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역에 걸려 있는 현수막. 평택 시내 곳곳에는 쌍용차 생산 재개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상규
77일 간의 쌍용차 파업을 지켜보는 마음은 내내 불안했다. 몇 번의 노사협상이 결렬되고, 공권력이 투입되는 과정에서 폭력의 강도가 점점 더해졌기 때문에 이러다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6일 노사 합의를 통해 길었던 파업을 끝내고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나올 때는 이번 파업의 성과와 한계를 따지기 전에 한숨 돌리며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파업은 끝났어도, 싸움은 끝나지 않은 듯하다.
파업 책임은 노조에 있다? 쌍용차 파산해도 어쩔 수 없다?
우선 파업의 책임이 모두 노동조합에 전가되고 있다. 노사합의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 간부를 포함하여 노조원 64명이 구속되면서 10여 년 만의 최대 공안사건으로 떠올랐다. 경찰은 쌍용차 노조와 민주노총에 대해 5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총리는 각각 "(쌍용자동차 사태가) 해외 투자자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해 국가적 손실이 컸다", "정부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고 철저히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고 말했고 보수언론 역시 이를 거들며 외부세력이 파업을 조장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쌍용차의 향방과 대책마련에 관해서이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적정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등 상황이 더 나빠질 경우 쌍용차는 파산할 수 있다", "(쌍용차가 파산하더라도) 산업 전체로 보면 피해 규모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고 말했다. 어렵게 정상화의 길에 들어섰지만 정부와 경영진은 쌍용차의 전망으로 매각과 파산을 너무나도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외국자본의 '먹튀'와 국책은행의 책임회피가 문제쌍용차 위기는 노조의 파업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위기는 2004년 쌍용차가 상하이차에 매각되면서 비롯되었다. 상하이차는 5909억 원에 쌍용차 지분 48.92퍼센트를 매입했다. 보통 신차 1대 개발 비용이 3000억 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하이차는 신차 2대 개발 비용도 안 되는 돈을 지불하고 쌍용차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 때문에 헐값 매각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2006년에는 쌍용차의 '카이런'을 생산하는 'L-프로젝트 라이센스 계약'이 240억 원에 상하이차에 넘어갔다. 역시 신차 1대 개발 비용이 3000억 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헐값 기술계약이라 부를 수 있다. 또한 상하이차는 애초에 약속했던 고용보장과 1조 2000억 원의 투자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이 모든 매각과 계약은 당시 쌍용차의 최대 채권은행이었던 산업은행의 결정이었다. 당시 중국 정부를 등에 업은 상하이차의 쌍용차 매각 목적이 기술확보라는 점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음에도, 산업은행은 기간산업인 자동차 사업을 외국자본에 앞장서서 팔아넘긴 셈이다. 채권은행 입장에서는 회사를 어디에 매각하며, 어떤 전망을 가지고 매각하느냐보다 빨리 팔아서 자신의 지분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제사회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진짜 모습은 산업은행의 실책이다. 권용주 자동차 전문기자는 당시 "채권단이 조금 손해 보는 대신 새로운 담보를 확보해 GM에 넘겼다면 쌍용차는 현재와 같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쌍용차 위기의 원인과 책임은 '먹튀'(먹고 튀는) 외국자본인 상하이차와 산업은행에 있다.
산업은행은 신차개발을 위한 공적자금 지원해야따라서 쌍용차의 정상화는 단순히 노조의 파업이 끝났다고 해서 이루어질 문제가 아니다. 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두 당사자와 관련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는 대주주 상하이차의 지분 소각(감자)이고, 둘째는 산업은행의 공적자금 투입이다.
상하이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경영권을 넘겼지만 여전히 쌍용차주식의 51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대주주이다. 쌍용차를 만신창이로 만든 책임과 애초 계약했던 투자금을 지급하지 않은 점을 물어서 주식 감자, 무상 증자, 출자 전환 등의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상하이차의 지분을 회수해야 한다. 이는 주주총회에서 결정 가능한 일이며, 산업은행이 의지를 가지고 상하이차와 협상에 임한다면 실현 가능할 것이다. 더불어 기술유출에 관해서도 검찰 수사를 통해 확실히 밝혀야 한다.
한편 산업은행은 퇴직금 등의 구조조정 비용으로 1300억 원을 쌍용차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쌍용차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신차 개발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1500억 원이 더 필요하다. 쌍용차는 이 금액을 산업은행에 요청했지만, 산업은행은 "법원 결정을 보고 판단하겠다"며 사실상 거절했다. 산업은행이 주 채권은행으로서 잘못된 매각과 쌍용차 회생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공적자금 투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의 뒷짐지고 남의 집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는 무책임하다.
제조업에서 보험업까지 이르는 자동차 산업의 파급효과많은 이들은 되묻는다. 왜 공적자금을 투여하면서까지 쌍용차를 살려야 하느냐? 이를 위해 우선 이번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 정부들의 자동차 산업 구제정책을 살펴보자. 미국은 GM과 GMAC, 크라이슬러와 그들의 부품업계까지 포함하여 총 300억 달러, 약 70조 원을 자동차 산업에 투입했다. 영국은 재규어와 랜드로버, 벤틀리에 36억 달러를 지원했다. 프랑스는 푸조와 르노를 위해 85억 달러, 스웨덴은 볼보와 사브를 위해 31억 달러를 투입했다. 이 외에 독일과 중국도 자동차 사업에 자금대출을 통한 지원을 하고 있다.
각국 정부들이 자동차 산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이유는 자동차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그 어떤 산업보다도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5년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의 생산유발효과는 1.2777로써 주요 산업부문들 중 가장 높다. 따라서 완성차 업체가 타격을 입을 경우 해당 업체의 직접고용 감소는 물론이며 부품협력업체 등의 연관 업체까지 타격을 입는다. 그런데 그 범위가 굉장히 넓다. 우선 철강을 비롯한 제조업에 영향을 미치고 판매망, 서비스업, 수리업, 보험업 등으로 타격이 전파된다.
쌍용차를 그냥 망하게 둘 수 없는 이유쌍용차 역시 약 250여 개의 1차 협력업체와 거기에 고용된 약 2만여 명의 노동자를 책임지고 있다. 2차, 3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약 1900여 개 업체로 늘어난다. 또한 쌍용차는 평택 경제의 1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완성차 업계 종사자는 33만 명이지만, 이와 연관된 제조와 판매 분야의 일자리가 470만 개나 된다고 한다. 이를 단순히 차용한다면 완성차 업체는 보유 종업원의 14배에 해당하는 고용유발효과를 갖는 셈이고, 쌍용차가 파산할 경우 약 10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