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순
말만 "엄마 도와줄까?"... 접시 들고 TV 앞으로 가는 아들그런 아들에게 올해 초에 한 가지 숙제를 내주었다. 결혼은 됐고, 여자 친구만이라도 올 안으로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아들도 그때는 나름대로 괜찮다 싶었는지 그런다고 하더니 만 아직까지 함흥차사이다. 요즘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되레 "독립한다!"고 으름장을 놓아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는 명절 때만 되면 실컷 자다가 일어나서 "엄마 내가 도와줄 일이 뭐 없을까?"하고 슬슬 주방으로 나오곤 한다. 그땐 이미 내가 일을 다 마쳤을 때다. "이제 와서 그런 말하면 뭐하니? 엄마가 다 했는데"라고 하면, 아들은 껄껄 웃으면서 부쳐놓은 전을 접시에 담아 또다시 TV 앞에 앉기가 일쑤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추석에도 영락없이 혼자 장보고 음식 장만까지 다해야 할 것 같다. 명절마다 되풀이 되는 일. 기제사 때에는 3가지의 전을 부치고 세 가지 나물을 무치지만 명절이다 보니 고사리, 도라지, 숙주, 시금치, 무나물 등 5가지를 무치고, 전도 마찬가지다. 산적, 조기, 탕 등 차례 음식 외에도 딸과 사위, 손자, 동생과 올케, 조카 등 손님들이 오면 먹을 찌개와 반찬 등 손길이 이만저만 많이 가는 게 아니다. 명절 음식은 여기저기에서 충분히 먹었을 테니 칼칼하고 얼큰한 음식을 몇 가지 더 장만해야 한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간단하게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차례 상차림을 하고 나면 왠지 초라하고 먹을 것도 없는 것 같아 식구들한테 괜히 미안해진다. 해서 이왕 하는 거 푸짐하게 하자로 다시 바뀐 것이다.
내 나이 곧 환갑... 내년에는 꼭 결혼해라, 아들!그래도 명절 연휴동안 혼자 주방에 들어가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일이 좋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제 겨우 시장 두 번 갔다 오고, 추석김치만 담가 놓은 것이 전부인데 온 몸이 여기 저기 쑤시는 것 같고, 벌써부터 지친다. 앞으로 할 일은 태산만큼 남아있는데. 나 홀로 명절음식 만들기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 이번 명절에는 아들아이가 도와주려나.
그나저나 아들아, 부탁이 있다. 엄마 나이 내일 모레면 환갑이다. 이젠 기운도 빠져서 예전 같지 않단다. 엄마친구 아들이 너보다 두 살이나 어린데 결혼하는 것을 보니깐 어찌나 부럽던지. 하니 올 추석에는 네가 많이 도와주고, 내년에는 꼭 결혼해서 명절에 음식도 같이 만들고 말동무 할 예쁜 처자 한 명 만들어다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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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올 추석에도 나 혼자 차례상 차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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