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ie Scholl(1918-1943)
김동규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선언 기념 오찬을 하던 중,
현 정부의 전횡에 대한 비폭력 저항을 호소한 내용을 읽었다.
그 가운데 한 대목에 이르러 내 마음 속 무언가가 '쿵' 울리는 소리를 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할 만큼 쇠약해진 전임대통령 입에서 나온
다음의 말이 핀처럼 아프게 가슴을 찔러온 것이다.
"이제 나는 늙었습니다. 힘도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평생을 싸우고 지켜왔던 민주주의 원칙들이 허물어지고,
집회 및 의사표현의 기본적 자유조차 유린당하는
현실을 지켜보는 노정객의 절절한 비탄이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에 시공을 달리하는 두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첫 번째는 2009년 오늘 어느 나라의 모습이다.
인터넷에서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한 '부엉이' 필명의 논객이
검찰의 준엄한 기소를 받아 구속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났다).
하이에나들의 집요한 공격을 온몸으로 떠안고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전직 대통령이 있었다.
49재까지만 그를 추모하겠다는 시민분향소가
<검은 셔츠 사나이>들에 의해 훼손되고 부숴지고 모욕당했다.
시청 앞의 타원형 잔디광장을 호위하듯 빙 둘러선
경찰 차벽은 이미 세계적 뉴스거리가 된지 오래다.
무엇보다 이 나라는 현재 IMF에 버금가는 가혹한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조세와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소득재분배가 극히 미약하다.
이 나라 조세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이전소득 재배분 효과를 기준으로
영국이 26.4%(2001-2002년), 뉴질랜드가 18.7%(1996년),
캐나다가 16.7%(2001년), 일본이 15.7%(1996년)인데 반해
이 나라는 2003년 기준으로 고작 1.5%를 기록 중이다.
당연히 실직, 질병, 빈곤과 같은 서민들의 개인적 불행을 완화시키는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 수준이 OECD 국가 최하위에 속한다.
이 와중에 취임 이후 부유층에 대한 줄기차고 과감한 감세와 함께,
(고스란히 서민에게 부담 전가되는) 전기요금, 가스요금, 담배, 주류 등의
간접세 증세를 추진 중인 이 나라 국가수반이 재래시장을 방문한다.
뻥튀기 2천원어치를 산 다음 어묵을 베어 문다.
그리고는 대형마트 규제를 읍소하는 시장 상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들이 아직도 1, 2년은 더 고생을 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곧이어 떠오르는 장면은 지금으로부터 57년 전 독일 뮌헨에서 일어난 것이다.
2차대전을 일으킨 나치스의 파시즘 독재에 반대하여
일단의 청년들이 국민들에게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촉구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책으로 출간되었고,
자신의 조국에서 3차례나 영화화되었던 이른바 <백장미 저항운동>이다.
청년들이 1942년 6월 시민들에게 우송한
<백장미통신 1호>에는 이런 부르짖음이 실려 있었다.
"무책임하고 어두운 충동에 깊이 빠진 지배자 집단에
아무런 반대 의사도 표시하지 않는 것은 문화국민의 치욕이다....
남들이 먼저 시작하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우리 능력이 다하는 한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들과, 독재체제에 저항을 시도해야 한다".
1943년 2월 18일 21살의 죠피 숄과 24살의 한스 숄 남매는
최후의 유인물이 된 <백장미통신 6호>를 대학 구내에서 배포하던 중 체포된다.
나흘이 지난 2월 22일.
열렬 나치 당원이었던 롤란트 프라이슬러 <민족재판소> 판사는
이들 남매와 또 다른 대학생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즉시 형이 집행된다.
추악한 범죄적 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비폭력 불복종을 촉구한 죄목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