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하나밖에 없다는 중국 돌탑, 그 정체는?

[우리문화유산 되짚어보기 45] 보물 제1119호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등록 2009.06.13 17:47수정 2009.06.1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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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이 탑과 비슷한 라마탑 형태를 가진 돌탑은 공주 마곡사에 있는 오층석탑(보물 제799호)이 있다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이 탑과 비슷한 라마탑 형태를 가진 돌탑은 공주 마곡사에 있는 오층석탑(보물 제799호)이 있다 ⓒ 이종찬

▲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이 탑과 비슷한 라마탑 형태를 가진 돌탑은 공주 마곡사에 있는 오층석탑(보물 제799호)이 있다 ⓒ 이종찬

'똥 묻은 개가 흙 묻은 개 나무란다',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 눈에 있는 티는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이끄는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그 말이 딱 맞는 것만 같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 대신 '비리 많은 정권에 사고 안 터지는 날 없다'고나 해야 할까.

 

나그네가 창경궁 춘당지 옆에 우뚝 서 있는 중국 석탑인 팔각칠층석탑 앞에 작은 석탑처럼 오도카니 섰을 때 그늘진 곳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주고받은 말들 중 몇 토막이다. 저만치 70대 남짓해 보이는 머리 희끗한 노인 두 사람이 주고받는 '국민을 믿지 않고 경찰을 믿는 대통령'이라는 말도 마치 환청처럼 들린다.   

 

기가 막힌다. 대체 이 나라를 어떤 몹쓸 현실로 끌고 가려고 세상을 이리도 시끄럽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단 말인가.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아도 화가 덜 풀릴 때인데, 대체 이 나라 대통령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란 전래동화에 나오는 그 당나귀 귀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서글프다. 잔잔한 물결이 또르르 말리는 춘당지에 비친 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저 팔각칠층석탑도 사람들 웅성거림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지, 그 모습이 우중충한 녹물 빛깔을 띠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속고만 살아야만 하나. 국민이 대통령을 믿지 못하는 나라, 이런 나라에 나그네가 살고 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   

 

a 춘당지 춘당지는 예로부터 권농장이라는 논이 있어 임금이 친히 농사를 지으며 한 해 농사 풍흉을 보던 곳이었다

춘당지 춘당지는 예로부터 권농장이라는 논이 있어 임금이 친히 농사를 지으며 한 해 농사 풍흉을 보던 곳이었다 ⓒ 이종찬

▲ 춘당지 춘당지는 예로부터 권농장이라는 논이 있어 임금이 친히 농사를 지으며 한 해 농사 풍흉을 보던 곳이었다 ⓒ 이종찬

a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 진초록 숲속에 웬 돌탑이 하나 우뚝 서 있다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 진초록 숲속에 웬 돌탑이 하나 우뚝 서 있다 ⓒ 이종찬

▲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 진초록 숲속에 웬 돌탑이 하나 우뚝 서 있다 ⓒ 이종찬

 

춘당지 비탈길 진초록 숲속에 우뚝 서 있는 돌탑 하나

 

5월 31일 오후 1시. 조선시대 첨성대라 불리는 관천대(보물 제851호)에 들렀다가 창경궁을 회오리바람처럼 한 바퀴 휘이 돈다. 문정전과 숭문당, 함인정, 경춘전, 환경전, 통명전을 두루 거쳐 성종태실을 지나자 저만치 춘당지가 보인다. 춘당지는 활을 쏘고 과거를 보던 춘당대 앞 연못이라는 뜻이다. 

 

연초록 물빛이 진초록빛 숲과 잘 어울리는 춘당지 곳곳에는 오리가 세상 시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다. 지난 29일(금),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이 끝났지만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웃는 얼굴이 그려진 노오란 풍선을 들고 토끼처럼 깡총거리고 있는 꼬마들도 더러 보인다. 

 

덥다. 따가운 햇살 속에 너무 많이 걸어서일까. 이마와 목덜미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춘당지로 내려가 나무 그늘 아래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쉴까 하며 연못가로 내려가는 비탈길 진초록 숲속에 웬 돌탑이 하나 우뚝 서 있다. 근데, 돌탑 모습이 좀 색 다르다. 그동안 나그네가 여러 절 마당에서 보았던 그런 돌탑이 아니다.  

 

무슨 탑일까. 저 탑은 왜 하필이면 절 마당도 아닌 이곳 춘당지 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나그네가 지리산에서 잠시 만나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도인, 승도 속도 싫어 그저 바람처럼 이 곳 저 곳을 떠돌아다니며 동냥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그 도인이 행여 이곳에 왔다가 저 돌탑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a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 보물 1119로 지정된 창경궁 내 팔각칠층석탑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 보물 1119로 지정된 창경궁 내 팔각칠층석탑 ⓒ 이종찬

▲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 보물 1119로 지정된 창경궁 내 팔각칠층석탑 ⓒ 이종찬

a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 만주에서 이 탑을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사들여 세운 것이다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 만주에서 이 탑을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사들여 세운 것이다 ⓒ 이종찬

▲ 창경궁내 팔각칠층석탑 만주에서 이 탑을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사들여 세운 것이다 ⓒ 이종찬

 

누가, 무슨 까닭으로 이 중국 돌탑을 이곳에 세웠을까

 

"춘당지에 서 있는 이 팔각칠층석탑은 불룩한 초층 탑신이나 팔각원당형의 기단부, 탑신 전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라마탑의 형태를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석재가 변질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 있는 유일한 중국 석탑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 '서울문화재' 자료  몇 토막

 

이 돌탑은 1992년 1월 15일 보물 1119로 지정된 창경궁 내 팔각칠층석탑(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이다. 문화재청과 서울문화재 자료에 따르면 이 독특한 모습을 띠고 있는 돌탑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11년, 창경궁에 이왕가(李王家)박물관을 세울 때 만주에서 이 탑을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사들여 세운 것이다.  

 

우습다. 일제가 조선을 얼마나 얕잡아 보았으면 독립된 한 국가인 조선왕실을 '이왕가'라 낮춰 불렀을까. 근데, 이 돌탑은 누가 이곳에 세웠을까. 이 돌탑에는 대체 무슨 말 못 할 사연들이 숨겨져 있을까. 아무리 눈을 부비고 다시 자료를 살펴보아도 누가 왜 이곳에 이 중국에서 만든 돌탑을 세웠는지 나와 있지 않다.    

 

일제가 오랜 조선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중국 돌탑을 떡하니 세웠을까. 그럴 만도 하다. 이곳 춘당지는 예로부터 권농장이라는 논이 있어 임금이 친히 농사를 지으며 한 해 농사 풍흉을 보던 곳이었다. 하지만 1909년 일제는 권농장에 큰 연못을 파고 창경궁을 창경원이란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바꾸어 버렸다. 아마 그때 일제가 이 돌탑을 세웠을 수도 있다는 어림짐작도 든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춘당지는 1986년 창경궁 복원공사 때 우리 전통 조경수법으로 다시 고칠 때 연못 속에 섬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때 자료를 이곳 저곳 아무리 뒤적여도 나그네 짧은 지식 때문인지 이 팔각칠층석탑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다. 속내도 모르고 그저 눈에 보이는 이 돌탑 겉모습만 보고 있으려니 속이 탄다.      

 

a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볼록한 항아리 모습을 띠고 있는 1층 몸돌 또한 다른 몸돌들에 비해 높다.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볼록한 항아리 모습을 띠고 있는 1층 몸돌 또한 다른 몸돌들에 비해 높다. ⓒ 이종찬

▲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볼록한 항아리 모습을 띠고 있는 1층 몸돌 또한 다른 몸돌들에 비해 높다. ⓒ 이종찬

 

둥근 복발형으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돌탑

 

창경궁 내 팔각칠층석탑은 말 그대로 8각 평면 위에 7층으로 이루어진 몸돌을 세운 돌탑이다. 높이 6.5m. 이 돌탑은 크게 바닥돌, 기둥돌, 몸돌, 머리돌로 짜여져 있다. 바닥돌과 기둥돌은 몸돌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며, 볼록한 항아리 모습을 띠고 있는 1층 몸돌 또한 다른 몸돌들에 비해 높다. 

 

이 돌탑은 2층부터 낮아지며, 각층 지붕돌은 목조건축 지붕처럼 기왓골이 패여 있다. 꼭대기(상륜부)에는 원래 장식이 아닌, 뒤에 누군가 새롭게 올린 듯한 머리 장식이 여의주처럼 동그랗게 얹혀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이 돌탑은 둥근 복발형(공양그릇)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특징이 있는 탑이다.

 

기둥돌은 3단으로 이루어진 바닥돌 위에 높직한 1단 기단이 올려져 있으며, 각 면마다 여러 가지 조각들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바닥돌은 4각으로 밑단을 두고 그 위로 2단으로 된 8각 바닥돌을 두었으며, 8각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다. 기단과 닿는 곳에도 1단의 연꽃받침이 있으며, 각 면마다 꽃무늬를 새겼다.

 

기단 맨 윗돌에도 연꽃무늬와 안상이 새겨져 있고, 그 위로 높직한 연꽃괴임돌과 2단으로 이루어진 낮은 괴임대를 놓아 1층 몸돌을 받치도록 했다. 특히 1층 몸돌에는 가로와 세로 50cm 정도인 사각형 대리석을 끼워 4행으로 된(1행에 3자씩) 명문(銘文)과 1행(行)으로 된 조성년대를 세겨 탑을 만든 때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적힌 성화 6년은 명나라 헌종 때의 연호로 조선 제 9대 성종 원년, 서기 1470년이다.

 

요양중(遼陽重)

개산도(開山都)

강연옥(綱挻玉)

암수탑(巖壽塔)

 

대명성화육년경인세추칠월상한길일조(大明成化六年庚寅歲秋七月上澣吉日造)

 

a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기둥돌은 3단으로 이루어진 바닥돌 위에 높직한 1단 기단이 올려져 있으며, 각 면마다 여러 가지 조각들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기둥돌은 3단으로 이루어진 바닥돌 위에 높직한 1단 기단이 올려져 있으며, 각 면마다 여러 가지 조각들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 이종찬

▲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기둥돌은 3단으로 이루어진 바닥돌 위에 높직한 1단 기단이 올려져 있으며, 각 면마다 여러 가지 조각들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 이종찬

 

우리나라에서 이 탑과 비슷한 라마탑 형태를 가진 돌탑은 공주 마곡사에 있는 오층석탑(보물 제799호)이 있다. 라마탑이란 티베트계 불탑으로 아래에서 위로 사각, 원, 삼각, 반월(半月), 보주(寶珠) 등 5가지 형태를 쌓아올린 것으로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춘당지 앞에 우뚝 서 있는 팔각칠층석탑. 그날 나그네는 이 돌탑 앞에 서서 늘상 탑 앞에만 서면 하던 합장을 하지 않았다. 비록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긴 하지만 이명박 정권처럼 잘 알 수 없는 이 정처불명의 탑 앞에서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이든, 이 돌탑이든 속내가 다 드러나야 합장을 하든, 침을 퉤 뱉든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안국역 4번 출구-경희대 시내 한방병원 방향-창경궁-식물원 앞-춘당지-팔각7층석탑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2009.06.13 17:47ⓒ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안국역 4번 출구-경희대 시내 한방병원 방향-창경궁-식물원 앞-춘당지-팔각7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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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칠층석탑 #보물 1119호 #창경궁 #춘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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