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감만은 남아...마음은 살아있는 치매

<치매를 산다는 것>(오자와 이사오 지음/이근하 옮김/이아소 출판)

등록 2009.09.24 15:54수정 2009.09.2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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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늙는다. 하지만 누구나 다 치매를 앓진 않는다. 늙는다는 것은 상실의 체험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소유하기보다는 점점 더 많이 내려놓아야 하고 많은 것을 상실하여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상실은 젊었을 때와는 달리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누구나 다 늙지만 누구나 다 치매를 앓는 것이 아닐진대, 늙어가면서 치매까지 앓는다는 것은 더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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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산다는 것 오자와 이사오 ⓒ 이명화

▲ 치매를 산다는 것 오자와 이사오 ⓒ 이명화

일생동안 그 누구한테 신세지지 않고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조차 늙음 가운데 치매를 앓다보면 사는 것이 혼자 살 수 없다는 것, 더불어 산다는 것, 그리고 누구든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도움을 받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는 것, 원하든 원치 않든지 그렇게 전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인생의 시기도 만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우린 모두 하늘 아래 피조물이며 삶의 끝에서 죽음이라는 터널을 통과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간은 그 한정된 삶에서 겸허해진다. 젊었을 때 열정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조차 노년에 치매를 앓는 것을 볼 때, 그 누구도 자만하거나 장담할 수 없는 것 같다. 치매를 앓는다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로 직결된다.

 

치매에 관한 책, <치매를 산다는 것>(오자와 이사오/이아소)이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오랜 세월동안 정신병원과 노인의료시설에서 정신과 의사로 치매에 전념해 왔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치매를 앓는 노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생의 진실과 관계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치매노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애쓰면서,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보았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배움과 돌봄 속에서 나온 인생의 소중한 지혜들을 담아 펴낸 책이다. 치매 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 질환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알츠하이머병과 뇌혈관성 치매로 이 두 가지가 치매의 70% 이상을 차지한단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환자가 죽고 난 뒤 그 뇌를 살펴보면 뇌가 눈에 띄게 수축되어 있다고 한다. 알츠하이머라는 병명은 1906년 독일의 정신과의사 알츠하이머가 최초로 보고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치매를 앓는 사람의 뇌는 정상인의 뇌와는 확연히 다르게 수축과 손상이 보인단다. 또한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수명이 짧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발병 후 3년 안에 50%, 5년 안에 80%가 사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그 정도까지는 나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치매라는 병은 정도가 심해지면 몸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언제부턴가 걷지도 못하고 자세도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결국 음식이나 물도 삼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치매를 앓지 않는 사람보다 빨리 죽음을 맞이한단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치매를 겪는 이들의 마음이다.

 

이 책은 치매가 어떤 병인가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치매가 진행되는 과정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을 알려주고 실제 환자들이 치매를 살아가는 모습도 사려 깊은 눈으로 바라본 것을 토대로 다양하게 실어놓고 있다. 치매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불행한 삶을 알리는 것은 아니며 마음을 나누면서 여러 통로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치매가 무엇인지 묻지 말고 치매 노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물어라. 그러면 치매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으면서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들을 인식하게 된다"고 말하다. 이것은 치매를 앓는 사람의 병보다 치매를 앓는 사람의 마음을 먼저 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치매를 앓으면서 다 상실되어 가는 가운데 끝까지 남는 것은 '마음(감정)'이란다. 하니 정서적인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는 뇌리에 남지 않지만 감정은 축적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치매를 앓는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나 그 어떤 사람들이라도 어떤 태도로 환자를 대해야 하는지 저자의 심중을 읽을 수 있다. 치매를 앓는 사람은(일본) 65세 이상 노인의 4~6% 정도라고 한다. 이 비율은 나이를 먹으면서 증가하는데 85세를 넘으면 4~5명 중 한 명이 치매를 앓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85세를 넘어도 4명 중 3명은 치매를 앓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매의 진행과정은 개인마다 매우 다르단다. 몇 년 지나면 언어능력을 상실하고 누워만 지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치매가 서서히 진행되지만 10년 이상 혼자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젊었을 때 치매가 발병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진행이 빠르다고 한다.

 

30대나 40대에 치매가 발생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때 발병한 사람은 아무리 공들여 치료를 해도 증세가 그다지 호전되지 않았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하지만 80대에 치매가 발병해 90대까지 격렬한 진행 없이 건강하게 지내다가 천수를 다한 사람도 간혹 있단다. 대체적으로 치매는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눈다. 초기엔 건망기로 기억장애가 두드러지고, 중기는 혼란기로 방향감각 장애가 명백해진다고 한다.

 

한마디로 행동장애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말기는 자리보전기로 보행장애, 실금, 음식물을 못 삼키는 등 신체적 문제가 중심이 된다고 한다. 치매가 깊어지면 가까운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되고 아들이라도 가끔 만나거나 하면 '저 사람이 누구더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결국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고 한다.

 

하지만 항상 옆에 있는 사람은 어떤 관계인지 모르게 되어도 '이 사람은 날 보살펴주고 있는 사람'이라든가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단다. 즉 유대감에 뿌리를 둔 감정만은 남게 된다는 것이다. 치매가 더욱 진행되면 말이 없어지기도 한단다. 치매를 앓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도 함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에 더 어렵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절감하게 된다. 늙는다는 것은 가정에서 하던 역할을 상실하고 여러 가지 상실을 거듭 체험하면서 결국 다른 사람을 보살펴왔던 사람이 일방적으로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 된다. 이것조차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일본의 사상가이자 문예비평가인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노화가 생리적으로 찾아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살이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별다른 특별함도 개성도 없다...그러나 인간이 늙는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거기에는 사람마다 너무나 다른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진정한 의미에서 늙는다는 것은 저마다 독특하고 은밀하게 연기하는 내면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것은 치매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상태, 즉 마음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돌봄 현장에서는 몸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2008.9.21)을 준비하면서 '치매가족협회'가 수년간 내세우고 있는 슬로건인 '치매에 걸려도 마음은 살아있다', '치매에 걸려도 살 수 있는 사회를!'은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기도 하단다.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날이 갈수록 치매발병률이 높아만 간다. 특히 65세 이상의 고령자에 있어서 치매환자의 비율이 전체인구의 8.4%를 차지한다고 하니 인구로 따지면 약 42만 명 정도가 치매환자라는 것이다. 특히 20년 후에는 점점 더 고령화 사회가 되어 100만 명 이상이 치매에 걸릴 것으로 추산되며, 특히 85세 이상은 '반수' 이상이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한다.

 

치매는 피부에 와 닿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치매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기를 원한다면 치매를 앓는 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둘러싼 에피소드들과 더불어 치매노인들과 함께 하면서 이론과 경험으로 녹아 낸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치매를 산다는 것](오자와 이사오 지음/이근하 옮김/이아소), 2009년 6월 10일 발행

2009.09.24 15:54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치매를 산다는 것](오자와 이사오 지음/이근하 옮김/이아소), 2009년 6월 10일 발행

치매를 산다는 것

오자와 이사오 지음, 이근아 옮김,
이아소, 2009


#치매를 산다는 것 #치매 #고령화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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