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와 핵우산 그리고 평화적 핵이용 권리

등록 2009.07.21 17:55수정 2009.07.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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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의 위기와 도전들

 

북한이 2차 핵실험에 이어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에 나서겠다고 천명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남한은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지 공약을 명문화하였고 여당과 보수신문 일각에서 핵주권론에 대한 여론몰이에 나선 가운데 최근 정부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핵을 통한 억지'라는 냉전적이고 대결적인 역사가 한반도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지금 남북 모두 견지하고 지향해야 할 원칙인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는 북한과 남한의 일련의 대응들은 한반도 비핵화의 위기이자 중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한미원자력협정개정의 논리

 

우선 한미원자력협정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경제적, 상업적 이유 때문이라도 농축과 재처리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

- 핵무기 원료를 보유,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 핵주권의 문제이다.

- 농축과 재처리 활동을 하는 일본과 비교했을 때 불평등하다. 농축과 재처리를 원천으로 포기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이미 북한에 의해 사문화되었고, 이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에게는 '족쇄'에 불과하다.

- 핵확산에 대한 우려없는 파이로 프로세싱이라는 방식을 채택할 것이다. 이것은 재처리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파이로 프로세싱은 기술적으로 공인된 상태가 아니고 완전히 기술적으로 개발된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파이로 프로세싱 실험을 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7.6 국회 외통위)

 

이러한 입장은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 등을 제외하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의 주장으로 들릴 법하다. 핵무기 개발 의혹으로 갈등을 빚었던 나라들도 이러한 논리를 내세우며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핵무기 원료 생산이 목적이 아니라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말하는 비핵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1990년대 초까지 북한이 사용후 핵연료에서 추출한 플루토늄 양을 11kg 미만으로 추산했으나 이것은 한반도 핵 위기를 불러왔다. 비핵국가로서는 유일하게 농축과 재처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일본은 2007년 5월까지 핵폭탄 500개 이상을 만들 수 있는 40t의 플루토늄을 생산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매우 높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가 비핵화 원칙을 사실상 사문화시키고 있고, 재처리를 시도할 경우 핵확산의 가능성도 원천적으로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핵무기 개발이 걱정된다면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될 일"로 치부할 수준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움직임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

 

정부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추진에 대해 깊이 우려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핵폭탄은 위협이고, 가공할 위험성을 안고 있는 핵발전소는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인식이 국제사회에 보편적인 것인지 의문이다. 또한 실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경제적 이유는 내세우면서 심대한 환경적 위협은 간과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한미원자력협정개정과 한반도 비핵화의 위기' 토론회에 참석한 환경단체와 원자력공학 교수는 OECD 자료나 일본, 프랑스 등의 사례를 들어 재처리 비용이 직접처분 비용보다 높다고 지적한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가 경제적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http://blog.peoplepower21.org/Peace/30846http://eco-center.org/zbxe/56819)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지 제공을 명문화한 것은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전제한 것이고, 핵무기를 통한 보복공격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보유에 대한 맞대응으로 일각에서 핵주권론을 들고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들고 나온 것은 실현가능성이나 타당성을 고려한 것이기 보다는 지지층을 의식한 정책결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과 주변국들은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요구하고, 핵갈등에 대한 평화적인 해법 마련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북한이 이미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위배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비핵화 선언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발상은 북핵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읽혀진다. 한국 역시 핵우산에 이어 재처리 활동에 나서겠다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고수할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은 준수되고 이행되어야 한다'고 밝힌 2005년 9.19 공동성명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핵 갈등 해결의 목표를 무엇에 두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태도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핵보유와 핵재처리의 정당성을 부여해 줄 뿐이다. 그리고 향후 한반도에서 핵폐기 논의가 진전될 때 북한의 핵무기와 핵관련 시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이나 핵재처리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쟁점이 될 것이다. 현명한 정부라면 예상하지 못할 일이 아니다.

 

물론 한미원자력협정이 일본에 비추어 봤을 때 불평등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비핵국가로서 유일하게 '특혜'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서 불평등과 자존심의 문제로 인식할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핵비확산 문제와 관련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심각한 불평등성과 이중잣대를 비난해야 하며, 대다수 비핵국가들이 함께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국제사회의 핵군축 노력에 역행하는 정부

 

또한 정부의 태도는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핵군축 방향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국제사회에서는 핵무기 개발과 확산뿐만 아니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권에 따른 농축시설과 재처리 시설의 보유에 대해서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2005년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NPT 검토회의에서 "우라늄농축 및 재처리시설 건설을 5년간 유예(moratorium)하고 그동안 규제방법을 논의하자",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라는 연료 사이클에서 가장 기밀한 부분을 수십개국이 개발해 단기간에 핵무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면 핵 확산방지 체제는 유지할 수 없다. 한 나라가 그런 길로 나아가면 다른 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온갖 리스크-핵사고, 핵의 위법 거래, 테러리스트에 의한 사용, 국가에 의한 사용-가 높아진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핵 확산을 막기 위해 농축과 재처리를 통제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 것이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우라늄 농축시설과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을 다국적 관리시스템 하에 두는 대신에 대상국의 핵연료 공급을 보증해 줌으로써,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구실로 한 핵무기 개발을 막자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미국과 핵보유국들은 '핵보유국과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에게는 농축 및 재처리 자체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고 다국적 관리와 5년 유예 안에 대해서도 미국, 프랑스 등이 거부 의사를 밝혔었다. (관련하여 미국 카네기 평화재단의 핵 확산문제 전문가들도 보고서를 통해 우라늄 제조금지와 플루토늄의 일시 제조정지를 호소하기도 했음.2005년 11월 참여연대 등 개최 국제세미나 '한반도 비핵화와 로카쇼무라의 위협' 토론회 자료집)

 

미국은 비핵국가로는 유일하게 일본이 우라늄농축 및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갖고 있는 것을 용인하고 있고, NPT 미가입국이면서 핵무기 보유국가인 인도에 대해서는 "첨단 핵기술을 가진 책임 있는 국가"라며 30년간 금지해왔던 민수용 핵기술 교류를 허용했다. 당연히 NPT 미가입국과의 민수용 핵기술 협조는 NPT의 기본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란 역시 우라늄 농축 등 평화적 핵이용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면서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어 왔다. 일본의 경우, 대규모의 재처리 시설 규모와 핵폐기물 해외 반출과 관련해서 핵분열 물질의 분실이나, 외부 세력에 의한 탈취 위험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일본과 인도의 사례를 들어 미국의 핵권리 제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이중적인 핵정책에 편승하여, 이를 한국에 적용하라는 것인데.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핵능력의 불균형과 핵에너지 이용 권리에 대한 형평성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일본을 모델삼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후퇴하고, NPT 체제를 약화시키는 데 일조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렇다면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한국 시민사회단체들도 반대했던 일본의 로카쇼무라 핵재처리 시설 가동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인정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그린피스 뿐만 아니라 미국의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는 로카쇼무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공장 가동을 무기한 연기해서 NPT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4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윌리엄 페리 미국 전 국방장관 등 27인의 전문가들이 서명한 바 있음.  (http://www.ucsusa.org/global_security/nuclear_terrorism/japan-strengthen-the-nonproliferation-treaty.html)

 

 

평화적 핵이용 권리 주장과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한 핵우산 정책 같이 갈 수 있나

 

무엇보다 한국이 평화적인 핵이용 권리를 주장하려면, 먼저 유엔 등 국제사회의 핵군축 노력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핵무기 개발과 사용 금지에 반대하는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받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고, 그 이유로 한국이 미국 등의 핵무기 축소와 폐기 심지어 핵무기 사용 금지를 촉구하는 국제사회 노력에 제대로 동참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한국이나 일본은 공통되게 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핵불능화를 일관되게 요구해온 나라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려 하는 것은 비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지속적으로 성능을 개량하고 일부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은 용인하는 국가의 핵무기에 자신의 안보를 의존하려는 발상은 버려야 한다. 이 같은 현실은 핵무기 국가만이 핵군축의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국가의 핵무기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도 핵군축의 의무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국제적인 핵비확산과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자 정책방향이어야 한다.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고, 핵무기 사용의 위협도 없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 그리고 핵무기 원료를 제공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인류와 환경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핵 재처리 활동은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관련기사 핵재처리, 경제성 없고 국제사회 비확산 노력에도 역행

2009.07.21 17:55ⓒ 2009 OhmyNews
#한미원자력협정 #핵재처리 #핵군축 #비핵화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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