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연습실에 놀러갔다가 가수됐어요

[그들의 이유 있는 밴드 결성② - 40·50대] 중년 아저씨들 뭉쳤다, '77밴드'

등록 2009.07.24 14:26수정 2009.07.24 14:2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play

77밴드가 연주하는 우지마라(김양) 남편과 나는 밴드 연습실에 딱 한 번 놀러갔다가 덜컥 객원단원이 되었답니다. 김양의 노래 '우지마라'를 연주한 동영상입니다. ⓒ 손현희


"거 한 박자 느리잖아! '따안~ 따따따따'하고 바로 나와야지!"
"어…. 어디? 아아 내가 한 박자 느렸구나."
"그래 그래 거기서 바로 치고 들어와야 되잖아. 자 거기부터 다시 해봐."


'쿵짝' '쿵짝' 한참 동안 신나게 연주하던 이들이 단장의 손짓 하나에 저마다 연주하던 손놀림을 멈추고 그대로 숨을 죽입니다. 누군가가 제 박자에 맞춰 연주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한동안 악보와 견주며 각자 연습을 하곤 틀린 부분을 바로잡습니다. 이윽고 모두 제 자리에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연주를 합니다. 그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 곡을 끝냅니다.

연습실은 따로 없었습니다. 단원 중 한 분의 사무실 한쪽에 '나름' 방음장치를 하고 건반과 드럼, 기타, 색소폰, 앰프, 스피커 등 악기와 음향장치를 두루 갖춰놨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연주를 하니, 신기하고 재밌을 수밖에요. 발로 박자를 맞추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모습이 꽤나 진지하고 열정적이었습니다.

자전거 타던 부부, 77밴드 객원 단원이 되다

a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던 겁없는 50대 중년 아저씨들이 밴드를 만들었어요. 참으로 놀라운 열정이랍니다. ⓒ 손현희


사실 이들과 만난 건 한 달 전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잘 아는 분의 밴드 연습실에 그냥 단지 '놀러' 갔을 뿐인데, 그 길로 밴드 단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건반을 맡게 됐고 저는 어설픈 노래 솜씨로 보컬을 맡게 됐어요. 우리 부부가 단원이 된 밴드의 이름은 '77밴드'.

77밴드는 구미 전자공고 20회 졸업생인 나장수(52)씨가 지난 2007년 5월에 만든 것입니다. 1977년에 졸업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요. 모두가 쉰 두 살 동갑내기로, 나이 지긋한 중년 아저씨들이랍니다. 거기에 대면 우리 부부는 마흔 두 살이니, 한참 어린 새파란(?) 객원 단원이지요. 저는 악기를 두루 다룰 줄 아는 남편 덕분에 여기 들어와 얼떨결에 보컬을 맡게 됐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한 건 아니었답니다. 나장수씨를 중심으로 동기생 세 사람이 한데 모여 취미생활로 즐겼다는데요. 모인 이들 중에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도 없었고 그저 음악이 좋아 모인 거라, 자기가 연주하고픈 악기를 하나씩 사서 77밴드를 만들었답니다.

"일주일 쯤 됐을 땐, 드럼 꼴도 보기 싫었어요"


a

77밴드 단장 나장수(52)씨. 겁없는 아저씨들로 이루어진 밴드를 만든 나장수씨는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습니다. 낮은 음으로 둥딱둥딱둥딱~ 기타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했다는 솜씨라고 믿을까? 또 영화배우 누군가를 닮은듯 '카리스마'가 느껴집니다. ⓒ 손현희


"저 친구가 제일 먼저 베이스 기타를 사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냅다 드럼을 샀지요. 그때부터 친구들이 한 명, 한 명 들어와 기타 치는 친구, 건반, 기타, 색소폰까지 두루 갖추게 된 거랍니다. 그때 막상 드럼을 사고 연습을 하긴 했지만 정말로 힘들더라고요. 한 일주일 쯤 되었을 때, 아이고 참말로 드럼이 꼴도 보기 싫더라고요. 내가 왜 이런 걸 해가지고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한 1년쯤 지나고 나니까 스스로 흥도 나고 재미나더라고요."

드럼을 치는 이병길(52)씨가 단원들의 이름을 가르쳐주면서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를 얘기해주었어요. 얘기를 듣다보니, 아무리 취미로 시작하긴 했지만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는 악기를 어떻게 선뜻 사서 하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했지요.

a

드럼을 치는 이병길(52)씨와 알토색소폰을 연주하는 임규화(52)씨. ⓒ 손현희

"아니, 그런데 참말로 처음 시작할 때, 악기를 조금도 다뤄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다니까요. 완전히 맨땅에 헤딩한 꼴이었어요. 그저 음악이 좋아서 덥석 악기 사서 밴드를 만들었으니까요."

"우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아마 나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네요. 하하하~"
"제가 처음에 선생님한테 질문했던 말이 있는데 뭔지 아세요?"

"어, 무슨 말이었는데요?"
"'선생님, 메이저조(장조)만 있으면 되지 왜 마이너(단조)조까지 있어야 하나요?'하고 물었어요."

"하하하!"
"그 정도로 암것도 몰랐던 거예요. 선생님이 그저 한숨을 푹 쉬시더라고요. 하하하!"

77밴드 단장이자 처음 만든 나장수씨는 그때 생각이 나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말해주었어요. 참으로 놀랍지 않나요?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이들이, 그것도 나이 50에 이런 밴드를 만들 생각을 했다니 말이에요.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던 아저씨들, 날개 달다

a

너나 할 것 없이 악기를 처음 다루는 이들이다 보니, 군데군데 틀리는 곳도 많습니다. 서툴고 모자란 부분은 서로서로 챙겨주고 맞추어 나간답니다. 이렇게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차츰차츰 실력이 쌓이는 거지요. ⓒ 손현희


a

동갑내기 동기생들이 한데 모여 한주에 두 번씩 밴드 연습을 합니다. 세컨 기타를 맡고 있는 김영주(52)씨. ⓒ 손현희


이 밴드와 우리 부부를 이어준 김태룡(52)씨는 퍼스트 기타를 맡고 있었는데, 자전거 동호회 모임에서 벌써 여러 차례 기타를 연주하는 솜씨를 본 적이 있었답니다. 이분은 뒤늦게 77밴드 단원이 되었다는데, 그 열정 또한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답니다.

이분의 이야기를 빌리면, 단원들 모두 자기 일을 따로 하면서 틈 날 때마다 모여서 연습을 해온 지가 벌써 두 해가 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단원들이 몇 번씩 바뀌기는 했지만 '작은 음악회' 형식으로 공연도 몇 차례 했다고 들었어요. 모두 취미로 밴드를 시작했지만, 부지런히 연습해서 공연도 하고 봉사활동도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직 부분 부분 미흡한 곳이 있지만, 모두 부지런히 모이고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훌륭한 솜씨로 공연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a

김충수 선생님. 이 77밴드가 오늘날까지 잘 이끌어올 수 있도록 도움주신 선생님이랍니다. '김충수 악단'의 악단장을 맡아 구미시의 거의 모든 행사를 이끄는 분이시기도 하지요. 단원들 모두 깍듯하게 '선생님'으로 모신답니다. 선생님 환한 웃음이 참 멋지지요? ⓒ 손현희

우리가 연습실에 세 번째 갔을 때, 그날은 연습을 마치고 소개해줄 분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분은 다름 아닌, 이 77밴드 단원들이 '사부님'으로 모시는 김충수씨랍니다. 구미에서 내로라하는 거의 모든 행사를 이끌고 계신 '김충수 악단'의 악단장이셨어요.

초창기에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이가 없어 고군분투 하다가 구미에서 악단을 맡고 있는 김충수씨에게 부탁을 해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단원 모두가 깍듯하게 선생님으로 모시고 있더군요. 악기에 '악' 자도 모르는 단원들을 선뜻 맡아주신 선생님도, 배우고자 하는 열정어린 단원들도 참으로 우러러 보였어요.

한 주에 두 번씩 꼬박꼬박 나오셔서 악기마다 연주법을 가르쳐주고 악보까지 손수 편곡해서 주셨다고 해요. 그러고 보니, 악보마다 눈에 띄던 '편곡 김충수'란 글귀의 주인공이었어요. 우리 부부는 객원 단원이지만 선생님께 인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단원들과 함께 그분이 꾸리는 라이브 카페 '낭만 콘서트'를 찾았지요.

내친김에 선생님께 오디션(?)까지 받고(이분의 연주에 맞춰 보컬을 맡게 된 내가 노래를 몇 곡 불렀답니다), 이후 선생님께선 제 목소리에 맞는 노래 몇 곡을 편곡해서 악보를 가지고 오셨더군요. 그날 이후론 지금까지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보다 훨씬 많은 곡을 거의 날마다 부르고 있지요.

가장 가까운 꿈은 '분수대 공원'에서의 공연

a

퍼스트 기타를 치고 있는 김태룡(52)씨 덕분에 우리 부부도 이 77밴드의 객원단원이 되었답니다. 남편은 건반을, 나는 보컬을. 그 곁에 노래를 부르는 분은 박성구(52)씨. 이 분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릅니다. ⓒ 손현희

저마다 다른 개성과 음악성을 지녔지만 오랜 동무들끼리 이렇게 한주에 두 번씩 모여 부지런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걸 느꼈답니다. 모두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중년 아저씨들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내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어요.

자신의 온 마음, 온 몸을 악기에 담아 내뿜는 소리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비록 아직은 어설프고 때때로 화음이 잘 맞지 않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게 희망이고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되겠지요.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른 악기를 가지고 소리를 낸 것이 합쳐져 아름다운 화음을 낼 때, 그 때마다 얼마나 뿌듯하고 기쁠까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가까운 꿈은 바로 구미시 송정동에 있는 '분수대 공원'에서 공연을 하는 거랍니다. 틀림없이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 믿습니다.

오늘도 연습실에서 부지런히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77밴드에게 큰 소리로 손뼉을 쳐드립니다. 짝짝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2. 2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3. 3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4. 4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5. 5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