야 한다.

 

1990년대 초반 대중적 좌파정당을 모색하던 이들도 청문회스타 노무현에게 커다란 것을 배운 바 있다. 진보운동의 지도부 가운데는 법정에서 '노변'의 지원을 받았던 분들이 드물지 않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내놓은 추모 논평에도 마음을 열 채비가 담겨져 있다. 그러니 자신의 지지 후보와 정당을 대통령과 제1당으로 올려놓았던 분들이 앞장서 단안을 내릴 차례다.

 

그분의 탈권위행보를 이제 와 새삼 치하하는 수구 정치인·언론들과 입을 모을 것인가? 참여정부 시절 괜찮았던 경제지표에서 노무현 정신을 재발견할 것인가? 한미FTA의 두 선봉장이 하나는 이명박 정부에서, 다른 하나는 삼성에서 변함없이 출세가도를 달리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는 그들인가, 아니면 이정우·정태인과 같은 분들인가? 마음먹기에, 하기에 달렸다. 그가 완수하지 못한 길, 지지자들이 마저 밟아나가야 한다. 노무현 정신은 거리와 의회를 오가며 터트린, 약자에 대한 노골적 옹호와 불의를 향한 거침없는 울분에서 나왔다. 

 

특권동맹의 미로 속에서 길 잃었던 그분의 정치노선을 구해 힘없는 자들의 신음 곁으로 돌려드릴 때이다. 이른바 친노직계 정치인들이 나서지 못하더라도, 지지 의원 하나 없던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후보로 올려세웠던 그 힘을 평범한 시민들이 다시 한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FTA반대집회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 투쟁 등에서 나는 마음 속에서나마 울려퍼지는 그분의 메아리를 다시 듣고 싶다. 다가오는 6월 22일, 고 김선일 님의 기일에도. 

 

아직도 경제발전을 위해 케이크의 크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킵시다."

(···)

우리 정부는 기를 쓰고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지금까지의 경제정책을 한 번 보면 임시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은 것이 한 건도 없습니다. 제가 바로 재벌 해체와 토지 분배 등을 경제정책으로 주장한 것은 임시정부의 정강정책으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민족 자립경제의 기반을 확고히 세우고 경제적 정의를 구현하자는 것입니다.

 

- 13대 국회 본회의 통일민주당 노무현 의원 대정부질문 (1988년 7월 8일) 

2009.05.30 16:15ⓒ 2009 OhmyNews
#한미FTA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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