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스틴과 우드워드가 꽃피운(?) ‘워터게이트 사건’

[서평]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알리샤 C. 셰퍼드 지음)

등록 2009.08.11 09:50수정 2009.08.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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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알리샤 C. 셰퍼드 지음) 겉그림 일부. 프레시안북 펴냄, 2009. ⓒ 민종원

▲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알리샤 C. 셰퍼드 지음) 겉그림 일부. 프레시안북 펴냄, 2009. ⓒ 민종원

권력이란 공동소유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매우 간사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런 권력 냄새에 코 낀 이들은 경쟁자는 물론 웬만한 동료조차 제 입맛에 맞게 받아들이려는 특징을 보인다. 권력을 나누고자 하는, 권력을 권력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이상 행동'에는 언제나 '기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기 십상이다. 한 마디로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이다. 누군들 쉽사리 권력에 대한 욕심 한 톨 없이 권력을 논할 수 있을까.

 

칼 번스틴과 밥 우드워드. 권력 냄새라면 개 코를 능가할 재능을 지닌 이들이 바로 번스틴과 우드워드였다. 닉슨이 대통령 자리에서 나가떨어지기까지 번스틴과 우드워드가 보인 집요함은 실로 대단했다. 지구 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엷은 냄새조차 그것이 권력 냄새라면 놓치지 않을 집요함과 열정을 지닌 이들 두 사람은 '워터게이트 사건'이라 불리는 당대 최대 사건에서 진실이 지닌 힘을 그대로 선보였다.

 

1972년 6월 17일 미국 워싱턴, 당시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던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괴한 5명이 침입하여 도청 행위를 한 것이 발각된 이후 그 여파가 일파만파 퍼졌던 '워터게이트 사건'이 있었다. 그 중심에는 권력 위 권력인 대통령이 있었다. 그 자리를 손에 틀어쥐고 필요 이상으로 권력을 부풀린 닉슨은 넘치는 욕구를 감당치 못하고 터져버린 권력에 자기 자신이 깔리고 말았다. 제 몸 못 가눌 만큼 방대해진 권력을 터뜨린 건 진실이었다. 1974년 8월 9일, 전날 사임 성명 발표를 했던 닉슨이 결국 사임했다.

 

아무도, 심지어 이 사건을 가능한 모든 면에서 끝끝내 추적한 번스틴과 우드워드조차 처음에는 사건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단순 침입사건이 아닐 것이라는, 제 멋대로 뛰노는 권력 냄새가 좀 짙게 난다는 정도였다. 그 진실을 온전히 다 드러내는 데 필요한 것은 그래서 진실을 향한 집요한 열의였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순회강연은 강사에게 자기 동료나 비판자를 공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후 30년간, 번스틴은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언론에 대한 비판의식을 연설의 단골 주제로 삼았지만, 우드워드는 언론에 대한 공격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우드워드의 1973년 이후 취재수첩에는 기자들을 "'관청 쪽 배포기사에 대한 더러운 애착'을 갖고 있는 포로들", "겉으로만 센 척"하고 "정보를 이리저리 분류하면서 정작 할 일은 하나도 안하는 놈들"이라고 적어놓고 있다. 우드워드는 사건을 파고들지 않는 기자들이란 "행정부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옮겨 적기나 하는 약아빠진 속기사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니토바대학교의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번스틴도 마찬가지로 다른 언론들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그처럼 미약하게 다룬 데 대한 강한 비판을 했다."(<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159)

 

성실한 노력이 우드워드 것이었다면 번뜩이는 재치가 번스틴 것이었다. 자유분방한 히피 기질이 번스틴에게서나 나오는 것이었다면 규정에 맞는 모범생 기질은 우드워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번스틴과 우드워드는 서로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시쳇말로 환상 복식조를 이뤘다는 것은 늘 워터게이트 사건 만큼이나 유명한 이야깃거리였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게 된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조건은 바로 진실을 향한 열정과 권력 너머를 보려는 집요함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결코 둘은 동료는커녕 친구조차 되기 힘들었다. 관심사에는 철저한 자세로 뛰어들면서도 그 외에는 일부러 게으르기까지 했던 번스틴보다 여러모로 규칙과 예의에 충실한 우드워드는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먼저 거론되는 이름이다. (환상의 짝을 이룬 이 둘을 부르는 애칭이 '우드스틴'(우드워드+번스틴)이었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을 번스틴과 우드워드로 부르는 것은 여전히 어색한 표현이다. 여하튼, 둘은 진실을 향한 열정과 집요함 때문에 서로 진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칼 번스틴과 밥 우드워드는 '사실'과 '진실' 사이 간격을 뚫었다

 

2009년 현재 이미 60세를 훌쩍 넘었고 오래 전 벌써 살아있는 20세기 언론 역사가 된 칼 번스틴과 밥 우드워드. 이 책은 두 사람이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언론인으로서는 그보다 더할 수 없을 만큼 급격히 유명 인사가 된 그들 삶에 비친 워터게이트 사건은 어떤 모습인가를 새삼 되짚어본 책이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번스틴과 우드워드가 자신들이 그 사건을 취재한 과정과 자료 및 뒷 이야기들을 모아 내놓았던 <All The President's Men>('대통령의 사람들')같은 책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책은 두 사람이 취재한 사건보다는 차라리 그 사건을 집요하게 취재한 당사자들인 이 두 기자를 역시 샅샅이 뒤진 자료들을 통해 살펴보려 했다.

 

한편, 번스틴과 우드워드 만큼이나 유명해졌던 얼굴 없는 이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딥 스로트'였다. 익명의 취재원 정도가 아니라 핵심 중에서도 핵심 정보를 쥔 취재원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던 이 '딥 스로트'는 워터게이트 사건 취재 후 30여 년 이상 공개되지 않아 더욱 큰 관심을 받아왔다. 둘은 2006년에야 비로소 '딥 스로트' 정체를 세상에 밝혔다. '딥 스로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지금껏 흥미롭게 만드는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재밌는 것은 <워싱턴포스트> 퇴사 후 자유롭게 저술가 활동을 해온 번스틴이 꾸준히 승진하며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우드워드에게 어느 날 그들의 워터게이트 취재 기록을 담은 각종 자료 전부를 팔자고 제의했던 일이다. 번스틴의 어려운 주머니사정 때문이었다는 이 일에 우드워드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드워드가 오랜 우정을 돌아보며 이 일에 동의하여 일은 성사되었고 이는 결국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련된 역사 자료가 한층 풍성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서문에 담는 것으로 그치기엔 꽤 흥미로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대통령이 사건의 정점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수록 취재 초기보다 더욱 더 진지하게 회사의 명운을 걸어야했다.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위험하기까지 짝이 없는 도박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를 '익명의 취재원'을 '딥 스로트'라는 성(性) 냄새를 풍기는 묘한 이름까지 붙여 가며 중요한 취재원으로 끌고 간 도전은 그야말로 모험이었다. 그러나, 사실과 진실 사이에 놓인 그 깜깜한 간격을 파헤치려는 집요한 열정이 결국 '진짜' 사실을 찾아냈고 위험한 모험은 그만한 대가를 받았다.

 

번스틴과 우드워드 두 사람 이름이 아닌 <워싱턴포스트> 이름으로 퓰리처상이 주어졌을 때 두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함께 분노했다. 위험한 모험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도 두 기자와 위험한 모험을 함께 하긴 마찬가지였다는 점을 확인시키려한 밴 브래들리 편집인은 둘을 위로하면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말은 번스틴과 우드워드처럼 권력의 그늘에 잠긴 진실을 찾으려는 열정에 사로잡혀 다른 것은 바라지 않는 무모한 도전자들에게도 적당한 표현일 것 같다.

 

"그래도 그 기사들을 누가 썼는지 잊어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우드스틴' 그러니까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이 진지한 기자에서 유명한 언론인으로 변하여 필요 이상으로 유명세와 이익(!)을 꽤나 누렸던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는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이미 벌어진 상황이 결국 그들을 그런 상황을 몰고 간 것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이 어떤 면에서는 '자기 자신과 싸우는 기자들'이기도 했음을 이 책을 주의 깊게 보는 이들은 발견할 수 있을 게다.

 

무엇보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남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건 이후 언론은 결코 권력이 말하는 것을 거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던 이전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회자되는 것은 칼 번스틴과 밥 우드워드라는 이름뿐 아니라 언론과 권력의 새로운 관계였다.

덧붙이는 글 |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두 기자, 그들의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색> 알리샤 C. 셰퍼드 지음/ 차미례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2009. 3./ 1만8천원

(원서) Woodward and Bernstein: Life in the Shadow of Watergate by Alicia C. Shepard(2007)

2009.08.11 09:50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두 기자, 그들의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색> 알리샤 C. 셰퍼드 지음/ 차미례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2009. 3./ 1만8천원

(원서) Woodward and Bernstein: Life in the Shadow of Watergate by Alicia C. Shepard(2007)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두 기자, 그들의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색

알리샤 C. 셰퍼드 지음, 차미례 옮김,
프레시안북, 2009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 #알리샤 C. 셰퍼드 #워터게이트 사건 #칼 번스틴 #밥 우드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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