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DJ와 나] 마지막 7년 모신 여비서의 편지

등록 2009.08.21 10:24수정 2009.08.2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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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를 7년째 모신 여비서가 김 전 대통령을 여의며 쓴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김선기씨(27,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가 최경환 비서관 등 김 전 대통령 비서실 식구들에게 보낸 이 편지글에는 고인을 가장 가까이서 모신 비서의 애틋함이 담겨 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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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입관식이 천주교 의식에 따라 엄수되어, 박지원 의원이 '마지막 보고'를 하는 가운데 조순용 전 정무수석, 김선흥 비서관, 최경환 비서관, 윤철구 비서관, 차남 김홍업씨가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한밤중에 잠이 깨어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돌덩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기만 하여 도무지 편안치가 않습니다. 어린 제가 이러한데 여사님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우리 비서관님들 그리고 비서실 직원들의 마음은 어떠할지 대통령님을 보내고 얼마나 안타까울지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의 상실감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생기고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대통령님이 이룩하신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아왔습니다. 자유롭게 세상에서 그 누구와도 내 의견을 말하며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고 지내왔습니다.

대통령님은 저에게 "너희는 참 좋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니?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고, 투표도 할 수 있고, 굶지도 않고, 전쟁의 고통도 모르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니? 이것이 다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고 싸우면서 이룩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저는 이 세상의 단점만을 보아왔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행복한 세상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물질의 소유와 풍요로움에서만 행복을 찾기 때문에 지금 민주주의 시대에 대한 감사함보다는 부족함을 호소하기만 합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억압받지 않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았고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피를 흘린 것에 대한 미안함 또한 잊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감사해야 하는 마음 또한 자주 잊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지금 이 시대에 대한 아름다운 시선을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말해주신 대통령님이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살아계실 때 그 분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인생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아직 20대에 불과한 어린 저에게 앞으로 대통령님은 우리 김대중 대통령님 오직 한분일 것만 같습니다. 우리 비서실 식구들 마음속에도 물론 앞으로도 한 분뿐이겠지만 말입니다.


대통령님이 입원하신 7월 13일부터 너무나 고생하신 비서관님들 그리고 비서실 식구 모든 분들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였습니다. 항상 비서실을 '우리 식구들'이라고 말씀하신 대통령님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비서실 분들 모두가 마치 친구같이 가족같이 느껴지기만 합니다.

그 분을 꿈에서라도 만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감사함을 가끔씩 잊고 살아서 죄송하다"고,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고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새삼스럽게 물 한 모금 마시는 것과 자유로이 숨 쉬는 것 하나하나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대통령님을 모실 수 있어서 우리는 정말 행복했었고 지금도 행복합니다. 많은 분들이 피땀 흘리면서 만들어주신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이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이냐고요.

앞으로 모두들 영결식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힘드실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주신 대통령님을 위해 모두들 힘내시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모두 모두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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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후 첫 나들이로 광주를 방문했을 때의 김선기 비서와 김전우 간호부장 그리고 주치의인 장석일 박사(왼쪽부터). ⓒ 김당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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