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암골이 그냥 좋아요"

청주 수암골을 사랑하는 한 남자

등록 2009.08.28 11:36수정 2009.08.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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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바로 5분거리에 드라마 카인과 아벨 촬영지였던 수암골이 있다. 우울한 느낌과 슬픔이 집집의 담그늘마다 숨어 있는 것 같았던 달동네 마을이다. 전쟁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이곳은 최근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등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일본잡지와 일본여행사 롯데는 4일 투어 일정으로 전주에서 청남대와 수암골을 거쳐 읍성안길과 육거리시장, 음성 큰바위 얼굴조각공원의 투어상품을 출시 중이고 한국관광공사와 투어박스도 준비중이라 한다.

 

이렇게 수암골이 투어여행지로  갑자기 뜨게 된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사람좋은 코주부 인상인 그이다. 그의 직업은 딱 무어라고 하나를 꼭 짚어 말하기가 어렵다. 10년 동안 3번이나 삶의 현장을 개척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저는 수암골이 그냥 좋아요. 동네분들과 막걸리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요."

 

그를 만난 것은 10년 전이다. 태어나서 40년 동안 연극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살았는데 우연히 단체의 총무와 친하다는, 나하고 동갑인 연극연출가를 소개받은 것이다. 나하고 동갑이지만 머리가 하얗게 세고 영락없이 만화 고바우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코가 크고 너털웃음을 지으면 눈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하회탈의 눈처럼 되어서 무척 마음이 후덕한 너털 코주부처럼 보여서 나는 마음 속으로 보기 드믄 괴짜이자 복을 주는 복주부 또는 코주부라고 명명했다.

 

수암골 투어를 기획한 코주부 수암골을 명물이 되는 근원인 아트투어를 기획하고 실천한 장본인
수암골 투어를 기획한 코주부수암골을 명물이 되는 근원인 아트투어를 기획하고 실천한 장본인중부 조아라
▲ 수암골 투어를 기획한 코주부 수암골을 명물이 되는 근원인 아트투어를 기획하고 실천한 장본인 ⓒ 중부 조아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활동했는데 다만 아는 선배와의 인연 하나만으로 조그만 소도시로 삶의 현장을 바꾸었다. 연극판에 뛰어들어 배우로서 열정을 불사르다 마침내 직접 연극을 만드는 연출가의 자리와 극단대표의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2년 후에 만난 그의 모습은 대학교  앞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만남의 장을 개설한 카페의 주인이 되어 있었는데 카페에서는 항상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주머니가 가난한 학생들이나 예술인들이 부담없이 오고 갔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한동안 그를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서울의 문화예술기획워크샵에서 명단을 보게 되었다. 난 처음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1000CC맥주잔을 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학가 명물카페의 주인장으로 자리잡은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새 그는 카페의 공간에서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발로 뛰면서 아트투어를 기획하며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리고 뮤지컬 대본집도 발간할 만큼 내, 외적 기운과 활동력이 충만하다.

 

뿐만 아니라 보다 효율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지역센터를 조직해서 설립했다. 그리고 그 센터에서 단순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고 교육하는 데만 관심을 갖지 않고 속칭 달동네라고 불리는 수암골의 골목 골목마다 공간미술화하는 기획을 하였다.

 

몇몇 지역미술사업이 사업기간에만 집중하고 사업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도 단순한 공간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멘트의 황량하고 기울어진 빈 담벼락에 나무와 새를 그리고, 골목길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데 그쳤다면 현재의 수암골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더욱 하얗게 변해가는 머리가 길어지면 그냥 질끈 묶거나 상투를 틀고, 수염도 그냥 내버려두고 틈만 나면 수암골로 뛰어갔다. 수암골에 어떤 프로그램을 실현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 그냥 수암골 사람들과 골목길 좌판에 앉아 막걸리를 함께 나누기 위해서이다. 대문 앞에 할머니가 쪼그려 앉으면 함께 쪼그려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뒷 모습은 영락없는 수암골에 오래 산 것 같은 주민이다. 

 

그는 지역미술센터를 운영하면서 수암골을 하나의 예술사업장소로 여기는 것이 아닌 제 2의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고, 그 마을사람들과 같은 동네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쟁피난민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수암골은 이전에는 외지인이 오면 낯선 경계의 눈빛을 보냈지만, 이제는 자신의 동네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수암골이 널리 알려진 것은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란 것이 작용했을지 모르지만, 수암골 사람들의 가슴을 열고 수암골이 세상의 하나로 어우러지게 된 것은 그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점점 낮은 곳으로 깊고 넓게 개척해가는, 물질적인 그 어떤 것보다 사람 내음과 사람의 좋은 흔적을 되살리는, 정말로 수암골을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9.08.28 11:36ⓒ 2009 OhmyNews
#수암골 #특별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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