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점도 잘했어!"

등록 2009.08.07 10:52수정 2009.08.0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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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초등학교장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100점을 받은 아이들에게 5천원을 상금으로 주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몇 점 짜리' 인생이 되었습니다. 0점부터 100점, 이는 꼴등에서 1등까지 줄 세우기가 됩니다.

 

시험 점수가 아이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렸으니 안타깝습니다. 이것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학부모인 나도 시험 점수로 내 아이들을 평가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족들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면서 조카들이 성적이 얼마인지 알았습니다.

 

중학교 다니는 조카 한 명이 자기 반에서 1등하는 것 빼고 다들 중간쯤 되는 성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나와 여동생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조금씩 변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다른 부모들처럼 사교육을 열심히 시켰습니다. 하지만 조카들은 성적이 올라가기보다는 오히려 짜증과 가기 싫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공부를 해 엄마와 아빠가 보내느냐고 따졌습니다.

 

여동생 큰 딸은 엄마에게 제안을 했답니다. 엄마가 학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하겠다. 나는 일본어를 좋아한다. 국영수 학원이 아니라 일본어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답니다. 결국 여동생은 조카 생각을 존중하여 지금은 일본어 회화와 문법 공부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정말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여동생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데 이 녀석은 학원을 가지 않습니다. 집에서 혼자 공부합니다. 자기 동무들이 너는 학원도 다니지 않는데 어떻게 1등을 하는지 불만이 많다고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놀고,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한다고 합니다.

 

여동생은 이어서 자기 아파트 부녀회장 딸과 아들은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는데 지금까지 사교육을 한 번도 시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녀회장 교육 방법이 놀라웠습니다.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큰 딸은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고고학은 돈 안 되는 것인데 너는 전교 1등을 하면서 그럴 수 있느냐 돈 되는 전공을 하라"고 닥달을 한다고 합니다. 고고학을 폄훼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 담임선생이 돈 안 되는 공부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쓴 것입니다.

 

전교 1등을 하는 아이가 고고학을 한다고 돈 안 되는 공부니 그런 학과는 지원하지 말라고 하는 선생님을 말을 듣고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내 아이가 전교 1등을 하는데 고고학을 공부한다면 쉽게 가라고 할지 자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부녀회장은 "네가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가라"고 한답니다. 대단한 분이지요.

 

그리고 조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일명 '국영수'로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랐다고 했습니다. 다른 부모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어떤 조카는 체육을 전공한 후 사회체육에 관련된 공부를 시키고 싶다고 했습니다. 국영수에 매몰된 아이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여 사회에 나아와 자기가 하고 싶은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여동생 딸이 얼마 전 중간고사를 봤는데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말고사를 보고나서는 성적표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이 조카는 "나는 시험공부 안한다"고 시험볼 때마다 자기 엄마에게 선언을 하는데 자기는 기말고사를 성적이 좋았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성적표를 불쑥 내밀었는데 '48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동생과 매제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제는 맺고 끝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라 48점을 받았다고 자랑했다는 말이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여동생이 말하기를 그래 "지난 번에는 38점이었는데 10점 올랐으니 48점도 잘했어"라고 했답니다. 48점 받았다고 자랑한 조카는 어깨가 올라갔습니다.

 

그렇습니다. 48점받은 아이도 자기가 바라는 꿈이 있습니다. 일본어를 잘하는 꿈입니다. 전교 1등 하는 아이는 돈 안 되는 고고학을 공부하는 것이 꿈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와 선생님이 그 아이가 바라는 꿈을 이끌어 주면 됩니다. 48점 받은 녀석이 잘했다고 자랑해? 전교 1등이 고고학이나 공부를 해,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우리 아이들 미래는 어둡습니다.

2009.08.07 10:52 ⓒ 2009 OhmyNews
#학교 성적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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