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사회학

친구의 진정한 의미 깨닫게 해준 K

등록 2009.07.09 15:12수정 2009.07.0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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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안면을 튼 건 한 종교 시설에섭니다. 4년 전 겨울이죠. 당시 전 막 군 제대를 했고 세상 물정을 잘 몰랐습니다. 제가 인사를 건네자 그도 반갑게 저를 맞아 줬습니다. 그리고 받은 명함 한 장. 커피로 유명한 한 다국적 회사였습니다. 그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회사에서 판매하는 커피 등을 선물로 나눠 주곤 했습니다. 저도 몇 번 받아 먹었습니다. 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저는 늘 그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와 난 98학번 79년 생입니다. 학교는 다르지만 전공도 같고 더욱 놀란 건 제가 처음으로 취직한 회사가 그의 일터와 지척 거리였습니다. 우리는 직무도 외근 직이라 비슷했습니다. 전 한가한 날이면 외근 핑계를 대고 그가 담당하는 대형마트 서너 곳을 따라 다니곤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갈 때도 방향이 같아 자주 저녁도 같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도 길지 않았습니다. 그는 돌연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고 아프리카로 달려갔습니다. 국내는 너무 우물안 개구리 같고 영업하는 것이 때론 윤리적 도덕적인 시험대에 설 때도 있었다는 게 이유랍니다. 연봉이나 복지도 대기업 수준인 그런 회사를 그만둘 만큼 아프리카가 매력적일지 모르지만 일단 저는 그의 선택을 존중했습니다. 그 뒤 1년 간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I am back."

 

저는 너무도 반가워서 당장 보자고 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해보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니 연애라고 합니다. 그는 인기가 좋습니다. 키도 큰 데다 얼굴도 호남형입니다. 게다가 성품까지 훌륭하니 여자들이 그를 가만 놔둘 리 만무합니다. 저는 내심 그런 그가 부러웠고 때론 배도 아팠습니다. 직장 핑계로 연애 한 번 못한 제가 왜 그렇게 초라하게 보였던지. 아마도 그가 저보다 먼저 결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예상은 저의 결혼 발표로 흔들렸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생일이 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저는 오산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자기도 돕겠다는 말과 함께 웨딩카를 자비로 렌트해 공항까지 태워 주는 것입니다. 친구를 위해 그것도 자기 생일에 가족이나 애인과 함께 지내야 할 텐데 저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게 만들다니, 전 속으로 미안해 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결혼한 현충일은 전국의 국도, 고속도로가 꽉 막혀 차가 움직이질 못했습니다.

 

신혼여행 가는 비행기에서 문득 제 친구의 배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날이지만 남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운전의 수고까지 해준 다는 게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이런 그를 결혼 후 처음으로 이번 주말에 봅니다. 한 달에 한 번, 포천에 있는 지체부자유 자를 수용하는 시설에서 목욕과 빨래 봉사를 하러 가기 위해 섭니다. 평생의 한 번 뿐인 결혼식 날, 웨딩카 대여와 기사 역할, 시간 할애까지 친구를 위해 아낌없이 자기 모든 것을 내어준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서양 속담에 필요할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라는 말이 의미 있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시나브로 제 자신을 돌이켜 봅니다. 저는 31년 간 살면서 남한테 얼마나 진정한 관계였고 진정한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했는지 자문해 봅니다. 저는 그 친구를 통해 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봅니다. 이제는 직장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연구 조교로 대학원생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 친구를 위해 이제부터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친구 있나요?                      

2009.07.09 15:12ⓒ 2009 OhmyNews
#결혼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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