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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서 수십 년간 살다보니 세상과의 소통은 오직 내 손이 잡는 붓 한 자루라고 오래도록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의 모든 손들과 정보문명도 포함되어 있다. 세상의 손들은 아름다운 손짓소리의 근원들이다.
손으로 하는 언어를 수화라고 하고 손가락으로 하는 언어는 지화라고 하며 입모양만으로 하는 것은 구화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키보드를 통해 컴으로 하는 이야기는 심화라고 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수화를 배우고 익숙해진 청각장애인들은 입모양 구화없이 손가락 지화가 많이 섞인 수화만으로 내용을 충분히 알아듣는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전달하는 수화통역사의 재량에 따라 가감될 수 밖에 없다.
모든 언어를 100% 수화로 표현하는 수화체계가 안 잡혀 있고 시간적으로도 아무리 빠른 손짓이라도 말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대충 건너 뛰어 통역하기도 하거나, 아니면 앞뒤를 빼고 중간만 하거나, 통역사가 알아서 전체를 간단명료히 요약해 핵심만 전해주거나 한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입모양을 같이하는 통역을 찾는다. 왜냐하면 나는 4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장애인들을 만나서 장애등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등록을 했고, 수화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정식으로 배운 것이 아닌 그냥 하나씩 하나씩 알음알이로 익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수화는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화보다 비장애인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본능적으로 살아가야 하다보니 눈치코치가 뛰어났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의 통역은 구화를 함께 하는 수화통역을 찾고, 내용상 꼭 챙겨야 할 갈등관리교육, 갈등유형의 분석과 솔류션같은 중요한 일반교육은 수료 후 마음에 갈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교육을 전달해야 하기에 가능하면 모든 내용을 기록이 가능한 워드자판속도가 빠른 학생들을 찾아 필기통역을 받는다.
가끔 노트북을 들고 필담통역을 대동하고 워크힐 같은 곳에 교육을 받으러 가서 통역을 받으면, 내 생김 자체가 토종한국적이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영락없이 화교나 재일교포 또는 필리핀에서 온 줄 착각하고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으로 말을 걸어오는 해프닝도 종종있다.
얼마 전 자원활동으로 손짓소리로 통역을 해주는 긴 머리 아가씨와 워크샵에 갔다. 성격이 매우 활달하고 오랫동안 연극활동을 하기도 한 그 아가씨의 손짓소리는 가끔 몸짓소리이기도 할 만큼 상반신을 움직이기도 하였다.
그날도 열심히 장내를 가득 채운 100여명의 교육생들이 앞을 보지만 그 아가씨는 정면을 등으로 하고 나만 쳐다보고 열심히 구화와 수화를 병행하였다. 나만 쳐다보기 때문에 나도 시선을 통역자만 보아야 한다. 전문적인 프로통역사는 내가 시선을 통역을 보던 강사를 보던 주변환경이나 칠판을 보든 별로 개의치 않고 그냥 통역에 집중한다.
그러나 자원활동의 통역사들은 자기를 봐주지 않고 다른데 시선을 돌리면 멋쩍어 통역을 멈추거나 서운해 하기 때문에 열심히 봐주어야 한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눈이나 고개를 돌리지 못해 경직이 오기도 한다. 한창 경직이 올만큼 눈과 목이 머리와 따로 놀려고 할 즈음 메모지가 건네왔다.
"뒤에서 보니까 상당히 눈이 피곤한데요. 수화통역을 조그만 손짓으로 하든가 아니면 맨 뒤에서 하는것은 어떤지요?"
일순간 수화통역하는 아가씨는 당황하고 멋쩍은 표정이었다. 자리가 꽉차서 그 사람이 원하는대로 다른 위치로 우리가 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그많게 수화를 했지만 많이 위축된 편치 않은 기운이 손 끝에 나와 나 역시 내용경청이 불편해졌다.
장애편의를 도와주는 모든 자원봉사자의 활동보조와 수화통역이 전부다 아름다운 손짓소리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의 목소리도 듣기 좋게 나긋나긋한 것처럼 그렇게 손짓소리도 불필요한 스케일의 큰 동작은 다른 사람에게 피곤을 주기도 한다. 뒤에 수화통역아가씨는 내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수화를 너무 거시기 하게 했나요?"
"글쎄! 난 그냥 익숙해졌는데 아마 그 여자는 처음이고 예민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관심일거야! 관심있으면 배려차원에서 자기가 조금만 의자를 당겨 위치를 바꾸면 되지만 관심이 없으니 짜증이 났겠지!"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참 배우기 힘든 수화이지만, 일단 배워서 장애인들의 통역을 도와주거나 수화노래를 하면, 그것은 아름다운 손짓소리이고 신이 내린 또 하나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와 다른 세상이고 그들이 사는 방법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에 대한 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해도 감동적인 미담이 아니면 그냥 피곤하고 부담스럽게 여기는 반응들이 많다.
사실 복지체계가 잡혀 있는 외국에서는 구역마다 이를 청각장애인 뿐 아닌 일반장애인들의 교육편의를 지원해주는 행정센터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장애인들 중에 스스로 외국에 갈 수 있는 경로를 스스로 개척하는 다양한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유학을 뒷받침해줄 가족이 있는 장애인들은 외국에 가서 교육을 받거나 학위를 따서 돌아온다.
함께 모여 사는 노란꽃들과 빨간 꽃들은 아름답다. 그러나 같은 색깔들의 그 꽃들을 보다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 사이 사이에 있는 하얀 안개꽃이나 초록의 잎들이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그렇게 적절히 사이좋게 서로가 관심을 갖고 조금씩이라도 진심으로 어울릴때 우리세상은 영혼의 산소가 배출되는 천연의 꽃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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