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사형 당시 여순감옥서에서 쓰였다는 침관
이수광
저자의 마지막 여정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 안중근 의사가 교수형을 당한 여순감옥서. 교수형이 집행되는 순간 시신은 교수대 아래에 있는 침관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이 침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관과 많이 다르단다. 침관의 길이는 겨우 1m. 그러니 시신은 구겨져서 들어가야 한다. 일본은 이처럼 사자에 대해서도 인권을 침해했다.
안중근도 마찬가지, 그 역시 침관에 구겨진 채로 박혀 삶의 마지막을 끝냈으리라. 책에는 이 침관 사진이 실려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런 침관에 구겨진 채로 묻혔다는 사실을 안 그 순간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어떤 표현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먹먹해지는, 치오르는 분노, 이 비장한 슬픔들을 어찌 설명할까?
<안중근 불멸의 기억> 나머지 한 갈래는 안중근이 회상하는 자신의 서른두 살 삶이다. 사형을 하루 앞둔, 자신의 삶 그 마지막 밤인 1910년 3월 25일, 안중근 의사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자신의 생애를 반추하며 기억의 파편들을 끌어 모은다.
3천석 지기 부유한 집안 장손으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유년시절, 일본군의 총과 화약을 구해 총 쏘기에 몰두한 나머지 당시 어지간한 호랑이 몰이꾼들보다 총을 잘 쐈던 청소년기, 결혼과 성령에 충만한 전교활동,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하기까지 등 안중근의 삶이 순서적으로 그려지는데 안중근의 회상 형식이라 이야기는 훨씬 진실하게 와 닿는다.
옥중 안중근은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한다. 또한 동지들이 처참하게 죽어간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아내의 품속을 그리워한다. 그는 또한 하얼빈 거사를 앞두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거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의 품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갈까 흔들리기도 한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달리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이다.
그리하여 '어? 정말 안중근이 이랬을까?' 처음에는 이런 반감도 있었다. 그런데 책을 모두 읽고 며칠 동안 자꾸 생각나는 것은 정작 안중근 의사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다. 안중근 뿐이랴. 우리에게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도, 군복도 무기도 없이 두만강과 백두산 일대에서 이름없는 들풀로 피고지던 수많은 의병들 또한 그랬으리라.
저자는 안중근 유적지 답사를 통해 영웅 안중근을 우리에게 만나게 하는 한편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집필했다는 <안응칠 자서전>을 바탕으로 안중근의 내면 세계를 세심하게 묘사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영웅으로 부각된 인간 안중근을 만나게 한다. 안중근에게 감화를 받은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의 이야기 또한 드라마틱하다.(아래 박스기사 참고)
저자는 이 책을 쓰고자 3년간 현지를 답사했단다. 때문일까? 저자가 안중근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면서 누군가의 나래이션을 듣는 듯,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다니는 것처럼 생생하게 와 닿는다. 하얼빈 의거를 하기까지의 과정과 당시 러시아의 정치 상황까지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단지동맹비와 단지동맹터.단지동맹비는 단지를 한 곳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책속 설명
이수광
단지동맹비와 단지동맹터,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걸린 안중근 의사가 머물던 집, 여순감옥서와 침관, 안중근의 가족과 면회를 동생 공근·정근이 면회를 하고 있는 장면, 이토 히로부미는 파렴치한 독재자요 안중근을 월계관을 쓴 영웅이라고 보도한 영국 <더 그래픽> 보도 기록 등, 책에는 당시의 기록 사진과 저자가 답사 중에 찍은 사진 또한 풍성하다.
'우리는 안중근의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10월 26일이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삶을 던져 민족의 원흉을 제거한 날이라는 걸 몇이나 알까? 우리들은 영웅들을 역사 속에 박제화 시켜놓고 나라와 사람을 구하는 일은 그들이나 하는 거창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분분하던 생각들이다. 작가는 압록강 철교 위에서 탄식한다.
"목숨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치열하게 독립 투쟁을 한 선열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한다.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민족은 또다시 역사의 횡포를 만날 것이고, 역사를 통찰할 줄 모르는 민족은 미래로 전진할 수 없다."<안응칠 자서전>과 '치바 도시치' |
- <안응칠 자서전>은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서 집필한 책이다. 안응칠은 안중근의 아명인데, 장손 응칠을 워낙 사랑한 그의 할아버지는 '이 아이가 성격이 급하고 가벼우니 이름을 중근으로 바꿔야겠다'며 다섯 살 때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 치바 도시치는 안중근 의사 담당 간수이다. 그는 사형 당일 안중근에게 크게 감화, 존경하고 있음을 안중근 의사에게 고백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날 아침 안중근 의사로부터 '위국헌신군인본분'이란 휘호를 받는다.
치바 도시치는 고향으로 돌아온 뒤 매일같이 유묵과 위패를 앞에 놓고 기도했다. 헌병 출신 치바 도시치는 왜 안중근의 유묵을 평생 동안 간직하고 그의 위패를 모시고 봉공했을까. 안중근이 여순감옥서에 있을 때 그의 인품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안중근은 위대한 영웅이고 영혼의 스승이다. 평생을 안중근에게 감회되어 살던 치바 도시치는 1934년 50세로 병사했다.
"유묵과 위패를 불단에 바치고 아침저녁으로 봉공해주시오." 치바 도시치의 이런 유언을 따라 그의 부인 기요가 집안 불단에 유묵과 위패를 바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합장기도 하다가 1965년 3세로 사망한다. 부인 사망 후 그의 딸이 '다이린지'라는 절에 모셔두고 봉공, 1979년 서울에서 <안중근 탄생 100주년기념전>이 열리자 안중근 기념관에 기증했다. 현재 안중근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치바 도시치의 고향과 다이린지를 방문했을 때 작은 감동을 받았다. 한국인들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안중근을 일본인들이 기억하고 해마다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바 도시치 부분은 에필로그를 정리
|
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지음,
추수밭(청림출판), 2009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