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복 서울시교육감 후보 지지자들이 지난해 7월 17일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주경복 지지 선언 발대식에서 장미꽃으로 글자를 만들어 보이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유성호
"1번 증거물 채택합니다. 2번 자료는 검찰이 증거 철회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3번은 증거 서류로만 채택합니다.… 500번 자료는 증거물 채택합니다."
검찰이 신청한 수백개에 이르는 증거 신청 자료들의 증거 채택으로부터 공판이 진행되었다. 500개가 넘는 증거 자료들의 채택이 끝난 이후 검사의 구형이 시작되었다. 애초 몇 시간이 예정된다던 검사의 구형은 검사의 자신감의 발로인지 예상 외로 구형 취지와 양정만 밝히고 간단하게 끝났다.
주된 요지는 "전교조 소속의 현직 교사들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상 정치적 중립성이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감 선거에 조직적으로 참여한 것이 불법이고, 교육 공공성을 해치는 것이 인정되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20명 전원에게 징역 6월에서 2년 2개월의 중형을 구형하고, 주경복 후보에 대해서는 10개월을 구형하였다.
비슷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공정택 교육감에 대해서 검찰이 징역 6월을 구형하고 재판부가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것에 비교해 더 중한 죄로 취급된 것이다. 예상을 깨는 중형 구형에 재판정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변호인측 변론과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을 위한 약간의 조정을 위해 15분의 정회가 선포되었다.
검사가 교육공공성을 거론하며 중형을 구형한 것에 대해서 일부 피고인들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검사에게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누구는 학원업자, 급식업자들에게 수십억원을 받아서 선거를 하고, 교장 교감, 교육청 실국장들 동원해도 아무 소리도 못하던 검찰이 교사들에게 교육 공공성을 입에 담으며 징역형을 구형할 자격이 있느냐?"항변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피의자들도 있었다.
검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회가 끝나고 이후 변호사의 변론과 피고인 22명의 최후 진술이 진행되었다. 울먹이면서 최후진술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아래 최후 진술 내용은 그들의 발언을 정리해 재구성한 내용이다.)
울먹이며 최후진술 하는 교사들 "여기 모인 20명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을 뿐이고, 교육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다른 사람보다 많았을 뿐이다. 모든 것을 선관위에 물어보고 합법적으로 하고자 하였으나 좀 더 세심하게 신경쓰고 알리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이들의 죄가 있다면 지부장을 잘못 만난 죄밖에 없다. 내가 서울지부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질 테니 나만 벌하고 나머지는 모두 선처해 달라."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장) "전교조를 일부 보수언론과 기득권의 왜곡된 시선으로 보지 말아 달라. 그렇다고 전교조 교사의 입장에서 보아달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필로 탄원서를 써준 수많은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의 구구절절한 탄원서를 열린 마음으로 읽어 달라. 그러면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이 보일 것이다." (전교조 서울지부 사립중서부지회 표** 지회장)"나는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아이들과 뒹굴고 같이 밥도 먹고 동고동락하는 교사의 삶을 꿈꾸며 맨 처음 산골 학교에 발령을 받았을 때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행복하게 아이들과 지내는 도중에 교장 선생님께서 시골 학교라도 학력 평가 점수가 낮은 것은 문제가 되니 학생들에게 미리 문제를 가르쳐 주라고 하여 난생 처음 윗 사람에게 대들었던 초년병 시절이 생각난다. 얼마 후 인근 학교의 선생님이 해직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유는 아이들을 성추행하는 교장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교사에 대한 내 삶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1500명의 전교조 교사들의 해직 사태에서 내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미안함이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도 전교조에 가입을 하게 되고 이후 내 삶의 준거가 되었다. 그렇게 교육과 아이들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내 삶이 지금까지였고 그것 때문에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 (전교조 서울지부 동부지회 강**지회장) '걸견폐요(桀犬吠堯)' 인용하자 퇴장해 버린 검사그런데 최후 진술을 진행하면서 코미디 같은 사건은 발생했다.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절에 공안 검사와 공안 판사들의 정치 재판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피고인들이 재판을 거부하거나 변호인이 변론을 못하는 사태가 있었지만, 그러나 검사가 재판 도중 퇴장해 버리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이번 공판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전교조 서울지부 사립강남동 지회의 김**교사의 최후 진술은 "걸견폐요(桀犬吠堯)"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하면서 시작되었다. 걸(桀)은 중국의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는 걸왕(桀王)을 의미하며, 걸견(桀犬)은 이 왕이 키우던 개다. 그리고 요(堯)는 중국 역사상 가장 어진 임금으로 회자되던 요순임금이다.
"걸왕의 개가 짖는 것은 요왕이 어질지 못한 도둑이라서가 아니라 그 주인이 걸왕이기 때문이다. 걸왕의 개는 제 주인이 포악한 사람이었으나, 오직 주인만을 따르기 때문에 주인이 아닌 요왕이 아무리 어질어도 주인의 명에 따라 짖게 되어 있다. 지금 여기 와 있는 우리 교사 20명과 우리를 기소한 검찰이......"이 대목에서 검사가 "재판장님!"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씩씩 거리면서 한참을 말을 못했다. 검사는 자신을 '선악을 가리지 않고 그 주인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걸왕의 개'에 비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함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이다.
사태를 짐작한 재판장은 "최후 진술을 막을 권리는 없다. 최후 진술은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검사나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인신공격하는 것까지 인정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고 진정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김 교사가 계속 "걸왕의 개는 짖기만 하지만......"으로 이어지자 검사는 참지 못하고 "재판장님, 저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퇴정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짐을 챙겨서 정말로 재판정을 나가버렸다.
검사가 퇴장하자 재판장은 좀전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면서 "유무죄에 생각이 다르다고 그 사람을 인신공격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앞으로 인신공격이나 모욕적인 진술은 자제해 달라"는 언급으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상중에 찾아와 소환하려는 검찰을 잊을 수 없다" 전교조 서울지부 공립중서부지회의 진** 지회장이 이 사태에 대한 언급을 이어갔다.
"방금 검사가 최후 진술에 대한 불만으로 법정에서 나가버렸다. 검사는 지금 이 한 순간의 분함을 참지 못하고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는데 대단히 잘못한 것이다. 여기 있는 22명의 피고인들은 수사와 심문 내내 검사에게서 6개월 동안 비아냥과 조소, 인신공격을 받아왔다. 그런데 최후 진술 하는 동안 단 한번을 참지 못하고 나가 버린 것은 자신의 기소 논리를 스스로 철회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는 80년 광주에서 전두환 노태우 군사도당이 무고한 광주 시민을 총칼로 죽인 것에 항의해서 집회를 하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고 20년 이상 동안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21년만에 40이 넘은 나이에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국가는 나에게 잘못했다면서 '민주화유공자'로 인정하고 초임 교사 호봉에 대한 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교사가 된 지 10년도 안 된 지금 국가는 다시 나의 교사직을 뺏으려고 한다. 돌을 던지는 아이에게는 장난일 수 있지만 그 돌을 맞는 개구리에게는 생사의 문제이다. 검사에게는 단순히 기소일 지 모르겠지만 우리 교사들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이다."공정택 식 교육과 이명박 정부의 경쟁 만능 교육이 우리 교육현장을 어떻게 황폐화시켜왔는가와 현 사태가 전교조와 교육계 진보세력에 대한 현 정부와 한나라당, 검찰의 공안 탄압이라는 김**교사의 구구절절한 최후 진술에 방청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박수치지 마세요. 여기는 법정입니다"라는 재판장의 제지에 이어 박**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북부지회 교사의 최후 진술이 진행되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전교조 간부의 부적절한 발언과 언론보도가 나오고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고발에 의해 수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많은 소문 중에 왜 전교조에 대한 언론보도만 갖고 수사를 했는가? 송파구의 어느 식당에 120명의 현직 교장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데 공정택이 왔다가 도망을 갔다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왜 수사를 하지 않는가? 수업 중인 초등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선거 홍보 사진을 찍고, 국민 혈세로 산하 교육청에서 공정택 홍보 만화를 찍어 배포한 것에 대해서는 왜 수사하지 않는가? 수많은 교장 교감, 학교운영위원들이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왜 가만 있는가?"검찰 수사의 형평성 상실과 전교조에 대한 표적 수사를 비판했다.
전교조 서울지부 강서지회 최**교사는 최후 진술 내내 목소리가 떨리고 울먹였다.
"나는 얼마 전 암 선고를 받았고 수술까지 받았다. 그리고 이 기간 중 가장 존경하는 시아버지를 똑같이 암으로 잃었다. 상중에까지 찾아와 소환을 하려하던 검찰을 잊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의 중심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검찰은 이 정도의 인간에 대한 존경심도 없는 것인가? 나는 실제로 선거 기간 중에도 몸이 안 좋아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메일 몇 개 보낸 것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고통을 받고 교직에서까지 쫓겨나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최후 진술을 하는 내내 최교사뿐 아니라 방청석의 여러 교사들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전교조 서울지부 사립북부지회의 허**교사의 최후 진술은 아이들과 함께 한 자원봉사 활동 이야기로 시작됐다.
"얼마 전 10일짜리 자원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학생들의 농촌 체험활동인데 교사로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런데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 학생이 개미들을 밟아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다가가서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왜 약한 개미들을 죽이냐고 물었다. 죽여도 된다고 대답한다. 너는 너보다 힘센 사람이 너를 괴롭혀도 좋으냐라고 물었다. 그래도 좋단다. 여기까지도 많이 놀랐는데 더 놀라운 대답이 이어졌다. 힘센 니가 개미를 죽이듯이 너보다 힘센 사람이 너를 괴롭히면 너는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으냐 라고 물으니 아이는 대답한다. '나는 죽어도 좋아요'라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학원을 안 가도 되잖아요.'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그 아이는 8살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학원을 다섯 개를 다닌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이렇다. 이런 교육을 바꾸자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이것이 죄인가?"허 교사의 뒤에도 많은 교사들의 최후 진술이 이어졌다.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겨 최후 진술이 끝났다. 그리고 재판장은 "검토해야 할 사건 기록이 방대하고 함께 신청된 위헌제소사건에 대한 심판도 함께 해야 하므로 시간을 충분히 두어 6주 후인 9월 24일에 선고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결심 공판이 모두 끝났다.
역사에 남을 재판, 사법부 어떤 판단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