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국땅에 나홀로 남겨두고 떠난 남편

[중국 산동성 여행기 ①] 한여름, 중국 4대 화로 속에 빠지다

등록 2009.07.11 11:36수정 2009.07.1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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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세갈래의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고 있는 표돌천

세갈래의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고 있는 표돌천 ⓒ 김혜원


"지금 제남이 얼마나 더운데 여행을 하려고 하세요? 어제 보니 40도라고 하던데. 더위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데요. 차라리 가을에 오지. 여름에 제남여행이라니 말도 안 돼요."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여름휴가 기간동안 표돌천, 태산, 곡부 등 중국 산동성 지역을 돌아볼 생각인데 통역 겸 가이드를 해줄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니 여름에 웬 제남여행이냐며 펄쩍 뛰었지요.


아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비행기표는 예매해 둔 터. 덥다고 한들 얼마나 더우랴싶었지만 막상 제남 공항에 내리니 밤 비행기라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훅'하고 느껴지는 공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중 나온 여직원도 걱정을 합니다.

"하필이면 이 여름에 제남에 오셨어요? 여름엔 장백산같은 동북쪽이 시원하고 좋은데..."

"어차피 제남에 와야 할 일도 있었으니까 일도 잠깐 보고, 여행도 하자는 거지."

사실 제남행을 택한 것은 남편입니다. 이번 휴가는 일을 잊고 오직 여행만을 위한 시간을 내자고 했지만 알고 보니 사업상 제남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던 것이지요.    

다음날 아침. 호텔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근길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바람에 머리를 나부끼며 달리는 자전거의 행렬을 바라보며 우리도 시원한 아침바람을 느껴보려 호텔방의 창문을 열었지만 곧바로 닫아야 했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은 기대했던 상큼하고 시원한 아침바람이 아니라 사우나 안처럼 덥고 습하면서 탁한 바람이었기 때문이지요.

a  연면적 105Km에 달하는 표돌천 공원 안내도

연면적 105Km에 달하는 표돌천 공원 안내도 ⓒ 김혜원


아침부터 이렇게 푹푹 찌다니... 비로소 남경, 중경, 무한에 이어 중국의 4대 화로라로 불리는 제남의 지독한 더위가 슬슬 실감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덥다고 호텔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는 일.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 카메라와 손수건, 물통 등 간단한 짐을 챙겨들고 용감하게 길을 나서기로 합니다.  


여러 번 제남을 다녀와 제남의 볼만한 곳은 다 다녀보았다는 남편은 거래처와의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친절하게도(?) 40위안짜리 표돌천 입장권과 100위안짜리 지폐 한 장을 손에 쥐어 주고는 그 많은 중국 사람들 속에 저 혼자만을 남겨둔 채 사라집니다.

"무슨 입장료가 삼년 만에 세배가 올라? 삼년 전 15위안이었는데 40위안이란다. 중국도 물가 뛰는 걸 보면 무서울 정도라니까. 암튼 난 두 세 시간 걸릴 거야. 일보고 다시 이리로 올 테니 쉬엄쉬엄 천천히 돌아봐. 사진도 많이 찍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바로 달려 올 테니까." 

중국말 한마디 못하는 아내를 달랑 혼자 중국 땅 한가운데 내려놓고 가면서도 남편은 아무 걱정도 안 된다는 듯 유유히 사라져버립니다. 하긴 전화가 있으니 국제 미아가 될 일은 없겠지요. 

a  표돌천 물속을 여유롭게 유영하는 물범 한마리

표돌천 물속을 여유롭게 유영하는 물범 한마리 ⓒ 김혜원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며 한여름 낮 기온이 40도를 웃도는 날도 흔해 중국의 4대 열탕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집집마다 샘이 있고 버드나무가 우거진다는 뜻으로 천성(泉城)으로 불려진 곳이기도 하지요.

표돌천을 둘러보던 7월 4일 제남의 낮 기온은 체온 보다 높은 37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샘이 솟아나고 버드나무가 우거진 표돌천 공원은 더위를 식히기 위한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한때 물이 많았을 시절에는 1~2미터 이상씩 샘물이 솟아올라 장관을 이루었다는 표돌천. 그 유명한 표돌천을 찾아 얼마를 돌아다녔을까 드디어 눈앞에 아담한 호수 하나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호수 한곳을 향하는 것을 보니 여기가 바로 표돌천 이구나 싶겠지요.

그런데... 이게 뭐야? 기대했던 솟구치는 물줄기는 없고 호수 세군데서 작은 물돌기가 뽀골 뽀골 올라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청나라의 건륭제는 이 샘을 일컬어 '천하제일샘'이라고 극찬 했다는데 아마도 지금의 모습이 그 시절의 위용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연중 18도를 유지하는 샘물이 초당 1600리터 이상씩 솟아나고 있다니 그 물의 발원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맛 또한 달고 개운해  표돌천 물로 만든 차 맛 역시 일품이라고 들었지만 중국말을 하지 못하니 저에겐 그것도 그림에 떡 일 뿐이지요.

a  여류문인 이청조 기념관

여류문인 이청조 기념관 ⓒ 김혜원


힘차게 솟아오르는 표돌천의 물기둥은 보지 못했지만 연면적 105km에 달하는 공원 내에는 관란정, 봉산구적방, 백설루, 만죽원 등 입장료 40위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볼거리들이 들어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남송시대 유명한 여류문인인 이청조 기념관입니다.

제남에서 태어난 여류문인인 이청조는 시(詩)는 물론 특히 아름다운 사(詞)에 능했던 문인으로 가끔 한국의 여류문인 허난설헌과도 비교되어 조명되는 인물이지요. 기념관에 들어서니 유명하다는 그녀의 사(詞는)보다는 아름다운 그녀의 자태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실제로 저 정도의 미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시와 사 그리고 그림에도 능했다는 여류문인이 빼어난 미모까지 갖추고 있었다니 그녀야 말로 재색을 겸비한 뛰어난 재원이라 아니 할 수 없겠지요.

그녀는 금석학자인 조명성과 결혼해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북송 말 전란의 와중에 남편을 잃고 불우한 인생을 맞게 됩니다. 한때 화려한 시절을 누렸던 그녀가 전쟁의 와중에 고향과 남편을 잃고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지었다는 <성성만>은 그녀를 대표하는 명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a  이청조 기념관에서 그녀의 인생과 마주하다

이청조 기념관에서 그녀의 인생과 마주하다 ⓒ 김혜원


<성성만,聲聲慢>

尋尋覓覓,冷冷淸淸,凄凄慘慘戚戚。
乍暖還寒時候,最難將息。
三杯兩盞淡酒,怎敵他晚來風急!
雁過也,正傷心,卻是舊時相識。

滿地黃花堆積,憔悴損,如今有誰堪摘?
守著窗兒,獨自怎生得黑!
梧桐更兼細雨,到黃昏點點滴滴。
這次第,怎一個愁字了得!

정신없이 무얼 찾는지, 싸늘한 가을날,
처량타, 이내 신세, 걱정만 쌓이네.
더웠다 추웠다, 쉴 수가 없네.
두세 잔 술로, 세찬 밤바람을
어찌 이겨낼 수 있으리오?
기러기 날아갈 적에 더욱 가슴 아픈 건,
지난날 서로 알던 기러기라서 그러한가...?

온 천지에 국화꽃 시들어 쌓이니
그 누가 꺾는단 말인가?
홀로 창문 지키며 어둠이 몰려올 때를 기다리는가?
이슬비 한 방울 오동잎 위에 떨어지더니,
황혼이 올 때까지 줄곧 내리네.
이런 정경 앞에 서 있는 이내 마음을,
어찌 수(愁)자 하나로 다 형용할 수 있으리.

a  정자 아래서 가무를 즐기는 중국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정자 아래서 가무를 즐기는 중국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 김혜원


이청조 기념관을 나와 호젓한 정자에 이르니 한 무리의 노인들이 더위도 잊은 채 가무를 즐기는 모습이 보입니다. 처량하고 애잔한 전통 선률에 맞추어 곱게 춤을 추는 할머니들을 보니 가락을 알고 운율을 즐기는 저분들이 이청조의 후예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할머니들을 지나 또 다른 정자에 이르니 이번엔 아이들의 물놀이가 한창입니다. 어딜 가나 아이들의 모습은 귀엽고 천진하며 사랑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유난히 아이들 뒤를 따라 다니며 돌봐주고 놀아주고 챙겨주고 하는 모습을 보며 이래서 중국 아이들을 소황제라 부르는구나 싶었답니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가리지 않고 물총을 쏘아대는 장난꾸러기 녀석들에게 주의를 주기는커녕 한없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총에 다시 물을 채워주는 어른들. 여기서 물총세례를 받고 싶지 않다면 아이들이 노는 곳에서 멀리 피하는 것이 상수랍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저 아이들과 함께 물에 뛰어 들어 옷을 적시며 놀고 싶었답니다.
  
a  물총 놀이에 빠진 중국의 소황제들

물총 놀이에 빠진 중국의 소황제들 ⓒ 김혜원


산동성 여행의 첫 코스로 중국 4대 화로라는 제남을 택한 것은 너무나 잘 한 일이었습니다. 37도를 웃도는 기온 속에서 표돌천을 둘러보고 나니 다른 지방의 날씨는 아무리 더워도 견딜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두어 시간 후, 일을 마친 남편과 다시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꼭 다물고 있던 입을 떼고 말을 하니 시원하고 에어컨이 빵빵하게 켜진 차에 앉으니 더욱 시원하겠지요.

이제 표돌천은 다 보았으니 대명호와 흑호천 등 다른 곳도 보겠느냐는 남편의 권유에 도리질을 치고 맙니다. 아무리 여행이 좋아도 이 무더위 속에 더 이상 돌아다니다가는 더위 먹고 쓰러져 결국 일행에게 민폐를 끼치게 될 것이 분명하니 말입니다.

a  표돌천을 놀이터 삼아 노는 중국의 어린이들

표돌천을 놀이터 삼아 노는 중국의 어린이들 ⓒ 김혜원


한낮의 열기에 벌겋게 익어버린 제 얼굴을 본 남편도 무더위 속에 제남을 더 둘러보기 보다는 조금 일찍 태산에 올라 쉬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제남을 떠나 태산이 있는 태안으로 향하는 길. 오늘밤은 태산 정상의 호텔에서 신선이 된 듯 잠을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낮 동안의 더위와 피로가 어느새 사라집니다.     

다음 여행기는 태산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중국의 문학을 흔히 “한문(漢文), 당시(唐詩), 송사(宋詞), 원곡(元曲)” 이라 하듯이 당대는 시(詩)가 문학을 대표하였다면, 서민적 사회였던 송대는 문예의 꽃이 피면서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음곡(吟曲)에 따라 노래하도록 지어진 사(詞)가 널리 유행하였다. 사는 오언절구나 7언 율시와 같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섬세한 미적 의식이나 정감을 개인의 독백 형식으로 풀어놓는데 이청조는 바로 이런 사의 명인이었다 (네이버 지식 검색)


덧붙이는 글 중국의 문학을 흔히 “한문(漢文), 당시(唐詩), 송사(宋詞), 원곡(元曲)” 이라 하듯이 당대는 시(詩)가 문학을 대표하였다면, 서민적 사회였던 송대는 문예의 꽃이 피면서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음곡(吟曲)에 따라 노래하도록 지어진 사(詞)가 널리 유행하였다. 사는 오언절구나 7언 율시와 같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섬세한 미적 의식이나 정감을 개인의 독백 형식으로 풀어놓는데 이청조는 바로 이런 사의 명인이었다 (네이버 지식 검색)
#표돌천 #산동성 #이청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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