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이 사라졌다, 유력한 범인은?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이 경고하는 현실

등록 2009.06.25 13:42수정 2009.06.2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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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표지 우리가 먹는 작물의 대부분은 '벌'이 만들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책표지 우리가 먹는 작물의 대부분은 '벌'이 만들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 에코리브르

어쩌면, 인간으로서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는지 모른다. 그저 삶의 터전과 수단, 나와 공생하는 무생물의 대명사 정도로 생각하고 사는 것이 치열한 삶을 사는 나에게 안락함을 가져다준다. 하물며 주변에 사는 나비, 잠자리, 벌, 사마귀, 무당벌레 등의 곤충의 하찮음을 말해서 더 무엇하랴.

음식을 위해 집단으로 부엌구석에 등장하는 개미는 처단의 대상이고, 밤불의 향에 몰려드는 나방, 각다귀, 하루살이들도 마찬가지. 전기로 태워 죽이는 장치가 사람들에게 편안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벌집이라도 생기면 119를 불러서 제거해야 마음이 편하고, 파리모기는 집안에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집 주변까지 단속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아야 마음이 편안할 정도다.


내가 사는 이곳 농촌에서는 이런 곤충류에 대한 적대감이 더 크다. 작물을 재배하는데 필연적으로 이놈들과 마주치게 되고 '돈'이 될 귀중한 작물을 나누어 먹자고 덤비는 놈들은 반드시 박멸해야 속이 시원해진다. 마치 그들과 전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약통'에 약을 장전하고, 마스크와 모자를 둘러쓰고 밭으로 향한다.

벌레가 잘 죽지 않는 것 같으면 약을 '독하게'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 분명히 100배 희석해서 쓰라고 해도 농민들은 미덥지 않다. 50배, 30배로 희석해서 강력한 효과를 원한다. 하지만 가만있을 '벌레'도 아니다. 몇몇 생존자들이 '내성'을 가지고 번식하면 그때엔 그 약으로 효험이 전혀 없다. 이 때 사용되는 것이 죽음의 '독약 칵테일'이다.

농민들은 그냥 약을 섞는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검증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운기에 여러 약을 들이 붓고 넓은 밭에 뿌리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막막해진다.

2006년 11월 플로리다의 한 양봉농장의 벌들이 사라졌다. 이어서 이런 '사라짐' 현상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2007년 봄까지 북반구 꿀벌의 1/4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양봉가들은 대개 심한 자책을 해대며 맨 처음에는 자신이 게을러서 응애 예방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응애가 봉군에 들끓었다면 죽은 꿀벌들이 벌통 문 앞에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쓰러져 있어야 옳다. 애벌레 방에는 응애가 가득하고 벌집 바닥에도 응애 시체가 흩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죽은 꿀벌은 없었다. 그는 바닥에 손을 짚고 무릎을 꿇은 채 양봉장 바닥을 기어 다녔다. 땅에 얼굴을 바싹 대고선 조그만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벌'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보자. 지구상의 식물들은 매년 자신의 자손을 번식한다. 이때 식물의 종류에 따라 열매 맺는 과정에 차이가 있는데,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를 실어서 암술에 묻게 만들거나, 곤충이 꿀을 먹기 위해 자신의 몸에 꽃가루를 다른 꽃으로 옮기면서 수분을 하거나, 많지는 않지만 새가 도우미가 되는 경우와 흐르는 물에 의한 경우 등이 있다.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정확한 매개체는 곤충, 그 중에서도 부지런하고, 같은 종의 꽃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며, 자신의 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곤충이 바로 '벌'이다.


우리가 먹는 과일, 곡식, 채소류의 대부분이 벌이 없다면 먹기 힘들어진다. 지금 우리나라 과수농가에 가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인공수분이 이루어진다. 애초에 인공 수분하던 것들이 아니다. 전에는 대부분 벌이 일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수원과 벌을 키우는 양봉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벌이 집단으로 죽어나가는 일들이 벌어지자 점차 유기농을 하고 있는 한적한 농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이제는 양봉업의 규모도 현저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다시, 플로리다 벌들의 집단 사라짐으로 돌아가서, 이를 군집 붕괴 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연구가 이루어 졌다.

피의자로 등장한 것은 휴대전화(전자파의 영향), 유전자 조작 옥수수, 초단파 송신탑, 지구 온난화, 오존층의 구멍, 살충제와 항생제(벌에게 설탕과 항생제를 먹인다), 꿀벌 응애, 영양실조? 자 이렇게 난무하는 원인들로 오히려 더 복잡한 듯 느껴진다.

마치 추리소설처럼 펼쳐지는 책의 내용은 긴장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의문의 죽음, 사라진 사체, 세기말적 분위기, 그리고 계속 드러나는 범죄자들.' 저명한 과학자가 수사를 시작하면서 이 미궁에 빠진 사건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하나, 정황과 일부 유전자로 판명된 바이러스성 질환 때문이라는 결론도 다른 근거에 의해 반박되면서 유야무야 흘러 간다.

반면, 양봉업자들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원인은 살충제였다.

'이미다클로프리드에 대한 연구가 왜 이토록 많이 이루어질까? 프랑스에 가우초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프랑스 꿀벌들이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1년이 되자 150만 개였던 꿀벌 봉군이 100만개로 줄어들었다. 이 살충제를 만든 바이엘 사 과학자들이 내놓은 설명을 들어보면 께름칙하기 그지없다.

이 사태의 특징은, 벌들이 무기력해져 움직이지 못하고 벌통 바깥의 땅으로 모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벌들이 경련을 일으키고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방향감각을 잃는 바람에 개체 수가 줄어든다. 병에 걸린 벌이 돌아오더라도 입구를 지키는 벌에게 공격을 받는다. 형태학상으로 볼 때 병든 벌은 뱃속이 시커멓게 손상되어 있다. 꿀벌 봉군 3분의 1이 이런 증상을 보인다.'

이미다클로프리드는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살충제의 주요성분이다.

'이미다클로프리드가 성공을 거둔 이유에는 체내 침투성 살충제라는 점이 한몫을 했다. 식물 속으로 스며들어 줄기, 잎, 뿌리 등 식물 조직 전체에 퍼지기 때문이다. 이 식물을 먹은 벌레는 죽는다. 이 물질은 비가 내려도 씻겨 내려가지 않고, 게다가 농작물에 뿌릴 필요가 없을 때도 있다. 씨앗을 담갔다가 파종을 한 식물이 자라나면 그 속에 약품 성분이 가득 들어차게 된다.'

책을 읽다가 나는 위의 대목에서 찌푸린 미간과 함께 '윽'하게 되었다. 작물을 심기위해 사게 되는 대부분의 종자는 붉은색의 약제로 '소독'이 되어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신경쓰지 않았다. 썩지 말라고 해 놓은 것일까 정도 였다.

심고 나서 완전 '유기농'으로 키웠기 때문에 식물체에 대한 그 어떤 의심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혹여 땅이 오염되어 있었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곤충에 대한 원천봉쇄를 위한 '독약'이었다니. 이런 침투성 약제의 문제는 식물체 전체에 스며 있고 심지어 꽃가루에까지 농축된다고 한다. 이를 먹은 곤충 뿐 아니라 벌들(벌은 꿀만 먹는 게 아니다)도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그럼, 사람은? 그 약을 만든 회사에서야 아무런 해를 미치지 못하는 미량이라고 하나 사람도 그 식물과 과일을 먹고 몸 안에 축적되는 약제에 의해 서서히 죽어가는 것 아닐까. 충분히 의심해 볼만 하다.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CCD가 발생한 벌통, 대조군 벌통, 과수원의 사과를 가루받이 한 벌통에서 나온 꽃가루와 밀랍 시료들을 분석한 결과 193개의 시료에 살충제가 남아 있었다. 43개 종류의 살충제가 발견되었으며, 5가지 물질대사도 있었는데 이 물질은 살충제가 분해될 때 생긴 물질로 살충제의 독성보다 더 강력하다고 한다. 화학약품도 있는데 침투성 살충제가 14가지, 곰팡이 제거제가 14가지 , 그리고 제초제가 6가지였다.

"알고 보니 벌은 그런 화학약품을 잘도 집어삼켰습니다. 벌의 몸속에 들어간 살충제 가운데 일부는 이미 오랫동안 뿌려지지 않았던 성분입니다. 어떻게 흡수했는지가…흥미롭습니다."

'흥미롭다'기보다는 '경악스럽다'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하다.

'바이엘, 바스프, 다우, 몬산토, 듀폰, 신젠타 같은 화학약품 재벌사들은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이 회사들에는 자사 신제품이 자연 환경 속에 존재하는 다른 독성 물질과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검사할 책임이 분명히 있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실제로 상호작용에 관한 검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데서도 안 한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이다. 사서 쓰고, 입고, 먹고 하는 모든것에 해당한다.

슬슬 조바심이 난다. '침묵의 봄'이 경고한 '새조차 울지 않고 곤충과 나비가 없는' 시절은 다행히 아직 오지 않았다. 그녀가 경고한 DDT등의 약제사용을 금지했지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독약'들이 도처에 존재하고 '자연'을 통해 확장되어 가고 있다. 점점 축적되고 있는 위험이 한꺼번에 우리를 수렁에 빠지게 하지는 않을까.

'독약'에 대한 경고를 넘으면 단일경작에 대한 위험성, 유기농 재배지역의 불안정하고 비경제적인 것 같지만 장기적인 건강함을 사례를 통해 이야기 한다. 벌로 대표되는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의 오만이 우리 스스로를 파멸의 길에 들어서게 할 수 있음을 나지막이 경고하는 저자는 마치 한편의 미스터리 자연과학 소설을 보는 듯 세련된 문장들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덧붙이는 글 |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Fruitless Fall : The Collapse of the Honey Bee and the Coming Agricultural Crisis) /로완 제이콥슨-노태복/에코리브르/16,000원


덧붙이는 글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Fruitless Fall : The Collapse of the Honey Bee and the Coming Agricultural Crisis) /로완 제이콥슨-노태복/에코리브르/16,000원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로완 제이콥슨 지음, 노태복 옮김, 우건석 감수,
에코리브르, 2009


#꿀벌 #꿀벌없는 세상 #로완제이콥슨 #살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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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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