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것보다 인재에 돈 쓰는 게 중요
 홈플러스 입점 계약 취소는 공간문제 탓"

[인터뷰] 이종욱 서강대 총장... 내년 개교 50주년 '특별 프로젝트' 추진중

등록 2009.08.18 10:53수정 2009.08.1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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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이한기 기자, 정리 : 김솔미 인턴기자
사진 : 남소연 기자
동영상 : 오마이TV 김윤상 기자

이종욱 서강대 총장 ⓒ 남소연


비주류 사학자. 지난 6월 29일 취임한 이종욱(63) 서강대 총장에게 붙는 꼬리표다. 그는 박창화의 필사본 <화랑세기(花郞世紀)>가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소수파다. 최근에는 '한국사의 뿌리는 통일신라'라는 지론에 입각해 김춘추를 재평가한 책 <춘추>를 펴냈다. 그의 학문적 주장은 늘 학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인 그는 담담하다. 아니, 당당하다. 그는 '비주류'라는 말에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가 처음부터 주류였느냐"고 되묻는다.

서강대 개교 50주년을 한 해 앞둔 시점에서 이종욱 교수는 첫 동문 총장이 됐다. 예수회 신부이거나 경영·경상대 출신이 아닌 인문학자가 총장이 된 것이다. 그가 4년 동안 총장으로서 역점을 둘 세 가지 일 가운데 가장 먼저 꼽는 것은 '전인교육'이다. '경쟁'보다는 '경쟁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에겐 획일화된 기준 아래 매겨진 성적표보다는 '특별한 서강'이라는 내실이 더 큰 관심사다. 남들은 100m 달리기의 속도로 치고 나가는데, 42.195km를 달리기 위해서는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셈이다.

1987년 6월항쟁 때의 일이다. '공부벌레'로 소문난, 원리원칙에 충실한 이종욱 교수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데도 스스로 휴강이나 결강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몇 명이건 간에. 그런 그가 어느 날 밤 늦게 교수연구실에서 나오다가 건물 로비에서 밤샘 농성중이던 학과 제자들과 마주쳤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온 그는 학생 대표에게 슬쩍 몇 만원을 건네며 한 마디 건넸다. "화염병 만드는 데 쓰지 말고 빵 사먹으라"고. 기자는 당시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목격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인문학의 위기'를 물으면 "교수로 앉아있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제대로 된 이론 하나 안 내고, 기존의 견해를 비판하지 못하고, 자기 선생이 가르쳐준 강의 내용을 그대로 가르치니 인문학의 위기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게으른 학문적 세태와 교수의 자세를 먼저 비판한다. 어느 직종이건 간에 가장 어려운 일이 '동업자 비판'이라는 걸 모를리 없지만, 그는 시시비비를 가린다.

비즈니스·CEO 총장이 '주류'인 사회적 흐름에 대해서도 그는 "CEO 총장의 방식처럼 사회에 진출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졸업 후에 취직해서 문서나 잘 작성하는 능력만 갖춘 인재를 길러내고, 그런 인재를 선호한다면 그 회사는 장래의 CEO가 될만한 인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딱 잘라말한다. 그러면서도 인터뷰 도중 E. H. 카의 말을 인용할 때는 책을 펴서 해당 문구를 읽어 줄 정도로 사실 관계에 대해선 신중하다.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왈가불가하지 않겠지만, 정부도 우리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뒷다리를 잡지 말라"고 할 정도로 그는 분명한 자신의 색깔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종욱 총장은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비주류는 '도전'의 또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 안에는 명분과 정당성이라는 잣대가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가 현실에 안주하며 불만만 털어놓는 한국 대학의 현실을 답답하게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난 13일 오전 서강대에서 만난 이종욱 총장은 1시간 넘는 인터뷰 시간 내내 담담하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꺼내놨다. 4년 후 이 총장의 '비주류 실험'은 어떤 결과를 낳을 지 내심 궁금했다. 그런 점에서 학자 이종욱이 걸어온 학문의 길만큼이나 총장 이종욱이 걷게 될 대학 개혁의 길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음은 이종욱 총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동영상인터뷰 ①] "세계적인 추세와 발 맞춰 가는 서강대"
[동영상인터뷰 ②] "돈 버는 것보다 인재에 돈 쓰는 게 중요"
[동영상인터뷰 ③] "<선덕여왕> 때문에 <화랑세기> 보겠다는 독자 있다"

"서강다움 사라졌다, 특별한 서강으로 돌아가야"

ⓒ 남소연


- 이 총장은 서강대와의 인연이 특별하다. 학부와 석·박사를 서강대에서 마쳤고, 아내와도 동문이다. 또한 내년 개교 50주년을 앞두고 취임한 첫 모교 출신 총장이기도 하다. 소감이 남 다를 텐데.
"1966년 서강대에 입학해 인연을 맺었다. 1975년 잠시 인류학·고고학·사회학을 배우러 유학을 다녀온 뒤 다른 대학에서 전임강사를 하다가 1979년에 박사과정을 밟으러 돌아왔다. 1985년 9월부터 서강대에서 강의를 했다. 서강대가 나를 학자로 만들어주었다. 말할 수 없는 고마움, 서강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총장에 출마했던 것이다."

- '공부벌레'로 소문났는데, 골치 아픈 총장직을 맡기보다는 학자로서 공부에 더욱 매진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텐데.
"고민이 컸다. 2007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경주에서 안식년 1년을 보내고 서강에 돌아오니 상당히 많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대학평의회 의장을 맡으면서 서강이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개선하고 자존심을 살리려고 했는데,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총장에 나서달라는 주변의 요청에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인문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걸 생각할 수 있고 쓸 수 있게 되는 학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된 연구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총장 출마를 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다. 총장 선거과정에서 네 번의 고비가 있었는데, 선거운동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출마했다가 어쩌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오게된 것이다.

내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서강에 대한 자부심에 치명적인 손상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여기까지 밀고 왔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1966년 입학했을 때 특별하게 다가왔던 서강, 그 특별함을 되살리고 싶었다. 물론 (당시와 똑같이) 되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21세기에 맞는, 2009년에 맞는 특별한 대학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 이 총장은 '서강다움'이 사라졌고, '특별한 서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강다움'이 무엇이고, '특별한 서강'이 점차 사라진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1966년) 입학했을 때 서강은 다른 대학과 달랐다. 교수 다수가 외국인 신부였고, 이들이 운영하는 대학시스템은 일제 잔재가 남은 대학 시스템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도 그 유전자가 남아있다. 모든 강의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휴강 없는 수업도 그렇다. 학교 운영 전반이 '정상적'이었다. 교수들의 역량도 해당 분야에서 최고 수준으로 수월성있는 교육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교수와 학생 간의 애정은 컸던 초기 서강의 장점은 분명 다른 대학과 차별성이 있었다.

예전에는 서울대 화공과 출신 교수였던 분이 서울대 갈 실력이 되는 자녀를 일부러 서강대에 입학시켰다. '특별한 서강'의 힘이라는 건 바로 그거였다. 그런데 지금 서강대 교수로 재직중인 그 자녀분은 자기 자녀를 서울대에 입학시켰단다. 이게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 아직도 서강은 그런 특별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자신감을 갖고 특별한 서강을 만들어내는 일이 총장으로서 내게 주어진 역할이다"

- 이 총장은 은사였던 한국사의 거두 이기백 교수와 다른 학문적 견해를 내놓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러한 학문적 수용성이 '서강다움'이라는 자유로운 학풍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나.
"그렇다. 이기백 선생은 한국사의 한 중심에 우뚝 서 있던 분이다. 한국사, 특히 고대사에서부터 신라사를  얘기할 때 세 가지 모델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고구려·백제가 망한 다음에 쓰여진 삼국사기 등을 가지고 재구성한 역사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역사 모델이 두번째다. 그 두번째 모델의 한국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국사기 같은 데에서는 건국 신화부터 이야기를 쭉 하는 반면, 1920년대 이후 일본 학자들이 한국사를 다루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신라의 역사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4세기 중반 신라와 백제의 역사를 버린 것이다. 지금 고교에서 사용되는 역사교과서를 보면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 역사 서술이 적지 않다.

74년에 석사학위 논문을 심사받고, 81년에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 받았는데, 당시 나는 전혀 다른 견해를 밝혔다. 당시 이기백 선생은 당신과 다른 견해를 편 내 논문에 대해서 "지금까지 나온 연구 가운데 가장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인정해주셨다.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에 개의치 않으셨다. 그래서 내가 서강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이기백 선생이 만든 역사적 모델과는) 전혀 다른 모델을 만든 이종욱을 학자의 길로 인도해주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두번째와 세번째 모델은 학문적인 면애서는 결별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관계에서 보자면 두번째 모델이 세번째 모델을 인정해 준 것이다. 이기백 선생은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내가 다른 대학에서 그랬다면 석·박사 논문을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 누가 초래했나? 전인교육 강화할 것"

ⓒ 남소연


- 총장에 취임하면서 '전인교육'을 유달리 강조한 까닭은 무엇인가.
"초창기 서강은 졸업 학점 160점 가운데 교양과목 비중이 70점 이상이었다. 영어나 제2외국어의 비중도 꽤 높았다. 당시 대학의 현실에 비춰볼 때 상당히 새로운 교육방법이었다. 1960년대 중반께 서강대 교육을 전인교육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정치·사회·종교·과학 등 모든 게 전인교육의 과목에 포함돼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당당하고 다양한 분야에 적응할 수 있는 다면적인 교육을 한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지난 20년 동안 많이 바뀌었다. 학생 수가 크게 늘었는데 그에 걸맞은 교육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 탓에 전인교육이 후퇴하고 예전처럼 진행되지 못했다. 다시 제대로 된 전인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전공교육도 중요하지만, 전인교육 바탕 위에서만이 제대로 된 전공교육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수준높은 강의를 위한 교수 역량도 강화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 최근 대학들이 인문학과 기초학문에 대한 관심이 적어진 게 사실이다. 응용 학문을 강조하고, 학생들도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비즈니스·CEO 총장이 유행이 돼버린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시대에 인문과 기초학문을 강조하는 전인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 않나.
"미국 하버드대도 전공교육보다 전인교육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전공교육은 (학부과정이 아닌) 대학원에 가서 전념하는 교육 방향이다. 한국 사회에서 CEO 총장이라고 하면 무언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세계적인 추세는 전인교육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서강대는 세계적인 추세와 발맞춰 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앞서 가는 것이고.

일부에서는 (소위 취업에 유리한 실용학문을 유독 강조하는) CEO 총장의 방식처럼 사회에 진출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에서는 인간세상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뽑고 그렇게 길러내야 한다. 졸업 후에 취직해서 문서나 잘 작성하는 능력만 갖춘 인재를 길러내고, 그런 인재를 선호한다면 그 회사는 장래의 CEO가 될만한 인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서강대는 그런 점에서 (세속적인 대학 기준과는) 다르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자연과학 분야에 있어서도 연구만 잘 하는 연구원을 길러내는 게 아니라,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사회에 나가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춘 인재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써먹는 지식보다는, 어떤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해결방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그러한 교육이 긴 안목에서는 나라에도 이익이 된다. 대학은 회사 입장에서 요구하고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조직이다. 회사는 수익을 내는데 힘을 기울이지만, 대학은 학비나 기금 등을 모아서 학생들에게 투자하고 쓰는 곳이다.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게 중요하다. 그럼, 잘 쓴다는 게 뭐냐? 세상에 나가서 여러가지 문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게 서강대가 바라는 인재상이다."

-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인문학에 대한 대학의 관심이 소홀했다. 그런 가운데 당선된 인문학 출신 총장에게 거는 기대가 큰데.
"총장 선거 과정에 인문학을 살려내겠다는 공약을 내건 건 아니다. 전인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내가 말한 전인교육은 비단 인문학도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경제·경영·공학·사회학도 등 모든 학생들이 다 포함된다. 오히려 인문학도가 아닌 학생들에게 전인교육이 더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데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놓여있다. 교수로 앉아있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제대로 된 이론 하나 안 내고, 기존의 견해를 비판하지 못하고, 자기 선생이 가르쳐준 강의 내용을 그대로 가르치고, 지금 인문학의 위기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제를 풀 답은 (대학이나 학생이 아닌) 다른 데 있다.

역사 공부하는 내 경우만 하더라도, 77년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와 85년 서강대에 와서 초기에 가르쳤던 학생들에게는 미안하다. 올해 내게 한국사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에게는 그나마 덜 미안하다. 무슨 이야기냐면, 지난 30여 년 동안 강의 내용이 계속 바뀌고 진화해왔다. 기존 인문학 체계에 대한 도전이자 비판, 그리고 새로운 판을 짜는 강의를 했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고, 과거 학생들에게 미안한 것이다. 인문학자가 나이가 들수록 깊이를 더하게 되면 인문학이 왜 위기이겠나. 그렇게 안 하니까 위기일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 내년이면 서강대가 개교 50주년을 맞는다. 이에 발맞춰 '특별한 서강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프로젝트에서 총장 임기 4년이 아니라 25년 후 서강의 달라진 모습을 목표로 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총장 취임 100일쯤 되면 대충 개교 50주년 프로젝트의 윤곽을 잡을 것이다. 물론 그게 완성된 모습은 아니다. 올해 말까지는 직원들하고 계속 얘기를 해나갈 것이다. 내년 1, 2월께 완성하고 4월에 개교 50주년을 맞아 선포할 계획이다. 또한 내년 3월 1일부터는 시행해 나갈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프로젝트 기간을 25년이라고 설정한 건, 세대를 바꾸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다. 교수역량 강화만 해도 그렇다. 지금 영입되는 젊은 교수들이 성과를 내고 전체의 틀을 자연스럽게 바꾸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세대가 완전히 물러가고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되려면 세대의 변화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재단에도 이러한 점을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려고 한다."

ⓒ 남소연

- 지난 6월 27일 총장 취임 간담회 때 '진화하는 대학 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술지주회사 형태의 연구 모델을 서강대 안에 만들고, 장차 코스닥에 상장에 수익을 남겨 대학 재정 확충 방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진척이 됐나. 
"총장에 당선된 뒤 세 가지를 강조했다. 전인교육, 교수역량 강화, 그리고 산학이다. 산학협력이 아니라 산학이다. 산학부총장직도 그래서 만들었다.

7월에는 '에스메디(S-MEDI)'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암이나 파킨슨씨병 등을 초기 진단하는 기술과 관련된 회사다. 기술 개발을 더 한 뒤 상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CNN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기술이다. 연구 인력이 서강대 학생들과 교수로 구성돼 있고, 몇 년 후에는 코스닥이나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서강대에는 기술지주회사가 있는데, 에스메디에 투자해 4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중에 성공적으로 국내외 증시에 상장돼 수익을 올리게 되면 장학금은 늘리고 등록금은 낮출 수도 있다. 학교 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1호 기업은 창업했고, 곧이어 2호와 3호 기업도 구상 단계를 넘어 추진중이다."

- 정부에서 등록금 대출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졸업 후 취직해서 갚을 수 있도록 제도 보완에 나섰다. 그러나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고액의 등록금을 낮추는 게 문제 해결의 본질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인 여력이 있으면 등록금을 안 올리면서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 그게 100% 맞는 이야기인데, 국공립과는 달리 사립학교의 경우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지난 몇 년 동안 등록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해왔고 동결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경비 지출은 늘어나고 있는데 등록금을 동결하고 풀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학교에 입학해서 (지불한 등록금보다) 더 많은 걸 얻어가게 해서 손해를 보지 않는 양질의 교육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등록금 문제와는 별개로)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겠지만, 대신 정부도 서강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뒷다리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홈플러스 입점취소, 공간문제 우선으로 결단"

- 서강대 총학생회측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서강대 입점 계획이 취소됐다는데 사실인가. (※ 서강대는 삼성테스코와 계약을 맺고 2011년 완공 예정인 '국제인문관 및 개교 50주년 기념관'에 홈플러스를 입점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최근 안팎의 비판 여론에 주춤한 상태였다.)
"(홈플러스 입점 문제를 놓고) 학생들과 많은 얘기를 했다.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서강대는 공간이 부족하다. 홈플러스 입점 계획도, 해당 건물의 일부를 서강대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조건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아직 마포구청에서 인·허가가 나지 않았다. 언제 나올지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인·허가가 나도 공사기간 등을 생각하면 2011년에 사용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당장 내년에 40~50명의 교수를 초빙하려고 하는데 당장 그 분들에게 드릴 연구 공간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 공간 확보를 위해 그렇게 3~4년을 기다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계획된 교수 초빙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또 다른 침체기로 빠져들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

(홈플러스 입점 계약 취소는) 총장인 나 혼자 결정한 게 아니다. 이사장도 검토했다. 지난 7월 28일에 총학생회장과 대학원 학생회장에게 여러가지 많은 얘기를 했는데, <오마이뉴스>에는 일부 내용만 보도돼 오해를 낳았다. 당시에는 계약 취소가 최종 결정되지도 않았다. 어쨌든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기존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 등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 애초 삼성테스크와 맺은 계약에 독소조항이 많다는 지적과 함께 대기업의 문어발식 기업형슈퍼마켓(SSM) 확장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 등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계약 취소는)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계약에서 '을'이 아무리 유리해도 '갑'이 유리한 게 있을 수 있다. 어느 쪽에서나 독소조항은 있을 것이다. 그건 상대적인 문제니까 특별히 얘기할 생각이 없다. 다만, 서강대가 만일 이 계약 해지로 인해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다. 기업형슈퍼마켓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알고 있지만, 그런 정황이 이번 계약 취소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별개의 문제이고, 별도의 판단이었다. 공간 문제에 대한 해법이 가장 큰 판단 기준이었다."

- 비정규직법의 유탄을 맞아 대학 시간강사들이 잇달아 해촉 당하고 있다. 최근 고려대와 성공회대 등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데. 서강대는 어떤가.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강의 평가가 나쁜 것에 대한 패널티는 생각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똑같은 강의를 하면서 평가가 나쁘다는 건 문제다. 그러면 그 다음 학기 강의를 안 준다던지 하는 건 고려중이다. 단지 비정규직법에 의한 해촉이나 해고 등의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교직원 전체적으로 임시직 숫자도 다른 대학보다는 훨씬 적다."

- 많은 대학들이 학부제에서 학과제로 전환했거나, 이를 검토하고 있다. 학부제나 학과제는 서로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부제를 확실하게 실시했던 대학 가운데 하나가 서강대다. 학부제를 실시했던 건 교수보다는 학생들을 위해서였다. 학부제를 실시하면서 제2, 제3의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인문학부에 입학한 학생이 경영학을 (복수로) 전공한다고 해도 조금도 걸릴 게 없다. 서강대는 커리큘럼을 학생 스스로 짜기 때문에 강의시간표가 문제되지도 않는다. 이전에는 전과제도가 있었는데 그것도 필요없게 된 것이다.

물론 학부제를 하면 힘든 점도 있다. 경영학과 등 일부 학과에 학생들의 쏠림 현상이 벌어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문제없이 조정해왔고, 앞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더 좋은 전공을 제시하면 편중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사라지는 학과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서강대는 우선 교수 신분에는 절대 피해를 안 주고 가려고 한다. 학생 수는 적어도 교수에게는 피해가 없으니 문제가 없다. 사립대에서 1년에 학생들이 한두 명 오는 학과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고민이 있겠지만, 그건 각 대학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다만 서강대는 아직 그런 문제에 봉착하지 않았다."

ⓒ 남소연

- 요즘 새로운 대입전형의 하나로 떠오르는,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요하다고 본다. 서강대도 입학사정관제를 채택하고 있다. 일반론적인 얘기를 하자면, 경험도 많고 자질을 갖춘 사람이 입학사정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 선발의 한 트랙으로, 제대로 된 입학사정관이 좋은 학생들을 뽑는 걸 꺼려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를 전면적으로 하는 데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다양한 (학생 선발) 트랙을 만들어 다양한 학생을 뽑아야 하는데, 학생 전부를 입학사정관제도로 뽑으라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각 대학에 자율권을 주고 있고, 더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MBC <선덕여왕>이 인기를 끌면서, 다시금 <화랑세기(花郞世紀)> 논쟁이 뜨겁다. 몇 년 전 김별아의 소설 <미실>로 <화랑세기>가 주목을 받은 것처럼. <미실>이나 <선덕여왕> 신드롬은 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을 진본으로 주장했던 이 총장의 학문적인 영향 때문에 탄생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감회가 어떤가.
"(필사본 <화랑세기>가 진본이라고) 1995년 4월에 처음 발표했다. 그때 '이종욱은 학자로서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난 당당했다. 서강대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미국에 가서 인류학·사회학·고고학을 공부했다. 그런 주장의 바탕에는 역사만이 아니라 인류학·사회학·고고학적인 관점이 다 포함돼 있고, 그게 한덩어리가 돼서 역사를 파헤친 것이다.

그런 노력이 융합적이라니 통섭이라는 표현은 안 쓰겠다. 다만 '이종욱식' 역사연구 방법이 만들어진 거다. 현대 역사학의 추세를 보면, 역사학자들이 인류학 등의 공부를 하면서 역사를 해석하는 안목을 넓힌다. 그런 점에서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이다. (필사본 <화랑세기>에 나오는) 그 많은 얘기들은 신라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것들이다. 증거들도 나오고 있다.

다만, 금방 해석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뿐이다. 그걸 이론화하고 학문화하는 건 학자의 몫인데, <화랑세기>를 보면 다 설명이 된다. 그걸 못한 사람들이 <화랑세기>가 가짜라고 하는 거다. 1999년에 <화랑세기> 번역본을 처음 펴냈다. 당시에는 이따위 책을 번역했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나오면서 <화랑세기>를 다시 봐야겠다는 독자들이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돌아보니 한국 문화컨텐츠 산업의 원천자료를 제공했고, 누구도 못했던 큰 작업을 한 셈이 된 거다. 다만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서  E.H.카(Edward Hallett Carr)의 이야기가 딱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선정소설이나 역사소설을 써서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저작물의 장식물로써만 과거사실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화랑세기>도) 영화나 드라마의 장식이 됐지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화랑세기 진본설 발표했을 때, 학자 생명 끝났다고 보기도"

-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이 여자로 등장하고, 드라마 <허준>에서는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으로 등장한다. 역사적으로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 역사적 혼란이 드라마 <선덕여왕>에도 나오고,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역사냐 소설이냐의 차이다. 역사가는 역사적 상상력을 가지고 책을 쓰고 논문을 써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가 역사적 상상력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소설적 상상력으로 쓰면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도 100% 소설로 보면 되는데 역사로 보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

-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학자 이종욱은 비주류로 불린다. 그런 평가가 섭섭하지 않나.
"(그런 평가는) 당연하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가 처음부터 주류였나? 몇 년 전 교황이 코페르니쿠스 무덤에 가서 사과를 했지 않나. '과거에 잘못했다'고. (나중에 나의 주장이 정설이 되고 학계 주류의 입장이 될 것이라고) 난 100% 확신하고 있다. 처음부터 주류가 되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기존 학설을 뒤짚는 새로운 학설이 어떻게 처음부터 주류가 될 수 있나."
#이종욱 총장 #서강대 #화랑세기 #미실 #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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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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