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체험, 그 삶의 현장에서

등록 2009.09.15 16:53수정 2009.09.1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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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영상시대다. 따라서 영상세대 아이들이 있는 교육현장에서도 모든 것들이 영상화되고 있다. 연중행사인 학부모총회가 끝났다. 어제 끝난 학부모총회 일로 가장 많이 힘들었던 사람은 영상을 맡은 선생님일 것이다. 그는 며칠 전부터 각 교실을 모두 돌면서 15분씩 촬영, 편집해서 1, 2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막내로 사랑을 듬뿍 받았던 남선생님이 그 일을 맡았다.

 

작년에 신규발령을 받은 그는 우리의 에너지원이다. 그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미소가 담긴 아침저녁 출퇴근 인사는 세상을 빛나게 한다. 힘들 때도 그의 미소를 보거나, 그의 한 마디를 들으면 위로가 되곤 했다. 얼마나 싱그러운지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어느 날 늪에 빠져있던 나에게 그가 날린 문자의 위력도 대단했다.

 

그러나 어제 점심시간에 급식실에서 만난 그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다가가서 수고했다는 말을 붙여보지만 그의 지친 모습이, 아주 조금 담긴 식판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잠만 생각난다는 말이 가슴 아리게 했다.

 

그 선생님은 다음 달이면 입대한다. 함께 할 아주 짧은 시간이 주어져있지만 아무리 짧아도 씨 뿌릴 시간, 가꿀 시간은 충분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또 어제는 15일 동안 함께 했던 기간제 선생님이 떠났다. 역시 신규였던 그녀의 처음 모습은 싱싱했었다. 그러나 떠날 때 모습은 몸도 마음도 너무 많이 아픈 채로 떠나 가슴을 후볐다.

 

어느 날은 동학년 일 때문에 교실로 인터폰을 했는데 아이가 받더니 "선생님은 보건실에 계셔요. 많이 아프신가 봐요" 했다. 얼마나 아프면 보건실에 누워있을 정도일까 싶어 바로 내려가 보았다. 그녀의 고운 얼굴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의 모습은 더 심했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힘들게 했을까. 생각할수록 안타깝기 그지없다. 뒤늦게 새로 시작한 나도 잘 적응하고 있는데…….

 

하루 또 하루 아이들과 씨름으로 울고 웃고 지내면서 그래도 위로를 받는 것은 같은 길을 가고 있기에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동료교사들이다. 나와 함께 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외롭지가 않다. 그러나 입사하여 퇴직할 때까지 별다른 이동 없이 함께 하는 일반 직장들과 달리 학교는 이동이 잦은 곳이다.

 

개인으로 보면 4년이지만 일 년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인사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동료가 자주 바뀌어 동지애가 생기기엔 시간이 짧다. 거기다 각자 자기 업무들로 바쁘다 보면 정이 들기도 전에 송별식이 다가오곤 한다. 그래서 따로 모임들을 만들지 않으면 다시 얼굴 보기가 힘들어진다. 직장이란 가족보다 동료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는 곳이다. 주어진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를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인간미 넘치는 직장을 만들어 살맛나는 그곳에서 살고 싶다. 내가 몸담고 있는 그곳이 즐겁지 않으면 어찌 살맛이 나겠는가.

2009.09.15 16:53 ⓒ 2009 OhmyNews
#영상시대 #동료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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