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남자와 일본 여자의 열렬한 사랑 이야기

김별아의 <열애>

등록 2009.06.23 09:29수정 2009.06.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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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열애>겉표지

<열애>겉표지 ⓒ 문학의문학

<미실>과 <논개>, 그리고 <백범>으로 역사소설을 새롭게 쓰고 있는 김별아가 이번에는 식민지 조선의 '연인'을 주목하고 있다. 제목이 '열애'인 만큼 사랑에 주목하고 있는가 싶지만 그렇게 평탄한 내용은 아니다. 식민지 조선의 시대적인 아픔을 온 몸으로 껴안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열애>의 남자, 그는 테러리스트였으면서 시인이었다. 또한 아나키스트였고 허무주의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특징들은 뭔가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가 살았던 삶은 실상 그러했다. 식민지 조선의 아들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은 누구인가? 박열이었다. '일본 천황가 폭탄 투척사건'의 주인공이었던 그 남자다.


어린 시절부터 학대당하며 자란 여인이 있다. 그녀는 가족 사이에서도 버림받았고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버림받았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열정이나 삶에 대한 희망이라는 단어는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변한다. 박열의 시를 보고 어떤 충격 같은 것을 느꼈고 단번에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가네코 후미코. 일본의 여인은 조선의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만다.

<열애>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을 담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 남자와 일본 여자의 사랑은 얼마나 아픈 것이었던가. 일본이 아무리 조선을 달래려고 우리는 '한편'이라고 운운하더라도 그들은 조선인을 식민지 백성으로 치부했다.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게 그들을 탄압했고 차별했다. 그런 사회 속의 여인이, 비록 주류사회의 여인이 아닐지라도 조선 남자와 사랑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 사회는 어떤가. 뼛속까지 원한이 서린 사회였다. 일본인이라면 이를 갈았고 원을 식히지 못해 울분을 토해내야 했다. 그런 사회 속에서 한 남자가 일본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등을 돌린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물론이고 조선에서 '주의'를 표방하던 사람들조차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뒷말을 한다.

그런 와중에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먹을 것 없고 가진 것 없어도, 남들이 축복하기는커녕 쓴 소리를 한다 해도 그들은 사랑을 지켰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들의 마음은 사랑으로만 위로받기에는 뭔가 허전했다. 박열의 심장 때문이다. 박열은 식민지 조선을 수탈하는 일본에게 뭔가 저항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폭탄을 구입하려고 동분서주한다. 조선인이 죽지 않았음을,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가네코 후미코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갈등하지 않았다. 박열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체포된 후에, 박열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혼자 죄를 뒤집어쓰려 한다. 하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그것을 거부한다. 죽을지언정,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박열을 따라 일본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많다. 역사소설에서도 두루 보인다. 하지만 '열렬히 사랑'하는 모습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그린 소설은 오랜만이다. 식민지 조선의 시대 문제를 온 몸으로 껴안으면서도, 세상이 외면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만에 그것을 엿볼 수 있던 것이리라.

굴곡진 역사의 수레 위에서 사랑을 보여줬던 어느 연인의 열애를 그린 <열애>, 다시금 역사소설의 또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열애

김별아 지음,
해냄, 2017


#김별아 #박열 #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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