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의 오보, 역사를 바꾸다

[주장] '참 나쁜' 언론, 또다른 왜곡을 꿈꾸다

등록 2009.09.08 16:30수정 2009.09.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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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는 참으로 잔혹했었다. 특히 1940년 이후 태평양 전쟁의 개전 이후 그들의 작태는 식민지 조선의 모든 것을 왜곡시킬 정도로 지독한 것이었다. 황국신민서사 암송의 강요, 궁성요배와 신사참배의 강제는 물론 창씨개명과 한글 사용의 금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한민족의 정신마저 말살시키려 했고, 더욱 직접적으로 정신대와 강제 징용, 징병제를 통하여 노동력과 생명마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좌우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이 당시 식민지 조선인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은 '배고픔'이었다. 일제는 1934년 이후 경제공황의 여파로 본국에서 농업붕괴가 일어날까 두려워 중단하였던 산미증식계획을 1940년부터 재개하였다. 이는 전쟁물자의 보급을 식민지에서의 미곡 공출로 해결하고자 하는 술책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이로 인한 조선에서의 식량 부족분은 미곡배급제로써 조절하고자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제는 애국저축운동을 이용하여 조선민중의 한 푼까지 전쟁비용으로 약탈하고자 했고 놋그릇 등의 생활집기까지 강제 공출하여 무기를 마련하였다.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은 그렇게 저급하고도 지독했던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나는 계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한, 일제하 민족해방운동의 성과물이자 연합국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이 선물이란 것이 묘한 것이었다. 분명 민족의 해방을 가져온 것은 맞으나 새롭게 건설될 국가 성격에 있어 한국인의 주체적인 선택보다는 연합국 간의 이해에 좌우될 여지가 큰, 즉 자칫하면 또다시 외세에 의해 민족의 운명이 판가름될 위험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인들은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조선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등의 주체적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허나 이러한 모든 노력은 미군정의 포고령 한 장으로 모두 부정되고 말았다. 한국인들의 불안함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945년 12월 27일,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한국인들의 뺨을 후려쳤다. 소련이 주도가 되어 한반도를 다시 식민지로 전락시키려는 움직임을 벌인다는 외신 기사가 나온 것이다.

그날,  <동아일보>는 1면 머릿기사에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란 제목의 외신 보도를 하였다. 이 기사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국 외상회담을 계기로 조선독립 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해가고 있다. 즉 번즈 미 국무장관은 출발 당시에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3국간에 어떤 협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명하나, 미국의 태도는 카이로선언에 의하여 조선은 국민투표로써 그 정부의 형태를 결정할 것을 약속한 점에 있는데, 소련은 남북 양 지역을 일괄한 일국 신탁통치를 주장하여 38선에 의한 분할이 계속되는 한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면서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이란 큰 제목을 달아 보도하였다


어떻게 찾은 나라인데, 어떻게 이룬 해방인데 이를 받아들일까? 온 나라가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분노로 들끓게 되었고, 그 와중에 반소·반공 운동을 주도한 구 친일부역세력이 반탁운동을 통해 제 2의 독립운동을 수행하는 세력으로 전화해버렸다. 결국 이들은 반탁운동을 통해 얻은 명분을 바탕으로 해방공간의 위기를 벗어난 한편 자신들에 기반한 분단국가의 주도세력으로 부활하였으니 참으로 <동아일보>의 신탁통치 관련 외신 덕을 크게 보았다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소름끼치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아일보가 특종으로 보도한 12월 27일자 외신이 오보였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3상회담이 진행 중인 시점에서 반탁운동에 불을 지른 이 기사는 3상회담의 내용을 신탁통치만으로 국한시키면서 미국이 즉시 독립을 주장하고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처럼 전한 잘못된 기사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12월25일자 미국발 기사라면서 정확한 출처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이 당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강력히 주장한 것은 미국이었으며 그 요구안에 대해 소련이 타협을 추진하면서 소련은 3상회담에서 '① 일제 청산과 모든 시설을 취할 임시 조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다 ② 조선 임시정부 구성을 원조할 목적으로 미·소 점령군의 대표로 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공동위원회는 조선의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와 협의한다 ③ 독립국가의 수립을 원조·협력할 방안을 작성함에는 또한 조선 임시정부와 민주주의 단체의 참여 하에서 공동위원회가 수행하되 공동위원회의 제안은 최고 5년 기한으로 4개국 신탁통치의 협약을 작성한다 ④ 2주일 이내에 조선에 주둔하는 미·소 양군 사령부 대표로서 회의를 소집한다'라는 4개항의 문안으로 정리하여 제출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우리 국민은 잘못된 보도 등으로 소련이 신탁통치를 제안한 반면 미국은 반대한 것으로 알고 격렬한 반탁·반소운동을 벌였던 것이며, 이것이 친일세력의 부활과 좌우의 이념 대립 그리고 그 종착으로 남북한의 분단국가의 성립으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한 언론의 오보로 인한 결과라 보기엔 너무나 처참하고도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올해 7월 정부는 '비정규직 법안' 개정을 논의하면서  '100만 해고설'을 유포하였다.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가 내세운 이 주장에, 보수 언론은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확대 재생산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국민들은 곧 다가올 생존의 위기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본적인 생존권을 요구하는 쌍용자동차 노조의 투쟁도 '배부른 귀족 노조의 밥그릇 요구' 밖에 되지 않았고, 용산참사의 진상을 밝히라는 빈민들의 요구도 미연에 다가올 경제적 위기를 심화시키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역시 보수언론의 기사는 오보였다. 1945년 12월의 오보를 통해 일부 세력이, 민족의 역사를 바꾼 대신 자신의 이익을 챙겼듯이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은 오늘, 보수언론은 또 다른 오보를 통해 무엇인가를 챙기려 한 것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이며, 어떤 결과를 놓을 것인지 우리는 분명히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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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디지털경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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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해고설 #조중동 #왜곡보도 #보수언론 #신탁통치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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