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소연
김대중 대통령님, 김대중 선생님!
기어코 가셨습니다. 훨훨 털고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가시고 말았습니다. 향년 85세이면 짧지 않는 생애인데, 왜 이토록 허전하고 애통합니까. 선생님은 질풍노도의 한국현대사의 중심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서민과 중산층, 남북화해와 민족통일을 추구하면서 고통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민주주의가 짓밟힌 엄혹했던 시절에 선생님은 가장 앞 줄에 서서 독재와 싸웠습니다. 그때마다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다섯 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의 감옥살이, 10년의 연금과 해외망명 생활을 견디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반세기 얼어붙었던 북쪽의 문을 열었습니다. 50년 부패와 권력남용으로 일관된 일당독재, 일당지배의 정치사에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몽매한 후진국가, 독재국가가 아닌 당당한 민주국가임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셨습니다.
2009년 8월 18일 오후 2시경, 저는<후광 김대중 평전>을 집필 중에 김대중 선생님의 서거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1987년 9월 8일 광주 망월동 묘소를 찾아'아아, 망월동의 영령들이시여!'란 제목의 추도사를 몇 차례나 오열하며 읽었던 글을 옮기고 있을 때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신군부 쿠데타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서 2년 복역 뒤에 미국에 망명하고 돌아와서, 6월민주항쟁을 주도하여 6·29항복선언을 받아낸 뒤 망월동 묘소를 찾았습니다. 5·17 사태 당시 신군부는 광주민주항쟁을 김대중이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실제로 당신은 바로 전날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어서 귀신이 아닌 담에야 불가능한 일을 뒤짚어 씌웠었지요.
우연찮게도 추도사의 "여러분은 죽어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거는 일월같이 빛나고, 여러분의 흘린 피는 역사적으로 영원할 것입니다"란 대목을 옮겨 적고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선생님의 서거 소속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죽어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생애는 일월같이 빛나고, 당신께서 흘린 피는 역사적으로 영원할 것입니다." 이렇게 고쳐서 선생님의 영전에 헌사하면 어떨까요.
며칠 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이희호 여사님을 뵙고, 선생님의 상태가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혹시나 불길한 예측은 하면서도 너무나 갑작스런 부음 소식이라 마음이 정리되지 않고 글이 씌어지지가 않습니다.
당신은 격류에 도도히 흘러가는 황하 중턱에 버티고 선 바위 하나, '중류지주(中流砥柱)' 그것이었습니다. 한 시대를 뒤 덮은 격량에도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면서 새로운 시대의 물길을 이끌었던 분입니다.
고난이 필요한 시대 그는 고난의 화신이었다. 일본 수도의 한 호텔 안에서 토막져 죽어야 했다가 살아났다 현해탄 복판에 던져져 물귀신이 되어야 했다가 살아났다. 71년 대통령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졌다 그의 파도치는 웅변이 1백만 인파를 지진처럼 흔들어 댔다 그는 혼자서 1백만 인파였다 그로부터 박정희는 이를 갈았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