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은 추첨으로 결정 ... 이상향을 만나다

<서평> 토마스 모어_유토피아를 읽고

등록 2009.06.28 18:51수정 2009.06.2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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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 하나. 서른을 넘어서면서 내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착한사람이다. 착실히 입시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했고, 선생님이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높은 경쟁률 덕분에 공교육 교사가 되진 못했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부모님이 요구하는 대로 모나지 않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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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유토피아_토마스 모어 ⓒ 범우사

▲ 유토피아 유토피아_토마스 모어 ⓒ 범우사

나이 서른에 '유토피아'를 접했다. 어떤 책을 읽는가도 중요한데, 언제 읽는 가도 중요하다. 착하게 살아와 서른 살에 읽는 '유토피아'는 내 삶에 도전해왔다. 교실에서 시험지에 답안을 채워나가며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절에 이 책을 접했었더라면, 아마도 논술이라는 입시게임을 위해 읽었을 게다. 미리 읽어 놓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다.(한번 손댄 책에는 두 번 다시 손이 안가는 것은 교만일 거다)

 

나는 이시대 젊은이들을 규정하는 '88만원 세대'다. 그야말로 천박한 자본주의의 사생아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대에 철저하게 회의하는 족속에게 '혁명의 에너지'가 축적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에 터한 삶에 대한 회의와 고민, 대안을 향한 갈증은 도처에 편만해 있다.

 

책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름은 많이 들어 봤어도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요약해서 자세히 써보련다. 얼마나 혁명적인지.

 

유토피아는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서 현실세계는 참혹하게 그려진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도(?). 저자인 토마스 모어는 나처럼 착한 사람이다. 이 체제 속에서 위정자들이 잘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착한 사람 말이다. 그가 뜬금없이 나타난 '라파엘'이라는 현자(賢者)에게 신선한 말을 듣게 된다.

 

"생계수단의 상실은 범죄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생계의 수단을 마련해 주어, 아무도 도둑이 되거나 붙잡혀 시체가 되는 절박한 상황에 봉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생계수단'의 상실은 오늘날 88만원 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일자리 수가 적어진 현실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률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모어는 라파엘의 이야기가 정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좋은 제도를 만들 수 있도록 조언을 구한다. 라파엘은 현실정치에서는 '철학'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며, 오히려 나중에는 자신이 곧 축출되거나 또는 단지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바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왕이 세워진 근본 이유에 대한 설명, 부패한 인간의 행동에 기독교 윤리를 맞추는 세속화에 대한 비판,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인 사유재산의 폐지 등을 단호하게 주장하는 라파엘과 이윤추구의 동기가 없이 일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결국 공산사회는 망하게 될 것이라는 토마스 모어의 입장은 강하게 충돌하게 된다. 모어의 머릿 속에는 이분법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본주의 아니면 공산주의고, 공산주의는 이미 망했다고.

 

이쯤 되면 소통 단절이다. 우리나라에선 라파엘은 '빨갱이'로 몰리고,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토마스 모어는 그나마 소통할수 있는 보수 세력인듯하다. 모어는 인내를 갖고 라파엘의 이야기를 계속 경청한다. 라파엘은 제 3의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유토피아에서 겪은 5년간의 실재 이야기 말이다. 

 

2권에서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게 흥미로운데, 이것은 현실세계와 완전히 다른 생활방식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가치관과 다른 문화를 가진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도 : 사유재산이 없고, 토지는 공동소유이며, 집을 공유한다. 좋은 집은 독점 방지를 위해 추첨에 의해 정해지며, 10년마다 바뀐다.

 

직업 :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산적인 일을 한다. 대부분 '농부'이며, 농사를 지을 줄 안다. 아동교육에서 '농업'은 필수과목이다. 모두가 생산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자본가와 지주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재능(은사)에 따른 사회 구성이 이루어진다. 돈, 학벌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형성하는 것과는 다르다.

 

공동체 내부에서 학자, 성직자, 공무원 등 은사가 인정되는 사람에 한해서만 노동을 면제받는다. 어떻게 은사가 있는지 알 수 있냐고? 시험을 보나? 이런 생각을 제발 버려라.

 

우리 주변에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A)은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아이를 싫어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죽자 살자 고시준비만 하는 사람(B)은 고시에 합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B가 교사가 되지만, 유토피아에서는 A가 교사가 된다. 무엇이 합리적인가? B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것이 B에게도 행복 아닐까?

 

학자, 성직자, 공무원은 이렇게 선출된다.

 

시민은 30세대가 한 그룹이며, '시포그란투스'라는 공무원을 선출한다.

 

옷에 대한 본래적 가치 : 옷은 쾌적하고, 활동성이 좋은 것, 더위나 추위를 생각한 옷을 입는다(상식적인 거다).

 

금과 은은 일상에 전혀 필요없는 것들로, 죄수들에게 귀와 손가락에 금귀걸이와 금반지를 끼워 주고 목에는 금목걸이를 매어 주며, 머리에는 금관을 씌워준다.

 

교육 : 대부분의 아이들은 양친으로부터 함께 '일'을 하며 배운다. '가정'이란 과목을 책을 통해 배우면 무엇하나. 라면과 계란 프라이 밖에 못하는 것을.

 

혹시나 어린이가 다른 기술을 좋아한다면, 그 애는 그 기술에 종사하는 가정에 입양된다. 가족주의를 이렇게 간단히 극복하는 사회가 유토피아다.

 

노동 : 유토피아에서는 하루에 여섯 시간 일한다. 오전에 세 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고 두 시간 휴식을 취한 다음, 오후에 세 시간 일하고 저녁을 먹는다(스콧 니어링이 말한 4-4-4와 맥을 같이함).

 

부자를 대하는 어리석은 태도 비판 : 유토피아인들이 가장 이상하게 여기고 혐오하는 것은 부자에게 빚을 졌거나, 또는 다른 이유로 지배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단지 그가 부자라는 점 때문에 그가 살아있는 한, 한푼도 내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를 존경하는 어리석은 태도이다(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태도다. 그가 비록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평생교육, 여가 : 모든 어린이들은 일반 교육을 받으며, 또한 대부분의 남녀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평생동안 여가를 이용하여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진정한 쾌락 : 그들은 모든 쾌락에 행복이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오직 보다 고상한 쾌락만이 행복일 수 있다. 자연적 충동은 그 호불호에 있어서 이성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유토피아인들은 삶의 향락, 곧 쾌락을 인간의 온갖 노력의 자연적인 목표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자연적이라는 말은 유덕하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그러나 자연은 삶을 즐기는 데 있어서 서로 돕기를 바라고 있다.

 

외모지상주의 극복 : 유토피아인들은 '화장(얼굴을 꾸미는 것)'에는 강력히 반대한다. 사실 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남편이 아내에게서 구하는 것은 육체적인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오히려 겸손과 남편에 대한 존경할 만한 태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름다운 얼굴은 남자를 사로잡는 데는 충분하지만, 남자의 사랑을 지속시키는 데는 훌륭한 성격과 성품이 필요한 것이다.

 

종교에 대한 관용 : 종교의 선택은 개개인이 그 자신의 사상에 따라 결정해야 할 자유로운 문제로 남겨 놓는다. 단지 그는 국민이 영혼은 육신과 함께 죽는다든지, 우주는 섭리의 지배를 받지 않고 맹목적으로 움직인다든지 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립될 수 없는 일을 믿는 것만은 엄격하고 엄숙하게 금지하고 있다.

 

유토피아는 대안적 생활양식이며,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 대안 운동이다. 자본증식을 위한 삶의 양식을 벗어나, 생명과 평화라는 가치를 가지고 삶의 양식을 살아내는 공동체에서 발견되는 현상들이다.

 

그럼 이런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진보적 가치에 공유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희망이다. 유토피아는 한 사람의 변화 속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무리가 지닌 거룩한 능력에 의해 사회 속에 전염되어져 나간다. 이런 삶을 살아내기란 쉽지 않다. 말초신경까지 우리를 장악한 권력은 오로지 인센티브를 위해 살아가도록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권력으로부터 하나하나 해방되어 신명나게 살아가는 길은.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삶의 양식을 결단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검색창에 공동체 운동, 대안 생활양식 운동을 쳐보라. 우리 사회 속에서 현존하는 '바보들'이 일구는 '사람사는 세상'과 쉽게 접속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수동 마을신문 www.welife.org 에도 실렸습니다. 

2009.06.28 18:5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수동 마을신문 www.welife.org 에도 실렸습니다.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지음, 나종일 옮김,
서해문집, 2005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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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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