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출석이 가능한 국무회의 발언, 제대로 공개될까?

국무회의 속기록도 대통령 기록물에 준해 공개되는 것이 원칙

등록 2009.08.05 10:17수정 2009.08.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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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아니라 헌법기관 중에도 대리출석이 가능한 곳이 있다. ▲ 대통령의 회의체보좌기관 ▲ 집행부의 최고정책심의기관 ▲ 회의체 헌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진 국무회의가 바로 그 곳이다.

대통령령인 '국무회의 규정'에 의하면 국무위원이 국무회의에 출석하지 못할 때에는 각 부의 차관이 대리하여 출석할 수 있다. 대신 대리 출석한 차관은 관계의안에 관하여 발언을 할 수는 있으나 표결에는 참가할 수 없다(제7조).

방송법 등 미디어법 강행처리 과정에서 대리투표 논란이 있는 요즈음 대리출석을 규정한 국무회의 규정이 왠지 흥미롭다.

국무회의 내용도 속기록으로 보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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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안건을 심의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제공



우리나라의 국무회의는 통상적인 대통령제 정부형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유한 제도다.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및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된다. 의장은 대통령이, 부의장은 국무총리가 맡는다. 행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은 반드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국정에 대한 필수적 심의기관으로서의 국무회의는 대통령의 권한행사에 대한 내부통제수단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8월 4일부터 국무회의에서의 발언내용 전부가 속기록으로 보존된다. 청와대는 지난 4일 "기존에 회의록으로 작성하던 국무회의 내용을 속기록 형태로도 남기기로 하고 오늘 정부 중앙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리는 제32회 회의부터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무회의 내용은 '국무회의 규정'에 따라 그 요지만을 정리하여 '국무회의록'으로 작성해 왔다. 발언내용 전부를 속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국무회의 회의록은 박정희 행정부까지는 회의 결과와 함께 국무위원들의 발언 내용 등이 요약되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형식적인 내용과 회의 결과만이 정리되어 기록과 사료로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기록문화의 전통을 부활시켜 조선황조실록의 대를 잇는 국정기록의 역사성을 계승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K-TV). 또한 청와대 관계자는 "공공기록물관리법 등 법령이 정한 회의에 대해서는 회의록은 물론 속기록 작성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의하면 국무회의록은 물론 속기록도 공개가 원칙

정부 발표에 따르면 4일부터 발언내용 전부가 기록되는 "국무회의록은 비공개로 관리돼 정보공개청구가 있을 경우 사안에 따라 공개될 수 있지만, 속기록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지정 기록물로 지정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5년간 공개·열람이 금지된다'고 한다(대한민국 정책포털).

발표문만을 놓고 보자면 '회의록'은 비공개로 관리되고, '속기록'은 지정기록물로 지정되어 15년간 비공개된다.  이와 같은 회의록과 속기록의 관리는 현행법에 부합할까?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법)'에 의하면 대통령의 보좌기관인 국무회의의 기록물은 대통령 기록물이다. 동법 제9조는 "대통령기록물은 공개함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다만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제1항(비공개대상정보)에 해당하는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무회의의 회의록이나 속기록은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무회의 회의록은 비공개로 관리된다는 정부의 발표와는 정반대다.

발언내용이 담긴 속기록의 경우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관리하여 비공개한다는 것 역시 현행법에 부합되지 않는다. 동법 제17조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보호)에서는 "대통령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대통령기록물에 대하여 열람ㆍ사본제작 등을 허용하지 아니하거나 자료제출의 요구에 응하지 아니할 수 있는 기간을 따로 정할 수 있다(제1항)"면서 그 사유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1. 법령에 따른 군사ㆍ외교ㆍ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
2. 대내외 경제정책이나 무역거래 및 재정에 관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국민경제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기록물
3. 정무직공무원 등의 인사에 관한 기록물
4.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개인 및 관계인의 생명ㆍ신체ㆍ재산 및 명예에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기록물
5. 대통령과 대통령의 보좌기관 및 자문기관 사이, 대통령의 보좌기관과 자문기관 사이, 대통령의 보좌기관 사이 또는 대통령의 자문기관 사이에 생산된 의사소통기록물로서 공개가 부적절한 기록물
6.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정치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기록물

위와 같은 기록물의 경우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15년의 범위 이내에서 보호기간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국무회의의 속기록은 모두 이에 해당한다는 것일까?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한다면 정부는 보다 진실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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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소통 단절'을 상징하는 이른바 '명박산성' ⓒ 권우성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의 '불통'에 대한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광장은 차벽과 명박산성으로 막히고, 새로 열린 광장에서는 기자회견조차 할 수 없다. 소통을 하라는 지적에 정부는 '홍보'만을 강조하며 라디오 정례연설에 이어 국정홍보처 부활까지 거론되는 현실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녹색' 친환경차가 아닌 '방벽' 유리차가 등장한다.

국무회의의 회의내용을 속기록을 통해 기록으로 남긴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소통'을 거부하는 정부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다. 국무회의 회의록은 물론 속기록 역시 공개가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비공개가 원칙인 것처럼 살짝 비틀어 알린다. "기록문화의 전통을 부활시켜 조선황조실록의 대를 잇는 국정기록의 역사성을 계승하는데 의미가 있다"며 그 의미를 부여할 뿐, 국가기록물에 대한 국민의 접근가능성에 대해서는 미리 차단한다.

기록은 공개되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 공개를 통해 책임소재를 밝힐 수 있기에 또한 의미가 있다. 국가안전보장 등을 이유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국무회의 속기록 역시 공개되어야 한다. 비공개로 지정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후일 역사에 의해 진실이 밝혀질 것이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조차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절대군주인 왕이 실록에 접근하여 그 기록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기록을 기록 자체로 후대에 전하려고 했던 것이 왕조시대의 '기록 정신'이었던 것이다.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통해 '기록을 왜곡'하려는 정부가 이젠 '기록'의 의미를 조선시대로 돌리려고 한다. '공화정' 대한민국 국무회의의 기록이 '절대왕정' 조선시대의 '기록정신'에 맞춰 비공개돼야 한다는 건 '잃어버린 10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잃어버린 100년'이다.

시민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면 정부는 보다 진실해져야 한다. 정보독점과 무책임행정의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정부는 그간의 국무회의 회의록 중 비공개대상을 제외한 회의록 일체를 공개하고, 4일부터 작성되는 회의록과 속기록 역시 현행법에서 정한 대로 비공개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개해야 한다.
#국무회의 회의록 #국무회의 속기록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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