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지문종택의 대문에 붙은 ‘기린지문’, ‘봉황지정’ 입춘방이 외롭다.
장호철
혼인 이듬해 맞은 해방은 그러나 그이에게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다정다감했던 남편이 좌익으로 활동하더니 그예 안동형무소에서 징역을 살았고, 출옥 후 서울로 피했다가 다시 감옥에 갇혔다. 마지막 면회는 1949년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터졌고, 젊은 부부는 헤어졌다…….
노인과 성씨가 무엇이냐는 둥,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갈봉 선생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했더니 그러냐고 눈빛이 달라진다. 소생도 없이 반세기를 홀로 살아온 이 노인을 지탱케 한 것은 가문의 영광이고, 위대한 조상이 남긴 향훈(香薰)이었을까.
노인 혼자서 사는 집답지 않게 대문간에는 입춘방이 붙었다. 대문에는 '기린지문(麒麟之門)', '봉황지정(鳳凰之庭)' 안채 기둥에는 '우순풍조시화연풍(雨順風調時和年豊)'이 붙었다. 그러나 쓸쓸하게 안노인 한 분이 지키고 있는 덩그런 기와집에 붙은 그 문구는 가을처럼 쓸쓸했다.
집안으로 드니 노인은 방문객 앞에서 집안이 어수선하여서 '남세스럽다'고 손사래를 친다. 괜찮다고, 이 큰 집을 노인이 어찌 감당하겠냐고 짐짓 위로하면서 나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정갈한 장독대가 사람 사는 집의 훈기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장독대 옆에 흐드러지게 핀 붉은 국화가 오히려 쓸쓸함을 더했다.
갈봉의 흔적을 찾으려 왔다고 했지만, 기실 이 고택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을 리는 없다. 이 집은 갈봉의 8대손인 도상이 구입한 집이고, 갈봉은 인근 가야리에 살았던 것이다. 그는 문집 <갈봉유고>를 남겼는데 이 책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갈봉은 가야에서 모두 49수의 <산중잡곡(山中雜曲)>을 썼다. <산중잡곡>은 갈봉이 장편 가사 <지수정가>를 짓고 난 다음 남은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을 시조라는 단가 형식에 담아서 읊조린 작품이다. 49수의 내용은 대개 물외한인으로 자연 속에 살아가는 작자의 생활 태도, 시문과 사장(辭章)에 대한 생각, 인생의 덧없음과 노경에 대한 탄식 등이다.
<산중잡곡> 49수, 물외한인의 노래들<산중잡곡>의 노래들은 대부분 평시조의 형태를 충실하게 취했다. 이 노래들은 우리말의 맛을 잘 살려서 쓴 것이라기보다는 그 '시상(詩想)'과 '상상력'에서 범상치 않은 단면을 드러낸다고 평가 받는다.
벗이 오마 하거늘 솔길을 손수 쓰니무심한 백운(白雲)은 쓸수록 다시 난다.저 백운아 동문(洞門)을 잠그지 마라. 올 길 모를까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