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강풀, 왜 '더러운 시대'라고 했을까

문화 예술인들은 군사정권시절 악몽에 시달려

등록 2009.08.21 14:22수정 2009.08.2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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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다음'에 연재하고 있는 강풀 만화 <어게인> ⓒ 어게인 홈페이지


<순정만화><바보><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의 온라인 만화로 유명한 '강풀'이 때아닌 정치적 발언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논란은 최근 자신이 새롭게 포털을 통해 연재하는 만화 <어게인>의 시리즈 중 제13화 '메신저' 편의 끝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된 애도의 글을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20일자로 올린 만화의 맨 마지막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김대중 대통령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당신의 국민이었음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 더러운 시대에서 더욱 빛나는 당신의 뜻을 기억하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내용의 추도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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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이 13회 만화 끝에 달아놓은 추모의 글 ⓒ <어게인>게시판


이 글이 논란을 일으키면서 약 1400여개의 댓글이 달렸고, 이를 본 누리꾼들도 양쪽으로 의견을 나눠 논쟁을 하고 있는 상태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민감한 시기에 만화가로서 정치적인 발언은 적절치 않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며, 찬성하는 쪽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피력하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지지하고 있다.

특히 논란은 "이 더러운 시대에서 더욱 빛나는 당신의 뜻을 기억하겠다"는 것인데, '이 더러운 시대'라는 내용이 반정부적인 성향을 부추긴다는 비판의 내용도 있고, 대부분의 지지자들은 "사실 아니냐"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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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의 발언에 대해 옹호하는 누리꾼들의 견해가 절대다수다. ⓒ <어게인>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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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의 발언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누리꾼의 의견 ⓒ <어게인> 게시판


아이디 '정스틴'은 "좀 그렇다. 별로 필요없는 발언까지 하시네" 라고 비판했고, 아이디 '이지원'씨는 "뭘 기준으로 말하나? 어이없이 쓸데없는 표현을.." 이라며 지적했다. 또 아이디 '차카게살자'는 "웬만하면 정치적 발언은 하지말자"며 "옳고 그르고를 떠나 공인으로서 보기 안좋다..그냥 문화는 문화로서 끝내자. 정치적 소신을 갖는건 좋지만 시간적 공간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누리꾼들은 강풀 작가를 옹호하고 있다. 아이디 'venegia'는 "만화와 정치를 연관하지 말라는 분들은 '더러운 세상'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마라"며 "작가가 인간으로서 김 전 대통령을 추도한 것 뿐이다"고 했고, 또 다른 아이디 '일일일'은 "만화가가 자기의 견해를 보이는 것만으로 뭐라하는게 더 웃긴다"면서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인데, 작가가 무슨 잘못을 했나"며 작가를 옹호했다.

연재만화를 게재하면서 날짜를 지나칠 경우에 게시판을 통해 해명을 하거나 사과를 했던 강풀 작가가, 이번에는 아직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강 작가가 공식적으로 입장표명을 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진보적인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피력해 온 그가 어떤 입장을 내 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왜 지금이 '더러운 시대'일까

강풀 작가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논픽션만화 <26년>을 발표한 바 있다. 광주 민주화 희생자 가족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살한다는 내용의 이 만화는 발표당시 많은 호응을 얻었고,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바보>나 <순정만화>처럼 '영화'로 만들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이처럼 작가정신은 그 시대를 반영하고 투영시킨다. 그리고 만화나 영화 등의 작품들은 반드시 시대상황 속에서 만들어지고 생산되며 해석되는 생리를 지닌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의 '독재성'여부에 따라 많은 작품들이 '상영금지'당하거나 노래들은 '금지곡'으로 묶여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강풀의 이번 '더러운 세상' 발언이 가능하게 된 것은 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내용적으로 '더러운 세상'이라는 한탄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정치적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문화예술인들의 '공안시대'를 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감사'논란과 학과폐지 등 교육권리의 침해와 국립 오페라합창단의 해체, 거기에다 최근 김민선씨의 '광우병쇠고기'발언을 문제삼은 정치권 등.. 문화와 예술인들, 연예인들, 배우들의 한 마디가 큰 이슈를 낳고 있는 현실 자체가 '공안정국'의 모양새다.

지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등 군사정권시절은 그야말로 연예인들에게는 최악의 시절이었다. 온갖 구실을 잡아서 '금지곡'으로 만들거나, 일부 연예인들은 '접대'에 불려다녀야 했고, 심지어 '그 분'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연예계에서 떠나야 했던 슬픈 시절이었다.

강풀의 '더러운 시대' 발언,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강풀 작가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글은 그래서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군사정권은 종식됐지만 여전히 군사정권의 잔재들이 정치권에는 남아있었고, 김영삼은 노태우와의 협력으로 그 궤를 함께 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명실공히 '군사독재'는 종식됐다. 비록 반쪽짜리 '호남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은 들었지만 그 어느때보다 국민들은 살기가 편했다.

비록 IMF의 여파로 지나친 경기부양책을 쓰면서 물가폭등의 단초를 제공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문화예술인들에게 있어서는 봄날이었다. 수많은 대중가요와 가수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수백 만 장'의 앨범판매가 가능했고, 한국영화사의 '블록버스터'가 탄생했었다. 국민들은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인식을 갖게 되면서 전국의 지자체들이 너나없이 '문화축제'를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강풀 작가가 보는 지금 'MB' 시대는 그야말로 마치 과거 군사독재시절에 다름아닌 삶이다. 특히 생각없이 살아가는 작가나 예술가가 아니라면 더욱 그런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언로를 차단 당하고, 재벌에게 방송권과 보도권을 팔아먹고, 문화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도무지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노동부 장관은 오히려 기업의 편을 들고있고, 공교육을 살려야 할 교육수장은 학원의 돈을 제 용돈처럼 생각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 방송국 사장을 단지 전 정부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만으로 경질시키고, 자신의 측근을 방송국 사장으로 앉히고, 정부를 비판했다며 뉴스 진행자까지 제갈을 물리려고 하고, 인터넷상의 토론과 표현마저 감시 당해야 하는 세상이 '더러운 세상'이 아니면 어떤 세상이란 말인가.

누군가 했던 말이 떠 오른다. "정권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고.. 이 짧은 정권에서 이미 세 분의 큰 별이 세상을 떠났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이 분들을 마음으로 존경하던 국민들은 슬픈데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에게도 이들의 죽음...진짜 슬플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강풀 #어게인 #강풀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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