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다녀갔어도 파리 날리는 건 여전

[대한민국 진짜 서민②] MB 어묵 먹던 이문시장, 3개월 만에 가봤더니

등록 2009.09.29 11:44수정 2009.09.29 11:44
0
원고료로 응원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어 50%에 육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중도실용 정책과 대통령의 서민행보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율의 급등과는 대조적으로 서민생활은 여전히 팍팍하고, 나아진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가는 치솟고 집값을 올라가는데,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는 진짜 서민들이 과연 어떤 얼굴로, 무슨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편집자말]
a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있다. ⓒ 청와대


"서민정책, 서민정책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서민이 어떻게 힘들게 사는지 돌아보고 있나?" (김상현. 76)

"서민정책 효과가 하루이틀 안에 생기겠나? 내가 정치는 잘 모르지만,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에 좋아질 수도 있는 거고…." (김아무개, 분식집운영)

22일 오후 2시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재래시장을 방문해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곳은 지난 6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민생탐방을 목적으로 방문해 떡볶이집에서 어묵을 사먹은 일로 유명해진 곳이다.

이미 언론의 취재 열풍이 한 차례 지나가서인지 상인들은 이 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꺼렸다. 몇 차례에 걸쳐 거듭 물어본 끝에야 이 대통령의 서민행보 등에 대한 상인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다.

"대통령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서민 어떻게 사나 돌아봤나?"

a

지난 6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민생탐방을 목적으로 방문했던 이문동 시장. ⓒ 서유진


상인들은 대체적으로 이 대통령이 최근 내놓은 친서민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철물점을 운영하는 석아무개(50)씨는 "나이 드신 분들이 동사무소에 일 다니시는 걸 보면 보기 좋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과일 및 야채 노점상을 운영하는 최재득(64)씨 역시 "일자리 만들기나 신용불량자들한테 대출해 주는 건 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과 직접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이 대통령의 서민정책을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노점을 운영하는 윤태봉(66)씨는 재래시장 경기를 "마비"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강냉이와 찐 옥수수를 소량으로 구비해놓고 판매하는 윤씨는 "매출은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창피해서 말 못할 정도"라고 일축했다.

그는 "놀지는 못하니까 그냥 나오는 거지, 장사해봐야 가스비와 재료비도 안 나온다"며 "없는 사람들 일자리가 생겨야 시장에 나와서 돈도 쓰는 거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대통령이) 여기까지 왔으면 이 가게 저 가게 직접 들어가서 서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속깊은 얘기를 들어봤어야지. 그런데 쭉 둘러보고 몇 마디 나누더니 어묵 하나, 점심 한 끼 사먹고 갔다. 이래가지고 실제 서민생활을 알겠나"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재개발 방식을 비판하는 상인도 있었다.

"서민정책, 서민정책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서민이 어떻게 힘들게 사는지 돌아보고 있나? 서민 위한다면 아파트부터 그만 지어야 한다. 보통 재개발을 하면 80% 이상 원주민들은 떠돌이 신세가 된다. 내 집 갖고 있는 사람들도 1억 원 정도는 더 있어야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데, 1억을 (현금으로) 은행에 모아놓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나? 여기도 재개발이 추진 중인데, 난 반대다." (김상현, 76)

"서민정책,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다"

a

옥수수, 강냉이 노점 바로 옆에는 지난 겨울까지 과일 노점이 있었다. 하지만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선 이후 결국 폐업을 하고 말았다. 옥수수 노점 주인 윤태봉(66)씨는 "절대 놀 사람이 아닌데, 과일이 썩어나가니 가게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서유진


특히 상인들은 인근에 두 군데나 들어서는 대형마트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대형마트 들어선 이후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대형마트에) 영업시간 제한 규제만 해도 (우리가 영업하기) 한결 나을 거다. 대형마트는 밤 12시까지 열어도 교대 근무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아침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혼자 일해야 한다. 정부 서민정책? 말할 게 뭐가 있나. 서민들 피부에 와닿는 게 있어야지." (안상철, 슈퍼마켓 운영)

40년째 소규모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60대 아주머니는 "인근에 대형마트 두 개가 들어오고부터는 새벽 1시까지 영업하는데도 매달 적자다. 소주 한 병도 못 팔 때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기자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방문한 손님은 담배를 사러온 두 명밖에 없었다. "없는 서민들, 약자들이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헛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는 또 "대통령이 조그만 동네에까지 와주니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면서도 "하지만 오면 뭐하겠나, (대형마트 입점은) 이미 벌어진 일인데"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상인들은 지난 6월 이 대통령이 시장에 방문했을 때 대형마트 개점 규제의 필요성을 직접 호소하기도 했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마트를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은 법률적으로 어렵다"며 "상인들이 농산물을 공동 구매하거나 농촌과 직거래해 가격을 떨어뜨리고, 주차장을 정비하는 등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5년 옷가게 했는데 지금이 제일 장사 안 돼"

a

지난 6월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해 어묵을 먹었던 떡볶이집. 주인 김아무개씨는 "(정치권이) 그만 좀 싸우고 서로 협조해서 잘했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 서유진


상인들의 걱정과 한숨은 끊이지 않았다. '요즘 장사가 어떤지'를 묻는 기자에게 상인들은 한결같이 "힘들다", "어렵다", "쪼들려 죽겠다"는 말을 했다.

고애순(62)씨는 "25년간 한자리에서 옷가게를 운영해 왔는데, 요즘 장사가 제일 안된다"며 "애들한테 들어가는 돈이 없고, 남편이 함께 버니 그나마 근근이 먹고 사는 정도"라고 말했다. 고씨는 "물가가 자꾸 올라 걱정"이라며 "우리 같은 사람이 추석다운 추석이나 제대로 쇠겠냐"고 덧붙였다.

가게 안에서 고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한 이문동 주민(71, 여)은 "쪼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늙은이들 먹고사는 건 문제가 안 된다"며 "마흔 살 먹은 아들 하나가 언제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 걱정이 많다"고 한탄했다.
#이문동 #재래시장 #이명박 #서민정책 #대형마트

AD

AD

AD

인기기사

  1. 1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2. 2 아름답게 끝나지 못한 '우묵배미'에서 나눈 불륜
  3. 3 스타벅스에 텀블러 세척기? 이게 급한 게 아닙니다
  4. 4 '검사 탄핵' 막은 헌법재판소 결정, 분노 넘어 환멸
  5. 5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