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마셔도 숙취 없는 꽃 향기에 취하다

꽃으로 되살아나는 태안 백합꽃축제장을 가다

등록 2009.06.30 20:12수정 2009.06.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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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꽃 길을 걷다 충남 태안군 송암리 일대에서 제 4회 백합꽃축제가 지난 19일부터 오는 5일까지 개최된다. ⓒ 정대희

▲ 백합꽃 길을 걷다 충남 태안군 송암리 일대에서 제 4회 백합꽃축제가 지난 19일부터 오는 5일까지 개최된다. ⓒ 정대희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숙취. 이런 날이면 어젯밤 미련하다시피 마신 술에 후회감이 밀려오며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작심삼일의 다짐을 하며 쓰린 속을 부여잡고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며 해장국집을 향하게 된다.

 

문득 '아무리 마셔도 숙취가 없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때부터는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낳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 앞서 생각한 것들과 곧이어 생각한 것들이 뒤죽박죽 엉켜 버린 시점에 도착한 백합꽃축제장. 금세 차 안에 퍼져버린 술 냄새는 이미 코를 마취시켜 고약함을 알 수 없게 됐지만 자동차 문을 열자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꽃향기에 저절로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지난달 19일부터 충남 태안군 태안읍 송암리 일대에서 개최되고 있는 백합꽃축제. 올해로 4회째 열리고 있는 이 축제는 전국적으로 태안을 꽃의 도시로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개막식 당일만 해도 낮과 밤의 기온차이로 꽃봉오리를 활짝 피우지 못했던 꽃들은 재차 방문한 지난달 26일 마치 대규모 매스게임을 보는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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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꽃 태안 백합꽃축제현장 ⓒ 정대희

▲ 백합꽃 태안 백합꽃축제현장 ⓒ 정대희

축제장 입구를 지나 눈 앞 시야를 가릴 정도의 굴곡진 길을 지나면 흡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광경이 펼쳐지는데, 입구부터 길 양 옆으로 우거진 소나무 숲이 시야를 가려 더욱 감격스런 장면을 연출했다.

 

한 눈에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백합꽃이 만발한 것을 볼 수 있던 그곳에 사진촬영을 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한국인에겐 이젠 어느 곳을 가더라도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과 같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카메라. 백합꽃축제장에서 카메라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메모리를 채우기 바빠 보였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만발한 백합꽃밭 한가운데서 사진촬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주최측은 꽃밭에 들어가는 관람객들을 단속하려고 애를 먹었고 관람객들은 좀 더 가까이 꽃을 감상하면서 사진을 찍고 싶던 마음에 여러 차례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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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터널 태안백합꽃 축제현장 ⓒ 정대희

▲ 호박터널 태안백합꽃 축제현장 ⓒ 정대희

만발한 꽃밭 세 곳에 조성된 꽃길을 따라 하얗고 빨간, 그리고 노란 백합을 감상하며 사진촬영을 마친 관람객의 다음 코스는 꽃 호박이 즐비한 호박터널이다. 페추니아로 만든 원기둥을 지나 조성된 호박터널에는 꽃 호박과 넝쿨관상용 호박이 전시되어 있으며, 축제현장을 담은 사진과 2007년 태안 앞 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사고 당시 촬영된 사진도 볼 수 있다.

 

호박터널을 빠져 나오면 붉은 색의 가우라가 펼쳐진 가우라 꽃밭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줄기에도 수십 개의 작은 꽃들이 즐비한 가우라는 한겨울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던 노점상에서 먹던 '꼬치'를 연상케 했다.

 

가우라 꽃밭을 지나면 보랏빛이 인상적인 아게라덤이 식재된 곳에 다다르게 된다. 멀리서 이 꽃밭을 보고는 보송보송한 솜 모양을 하고 있어 보랏빛 민들레로 착각했다. 근데 가만히 꽃을 들여다보니 산호초와 더욱 흡사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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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게라덤 태안 백합꽃축제 현장 ⓒ 정대희

▲ 아게라덤 태안 백합꽃축제 현장 ⓒ 정대희

이 일대에서는 축제장을 찾은 가족 또는 연인, 친구 등이 함께 사진촬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위치한 분화구 동산, 하트 동산 등은 순서를 기다릴 정도로 관람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강렬하게 내려쬐는 햇볕과 찌는 듯한 무더위로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 때쯤 소나무가 울창한 숲속에 위치한 홍보전시관에 도착했다. 이 순간만은 아름다운 백합꽃보다도 한쪽 구석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에어컨 바람이 더 없이 반갑고 심지어 그 밋밋한 형태마저 아름답게 보였다.

 

태안꽃홍보전시관에서는 백합을 이용한 가공품과 장식물, 태안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양란, 장미, 국화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땀도 식힐 겸 찬찬히 둘러보던 중 옛날 수돗가에서 볼 수 있었던 펌프에서 연신 시원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변 꽃들과 펌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보고 있자니 작은 폭포수 아래 아리따운 꽃이 만발한 어느 깊은 산속의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져 시원함과 편안함, 아름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홍보관을 나와 주제관을 향하는 길. 소나무가 우거진 이곳 숲속 길에는 백합과 공룡 모형이 어우러진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아이들과 축제장을 찾은 관람객들 대부분 이곳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주제관에는 백합의 역사와 유래 백합꽃을 이용한 웨딩숍 공간, 신품종, 신기술을 이용한 백합꽃 등이 전시돼 있었으며 이곳 관람을 끝내고 나오면 섬을 형상화하고 주변에 희귀식물을 식재한 수생식물원이 인접해 있다. 바로 앞에는 메밀꽃처럼 하얀 가우라 꽃밭이 조성되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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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라 꽃밭에서 태안 백합꽃축제 현장 ⓒ 정대희

▲ 가우라 꽃밭에서 태안 백합꽃축제 현장 ⓒ 정대희

이어 백화원과 무지개 동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 백합꽃으로 연출한 광경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사람의 능력이란 대단하구나!'란 생각과 만발한 꽃들이 주는 감동에 한 동안 물끄러미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망대를 내려와 르네브, 시베리아, 소르본느 등 다양한 백합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둘러본 백화원과 무지개 동산은 각양각색 꽃들에게서 느껴지는 신성함과 거룩함에 비로소 왜 그토록 숱한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바람둥이가 될 수밖에 없는가를 이해하게 됐다.

 

관람을 마치고 마지막 출구를 빠져 나와 주차된 자동차에 올라타는 순간. 온몸에 스며든 백합꽃 향기에 취해 어젯밤처럼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일 아침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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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원&무지개 동산 태안 백합꽃축제 현장 ⓒ 정대희

▲ 백화원&무지개 동산 태안 백합꽃축제 현장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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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희

 

2009.06.30 20:12 ⓒ 2009 OhmyNews
#태안 #백합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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