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구정봉 물웅덩이는 번개 자국?

바위마다 전설과 이야기가 살아있는 영암 월출산

등록 2009.09.09 10:01수정 2009.09.0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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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사지구에서 바라본 월출산. ⓒ 전용호


달뜨는 산을 찾아 서쪽으로

국도 2호선을 타고 달린다. 길은 멀다. 목적지는 영암 월출산. 날씨가 흐리다. 연한 안개가 가는 길 내내 흐릿한 풍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파란 하늘과 대비된 하얀 바위산이 보고 싶은데….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하늘이 맑아지기를 기대하며 서쪽으로 달린다.


월출산이 어스름하게 보인다. 강진을 지나 13번 국도로 갈아탄다. 조금 가다 월출산 천황사지구로 들어선다. 논 사이로 난 반듯한 길 끝에는 커다란 산이 막아서고 있다. 들판에 우뚝 서있는 뾰족한 산마루와 하얀 바위가 시야를 꽉 채운다. 작은 금강산이라고 했던가. 금강산의 만물상이 떠오른다. 아직 보지는 못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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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등산지도. 산행은 천황사에서 시작해 구정봉을 올라 경포대로 내려왔다. 산행거리 6.2km ⓒ 전용호


매표소를 지나 주차를 하고 길을 잡는다. '국립공원 월출산'이라는 바위 표지석이 하얀 산을 뒤로하고 달 모양으로 서있다. 오늘 산행은 월출산 천황사지구를 들머리로 정상을 넘어 구정봉 아래 마애불을 보고 올 계획이다.

윤선도는 월출산에 올랐을까?

포장도로를 따라 산길로 접어든다. 나무 그늘 아래로 걸어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산길로 들어서니 커다란 비 두 개가 나란히 서있다. '자연보호헌장'이나 되겠지? 지나치려다 보고가자며 가까이 가니 시비가 서있다. 어! 윤선도가 월출산에 올랐을까?

月出山 높더니마는 믜온 거시 안개로다
天皇 제일봉을 일시에 가라와라
두어나 해 펴딘 휘면 안개 아니 거드랴. - 고산 윤선도 산중신곡 중 朝霧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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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 바위에 자란 소나무가 아름답다. ⓒ 전용호


윤선도가 당쟁에 휘말려 보길도로 유배를 가던 길에 월출산을 보면서 읊조린 시다. '월출산 높다더니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황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니, 두어라 해 펴진 후면 안개 아니 거두리'라고 간신들을 안개에 비유하며 원망하는 내용이다.

나란히 서있는 또 다른 시비에는 '달이 뜬다'로 시작해서 '둥근둥근 해가 뜬다. 그 임 같은 월출봉에 희망이 뜬다'로 끝나는 <영암아리랑>이 쓰여 있다. 윤선도가 기다리던 해는 영암아리랑에서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위 봉우리를 이어주는 구름다리

산길은 적당한 크기의 바위를 가지런히 깔아 놓았다. 걷기에 좋다. 갈림길이 나온다. 청황봉을 가는 길이 두 갈래다. 구름다리로 가는 길과 바람폭포로 올라가는 길. 바람폭포 쪽으로 가다가 구름다리를 바라보며 올라갈 수도 있다. 천황봉까지는 2.6㎞라고 알려준다. 구름다리까지는 0.9㎞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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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로 구름다리가 걸렸다. 가파른 철계단길을 오르면 협곡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를 만난다. ⓒ 전용호


산길은 가파르다. 하얀 바위들이 깎아지른 듯 계곡을 에워싸고 있다. 철계단과 돌계단이 반복된다. 바람계곡 삼거리에서 구름다리로 길을 잡는다. 구름다리까지 0.3㎞라고 알려준다. 구름다리로 향하는 길은 커다란 바위봉우리 사이로 올라가는 길이다. 협곡 사이로 구름다리가 아득하게 이어졌다.

하늘을 보고 올라간다. 지나가는 길에는 힘들어 하는 분들이 군데군데 쉬어간다. 구름다리 정도는 갔다가 오겠지 하고 나선 분들이다. 힘이 부치는 가 보다. 구름다리가 머리 위로 지나고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서니 시야가 확 터진다. 넓은 평야가 보이고 눈이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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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바위산과 어울린 붉은 구름다리. ⓒ 전용호


하얀 바위와 어울린 붉은 구름다리가 장관이다. 구름다리는 조금 흔들림이 있지만 아래가 보이지 않도록 바닥처리를 하였다. 건너기에 두려움은 덜하다. 중간쯤에 고개를 빼들고 아래를 보니 아득하다. 높이 120m라는 게 실감난다. 바람폭포를 지나는 등산객들도 보인다.

죽을 둥 살 둥 산에 오르는 이유?

다시 가파른 철계단 길. 아름다운 바위를 구경하면서 가지만 그늘이 없는 바윗길은 무척 덮다. 지친다. 마지막 더위가 힘자랑 하는 듯하다. 온산을 덮고 있는 아름다운 바위는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자꾸만 주변 경치 구경하느라 두리번거린다. 산길을 힘들게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가기를 몇 차례. 멀리 천황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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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다리 건너고 사자봉 지나 천황봉으로 가는 길. 커다란 바위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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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바위길 ⓒ 전용호


잠시 쉰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천황봉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바위 능선들이 한 폭의 그림이다. 바위에 걸린 소나무는 어떻게 저런 곳에서 자라고 있는 지 신기하기만 하다.

월출산 정상 봉우리를 향해 올라선다. 죽을 둥 살 둥 산에 올라가는 이유가 뭘까? 산이 있으니까? 너무 진부하다. 본능이 아닐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나는? 갑자기 마음이 심란하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오르고 싶다. 산이 좋아서….

가파른 바위 길을 지나고 철계단을 올라서니 사람하나 겨우 지나는 통천문(通天門)이 나온다. 조금 더 올라서니 드디어 정상. 다듬지 않은 커다란 바위에 천황봉(天皇峰, 809m)이라 새긴 표지석이 당당하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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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정상. 커다란 자연석 표지석이 인상적이다.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앉아있다가 간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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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내려다본 영암읍내. ⓒ 전용호


정상에는 올라오면서 힘들었는지 크게 누워 쉬는 사람도 있고, 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편안하다. 너른 바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본다. 날씨가 맑았으면 더 좋으련만…. 영암읍내와 잘 정리된 들판이 펼쳐진다. 능선을 따라서 바위산들이 이어진다.

구정봉 물웅덩이는 번개자국

정상 등극의 기쁨도 잠시 다시 구정봉으로 향한다. 구정봉까지 1.6㎞. 다시 거친 바위를 타고 내려간다.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익숙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가는 길에 막아선 거대한 남근석. 신기하게 생겼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즐거워한다. 이것도 본능?

바람재를 지나 구정봉으로 올라간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나무 그늘이 없는 길은 걷기에 무척 힘이 든다. 구정봉 아래 베틀굴이 있다. 일명 음굴이라고 부르는데, 남근석과 반대로 여성의 성기와 비슷하다. 굴속에는 물이 고여 있지만 바닥이 흙이라서 마시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샘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나 보다.

베틀굴 바로 위로 구정봉(九井峰, 705m)이 있다. 구정봉은 커다란 바위다. 바위로 향하는 길은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구정봉에 올라서니 신기하게도 물웅덩이가 여기저기에 있다. 마르지 않는 샘. 이 커다란 바위와 웅덩이에는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월출산 아래 구림마을에는 도술에 능한 동차진이라는 젊은이가 살았다. 동차진이 구정봉에서 함부로 도술을 쓰는 것을 본 옥황상제는 공명심과 만용이 화를 부를 것을 경계하여, 아홉 번 번개를 쳐서 죽였다. 그 때 생긴 번개자국이 웅덩이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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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봉 물웅덩이. 큰 것은 1m도 넘는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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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봉에서 바라본 천황봉 ⓒ 전용호


구정봉 정상에는 나무하나 없는 커다란 바위다. 햇살이 가득 받는 바위에 해를 등지고 앉았다. 건너편 천황봉이 높게만 보인다. 옥황상제(天皇)가 항상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찌 자만과 만용을 부릴 수 있을까?

사위가 조용하다. 물웅덩이에는 개구리가 천연덕스럽게 헤엄을 치고 있다. 쑥부쟁이는 서둘러 피었다. 마애불까지 가기는 힘들겠다. 서산에 해가 가까워진다. 아쉬움 마음을 뒤로하고 바람재에서 금릉경포대로 내려섰다.

덧붙이는 글 | 산행일은 9월 5일.


덧붙이는 글 산행일은 9월 5일.
#월출산 #천황봉 #구름다리 #구정봉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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