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지 않는 아들의 양심을 고발합니다

아들의 뱃살과 대리전을 치르면서

등록 2009.07.13 14:47수정 2009.07.14 10:2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들의 체중은 어느새 100kg에 이르고 있다. 뱃살이 가당치 않다. 출렁거린다. 요즘처럼 속옷만 입고 다닐 때는 보기조차 역겹다. 그동안 조깅도, 테니스도 같이 해 보았고 헬스클럽에도 모시고(?) 갔지만 늘어나는 뱃살을 막지 못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도중하차하기 일쑤였다. 왜 저렇게 독하고 끈질기지 못할까. 오히려 애비의 관심과 보호가 아들의 자생력을 이렇게 약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냥 내버려 둘까.


부풀어 오르는 아들의 뱃살을 두고 지난 몇 년간 벌인 설득과 노력이 별 결실 없이 끝난 셈이다. 그나마 더 이상 부풀지 않은 것이 다행이면 다행이다. 녀석에겐 비만이 만병의 원인이며, 방치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협박전도 이젠 먹히지 않는다. 먼 나라의 얘기처럼 들리는 것 같다.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그 녀석의 양심(?)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큰 용기가 요구되지 않는 상황인데도. 부모란 자식들로 인해 여러 걱정꺼리를 끼고 산다지만, 다 큰 아들의 뱃살까지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서글프고 부끄러울 뿐이다. 또 사치스런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부자간의 인연이 모질기도 하지.

며칠 전에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헬스클럽이 생겼다고 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또 기대하며, 3개월치 회비를 봉투에 정성스레 넣어 주었다. 애비의 간절함을 시위했다.

"이번에는 성공한다? 이건 아버지의 비자금이다."
"예, 아부지. 염려 맙쇼."

운동을 시작한 며칠, 아들이 열심히 땀을 잘 흘리는지 궁금했다. 문자 메시지로 확인해 보았다.


"ㅋ ㅋ  아부지, 열심히 잘 하고 있습니다. 걱정 맙쇼 ^^"
"말은 비단 같다. 하루도 빠지면 안 돼!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1kg이야."

아들도 이제는 달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이어트도 금연처럼 힘들다던데... 이러던 녀석이 일주일만에 집에 왔다. 살이 좀 빠졌을까? 기대하며 체중계를 내밀었다.

"자, 달아보자."

아들은 슬며시 꽁무니를 뺐다. 재촉하는 나의 압박에 의미 있는 웃음을 짓고 육중한 몸을 체중계에 올렸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빠졌나?"
"아, 이상하다. 똑 같네. 계속 운동 했는데도…."

애초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나? 맥이 빠졌다.

"이 녀석! 뭐라고? 독하게 안 했지. 먹는 것도 줄이고 있나?"
"노력하고 있십다, 아부지. 그런데 이제 겨우 일주일밖에…."

아들은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애비의 조급함을 되레 탓하는 것 같았다.

"인마, 그래도 좀 표가 나야지. 아휴, 저 똥배 좀 봐. 보기 싫어. 똥배가 나오면 '♂'도 살 속으로 꼭 숨는다는 것 알고 있제?"

좀 민망한 표현이었다. 독한 처방을 하고 싶었기에. 지켜보던 마누라는 그만하라는 눈치다. 며칠만에 집에 온 취업준비생에게 또 이렇게 약효 없는 잔소리를 하는 남편이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어디서 귀담아 두었던 말이 떠올랐다.

"하여튼 살 못 빼면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기업체에서도 살 찐 녀석들을 뽑지도 않는다더라. 이 불경기에 자기 몸 관리도 못하는 녀석에게 어떤 일을 맡기겠어! 여유부릴 때가 아니래도?"

녀석은 왜 부모를 닮아 가지 않았을까. 우리 부부는 취미도 운동이고 특기도 땀빼기여서 주위에서 운동중독 증세가 있다고들 하는데, 녀석은 그렇지 않아 답답하다. 닮으면 누가 뭐라 하나?  

오늘도 살 빼는 데 박차를 가하는지 궁금했다. 문자로 녀석을 치근거렸다. 이번에는 작전을 좀 바꾸었다. 잔잔한 감동을 주고 싶었다. 그 먼 옛날 아들의 탄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들래미! 덥제? 뱃살은 잘 있나? 이번엔 성공해서 두 번째 큰 선물을 줘야 돼?"

금방 회신이 왔다.

"그런데, 첫 번째 선물은 뭐였는데요 ㅋㅋ"

이럴 줄 알았다. 궁금해 있을 녀석에게 겨우 또박 또박 보냈다. 아들의 존재가치를 새삼 일깨워 뱃살을 줄여 보자는 의도였다.

"뭐겠네? 니가 준 것을 모르나? 생각해 봐. 애비 맘을 이렇게 모르니…."

이런 저런 선물을 생각해 봤을 게다. 우리네 정서에서 아들은 그 첫 번째 선물을 생각해냈을까?

"ㅎㅎㅎ 잘 모르겠는데요, 직접 좀 알려 주세용."

좀 쑥스럽기도 하고 장난기도 생겼다. 스스로 자기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싶었다.

"안 돼, 이 멍충아. 니가 풀어봐라. 모르면 영원한 숙제다."

이번에는 생각을 많이 했는지 문자가 좀 늦었다. 아마 답을 알았더라도 아들 역시 말하기가 좀 그랬을 게다.

"ㅋㅋㅋ 숙제는 천천히 풀도록 할게요. ㅋ 그다지 어려운 숙제는 아닌 듯^^. 2번째 선물을 꼭 드릴게요."
"오냐, 알았다. 그런데, 아부지는 살찐 선물은 거부한단다. ♥♥" 

덧붙이는 글 | <뱃살아 미안해>공모작


덧붙이는 글 <뱃살아 미안해>공모작
#뱃살 #운동 #끈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