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안 어울려요" 벽을 타고 온 귀엣말

[이란 여행기31] 알리카푸 궁전에서 불가사의를 경험

등록 2009.06.22 11:08수정 2009.06.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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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카푸 궁전의 벽에서 귀엣말을 하고 있는 아이들 ⓒ 김은주

알리카푸 궁전의 벽에서 귀엣말을 하고 있는 아이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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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카푸 궁전의 벽에서 귀엣말을 하고 있는 아이들 ⓒ 김은주

알리카푸 궁전의 벽에서 귀엣말을 하고 있는 아이들 ⓒ 김은주

 

 
알리카푸 궁전 뒤뜰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정원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새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먹다 남긴 음식을 봉지에 담아 와서 새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병아리가 어미 닭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처럼 새 두 마리가 할아버지를 쫓아다녔습니다. 그동안 할아버지가 자주 먹을 걸 나눠줬는지 영물인 새들이 '이 할아버지는 우리한테 맛있는 것 주는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하나도 없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참 귀여웠습니다.

 

이란 사람들은 새를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카샨에 묵었던 숙소에서도 집 안에서 새를 잔뜩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지나가는 새에게도 먹이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옥상에 있는 가스 불에서 커피 물을 끓이러 나갔던 난 깜짝 놀랐습니다. 옥상으로 나 있는 문을 열고 발을 내딛는 순간 뜻밖의 상황에 뒤로 자빠질 것처럼 놀랐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깬 눈앞에서 새 쇼가 펼쳐졌던 것입니다.

 

한참 먹이를 먹기 위해 몰려와있던 수백 마리의 새들이 옥상을 가득 메우고 있다가 뜻밖의 방문자인 나의 출현에 화들짝 놀라서 모두들 공중으로 날아올랐던 것입니다. 나도 기절할 것처럼 놀랐지만 마음 놓고 먹이를 먹던 새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지요.

 

이 새들이 먹던 모이는 우리가 묵은 숙소의 주인장 할아버지가 뿌려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이른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하는 일이 카샨의 하늘을 마당삼아 살고 있는 새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신선한 물을 채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애중중지 기르는 새를 보고도 할아버지의 새 사랑을 느낄 수 있었는데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새에 대한 할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여러 곳에서 이란인의 새 사랑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무를 사랑하고 물을 사랑하는 것처럼 새를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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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뒤뜰에서 먹이를 주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새 두 마리. ⓒ 김은주

궁전 뒤뜰에서 먹이를 주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새 두 마리.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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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카푸 궁전 가는 길 위에 선 큰 애. ⓒ 김은주

알리카푸 궁전 가는 길 위에 선 큰 애. ⓒ 김은주

 

새에게 먹이를 주는 할아버지를 한참 구경하다가 알리카푸 궁전으로 갔습니다. 알리카푸 궁전 1층 로비의 벽면 모서리는 사람들의 손때로 새카맸습니다. 다른 곳은 괜찮은데 벽면 모서리 일부분만 이렇게 까만 이유에 대해서는 이란 오기 전에 이미 들었고, 애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 새카만 부분에 비밀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에스파한의 불가사의 중 하나인데 한쪽 모서리에서 한 사람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대각선의 다른 쪽 벽의 사람이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체험을 하기 위해 벽에 붙어 섰고, 여러 사람이 거쳐 가다 보니 벽은 새카맣게 변한 것이었습니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간다고 체험을 가장 좋아하는 큰 애가 벽에 붙어서면서 나에게 반대  쪽에 가서 서있으라고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큰 애의 말이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마치 큰 애가 내 귀에 입을 대고 귀엣말을 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엄마, 선글라스 안 어울려요."

 

워낙 작게 말하기 때문에 귀에 대고 하지 않는다면 바로 옆 사람에게도 전달되기 어려운 소리인데 한참 떨어진 다른 벽에서 오히려 선명하게 들린다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안내 책자의 설명에 따르면 소리가 벽을 타고 높은 천장을 지나서 반대쪽으로 흐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상한 궁전에 이런 재미있는 체험을 숨겨놓은 게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이 체험이 정말 마음에 드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습니다. 둘이서 대각선으로 벽 모서리에 붙어 서서 소곤거렸습니다. 나중에 전해 을은 바로는 둘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서로에게 "너 못생겼어". "넌 바보야" 등의 욕을 서로에게 했다고 합니다.

 

얼굴을 맞대고 이런 말을 들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한 판 싸웠을 텐데 신기한 벽을 통해 듣게 된 욕은 화나게 하기 보다는 즐거움을 주었는지 둘은 깔깔거리면서 좋아했습니다. 오히려 욕을 더 많이 해달라는 듯 내내 벽에 붙어서있었습니다.

 

애들은 확실히 볼거리 보다는 체험여행을 즐기는데 이스파한에는 이런 종류의 불가사의가 두 군데 더 있습니다. 지난 번 갔던 이맘모스크 중앙 신전의 까만 돌에서 들을 수 있는 7번의 메아리도 그렇고,  자얀데 강 카쥬 다리에 있는 사자상도 불가사의 중 하나입니다.

 

사자상의 눈을 보면 아무런 장신도 없습니다. 그냥 몸과 같은 재질의 돌입니다. 사자상은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두 마리가 서있는데 낮에는 모르다가 밤에 한쪽 사자 상에서 보면 다른 쪽 상자 상의 눈빛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주위에는 아무런 조명도 없고 눈에서 빛을 만들어낼 어떤 이유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눈에서 빛이 난다고 하네요. 그러나 우린 완전히 깜깜해질 때까지 있어보지 않아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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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테라스 벽에 그려진 벽화. 은은하면서 우아한 느낌인데 알리카푸 궁전 분위기와 사뭇 어울리는 그림인 것 같다. ⓒ 김은주

궁전 테라스 벽에 그려진 벽화. 은은하면서 우아한 느낌인데 알리카푸 궁전 분위기와 사뭇 어울리는 그림인 것 같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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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카푸 궁전 천장. ⓒ 김은주

알리카푸 궁전 천장. ⓒ 김은주

 

이스파한의 불가사의로도 유명하지만 알리카푸의 진면목은 높은 테라스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노란색 바탕에 파란 색 무늬가 있는 화려한 타일로 된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까 개방감을 주는 테라스가 나왔습니다.

 

이 테라스에 서니까 이맘광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이맘모스크의 파란 색 돔이 아래에서는 일부만 올려다보였는데 이곳에서는 전체가 눈에 들어왔으며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의 노란색 돔도 보였습니다.

 

아래에서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이스파한의 진주라고 할 수 있는 이맘광장과 이맘모스크 전경을 한눈에 보게 되니까 알리카푸 궁전은 궁전 자체보다도 조망 때문에 더 유명해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왕이 이맘광장에서 행해지는 폴로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을 만큼 이곳에서 보는 이맘광장 전경은 주변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합니다.

 

알리카푸 궁전에서 또 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맨 위층에 있는 음악의 방입니다. 음악의 방에는 천장에 악기모양의 구멍이 많이 파져 있습니다. 바이올린, 하프 등의 악기 모양을 본 뜬 구멍이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이 방은 음악 연주를 위한 방이었다고 하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악사들이 언주를 하면 공명작용으로 몇 시간이나 그 음악이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실제 그런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알리카푸 궁전은 아직도 공사 중이었습니다. 알리카푸 궁전은 16세기 사파비조 때 세워졌다가 1979년 이슬람혁명 때 많이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지금 다시 이란이 관광산업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복원작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사 중이라 정돈 된 맛은 없지만 볼거리와 체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500토만 하는 입장료가 결코 아깝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이란 #이스파한 #알리카푸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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