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9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노무현의 가치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유성호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말문을 닫고 지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4개월 만에 대중 앞에 섰다.
유 전 장관은 29일 '노무현 시민학교' 특강 마지막 강사로 나와 '노무현 가치,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사생취의'(捨生取義: 의를 얻기 위해 목숨도 버린다)라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며 '노무현 정신'을 설명하면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화를 강조했다.
유 전 장관은 특유의 직설화법은 피한 채 <맹자>와 소스타인 베블렌의 <유한계급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등의 고전들에 기대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였다.
"노무현의 생사관이나 인생관은 맹자와 가장 통한다"먼저 유시민 전 장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무엇이 있다면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며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 '의를 위해서 생명도 버릴 수 있다'는 뜻의 사생취의(捨生取義) 혹은 사리취의(捨利取義)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사생취의'나 '사리취의'는 <맹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전에는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둘을 모두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유 전 장관은 '사생취의'나 '사리취의'야말로 "노 전 대통령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하나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유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생사관이나 인생관은 맹자와 가장 통한다"고 평가한 뒤, "그는 1980년대 부림사건을 맡기 전까지 아주 세속적인 변호사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랬기 때문에 더욱 훌륭해 보인다. 한번 세속의 맛을 알고 나면 의(義)를 위해 이(利)를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돈과 출세, 지위 등이 주는 안온함을 먼저 맛본 사람이 의를 위해 떨치고 나서는 일은 드문 일이자 위대한 일이다."
특히 유 전 장관은 이런 관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해석했다. 즉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의를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
이어 유 전 장관은 "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의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헌법에 그 대답이 나와 있다"면서 자유, 복지, 평등, 사회정의, 평화, 안전, 환경보호 등을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서 추구해야 할 최고목표이자 가치"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지향했던 '사람 사는 세상'은 바로 이런 가치를 골고루 실현하는 사회를 말한다"면서 "내가 본 비공개 자료에 의하면 '사람 사는 세상'이란 말은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로 시작하는 '어머니'라는 노래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당사에 노무현 사진 거는 게 노무현 정신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9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노무현의 가치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유성호
이어 유 전 장관은 양나라 혜왕이 맹자의 방문을 반가워하며 "나에게 이로움이 있겠다"고 말한 대목을 상기시키며 이명박 정부가 의보다는 이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 전 장관은 "지금은 대통령에서 평범한 시민까지 이(利)를 논하는 시대"라며 "국가지도자는 가치와 도덕을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들어봤나? 5년 전 민주당 연설을 보면 국가통합, 정의, 평등 등의 가치를 얘기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지도자의 발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가치를 얘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치를 얘기하는 대통령에 익숙하지 않다."이 대목에서 유 전 장관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그는 "대통령부터 평범한 시민까지 이익을 논하는 사회는 건전하게 발전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지금 대한민국은 퇴락의 길로 가고 있다"고 이명박 정부를 겨냥했다.
유 전 장관은 "이런 때일수록 사생취의 정신이 귀하게 다가온다"며 "(그런 점에서) 돌아가신 분이 더욱 그립다"고 노 전 대통령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특히 유 전 장관은 민주당에도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그는 "민주당의 경우도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민주당 지지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익이 아닌 의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이익단체처럼 의는 추구하지 않고 이익만 추구하기 때문에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말로만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 당사에 노 전 대통령 사진 건다고 노무현 정신 계승하는 게 아니다. 의와 이가 충돌할 때 의를 추구하는 모습을 되돌아봐야 한다. 전직 의원이 '노무현 정부가 경제에 무능해서 이명박 정부를 만들었다'고 했다. '진보는 무능하다'는 것은 조중동의 논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세력이 무능하다는 그릇된 고정관념을 확산시켜 자기 발에 족쇄를 채우는 일이다." 이어 유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비석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라고 적혀 있다"며 "이것에 '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의 답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의를 이루는 방법' 즉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방법'으로 ▲깨어 있는 시민이 더 많아지도록 하는 일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을 조직하는 일 ▲조직된 시민의 힘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일을 제시했다.
"최대주의는 진보진영의 연대를 가로막는 사고방식"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9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노무현의 가치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유성호
유 전 장관은 개혁진보진영의 최대 문제점으로 '최대주의'(Maximalism)를 들었다. 그는 "어느 지점에선가 중대하다고 생각하는 차이점이 생겼다고 해서 마치 적을 대하듯 하는 '최대주의'에 빠지면 의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연대와 협력관계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가치를 추구하는 진보진영 쪽에서는 내부 다툼이 심하다"며 "현실을 추종하는 세력이 아니라 이상을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은 냉소적인 표현이다. 진보는 연대의 기술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연대해야 할 때가 많은데 연대를 잘 못하는 것이다. 연대를 막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최대주의다."유 전 장관이 "미군 주둔을 인정한다면 용산보다 평택에 (미군 기지가) 있는 게 더 나은 대안"이라며 "대추리 문제를 가지고 '진보의 적'이라고 하니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또한 유 전 장관은 친노신당을 "정치의 문법, 구조, 풍토가 썩은 문짝이라고 생각해 힘도 없는 사람들이 그 문짝을 차고 있는 곳"으로, 시민주권모임을 "정치적으로 친가와 외가가 노씨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비유했다.
유 전 장관은 "노씨인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노씨라고 세게 주장하는 사람들, 문짝을 세게 차는 사람들이 신당"이라며 "같이 (문짝을) 차고 싶은 게 제 심정인데 같이 못 차고 있다"고 우회적 지지를 내비쳤다.
"(내가) 도울 일이 없겠냐고 했더니 시도당 창당할 때 강연이나 해달라고 하더라. (나와 친노신당의 관계는) 그런 정도다. 나는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제 마음 속에는 붉은 심장의 설렘이 있다. 실패할지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문짝을 걷어차는 설레임이 있다. 하지만 다른 정당들이 하는 것은 확신도 없고 최소한의 설렘이나 감동도 없다."유 전 장관은 "정치는 이상주의 운동의 한 형태이고 이상을 조직하는 사람에게는 이상의 향기가 있다"며 "기존 정당은 향기를 뿌리기만 하지 그런 향기를 맡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29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최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참석자들이 '노무현의 가치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에 관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유성호
"정치인으로서 다시 일을 찾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 선택이 놓여 있다"한편 유 전 장관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 "지금으로서는 보궐선거나 지방선거에 후보로 나설 생각도 없고 대구에서 재도전할 계획도 없다"면서도 "전 지금 정치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결정도 못하고 있다"고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
유 전 장관은 "정치인으로서 다시 일을 찾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선택이 저한테 놓여 있다"며 "어디서 출마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 전 장관은 '언제까지 고민할 거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을 받고 "제 내면의 확신이 없으면 안 한다"며 "내면에 확신이 설 때 일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유 전 장관은 최근 책으로 펴낼 <청춘의 독서> 원고를 탈고했으며, 이후에는 비공개자료 등을 활용해 노무현 전 대통령 평전 집필에 들어간다. 그가 쓰는 노 전 대통령 평전은 내년 서거 1주기 전에 나올 계획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오지심(羞惡之心)이 강한 분" |
유시민 전 장관은 강연이 끝난 뒤 진행된 질의-응답시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혼의 수줍음이 많은 분"이라며 "특히 자기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는 수오지심이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평했다.
이러한 평가의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의 첫 자서전인 <여보 나 좀 도와줘>가 부당한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시작하거나, 최근 출간된 미완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도 필통 빼앗은 얘기로 시작하는 것을 들었다.
유 전 장관은 "수오지심이 강하기 때문에 시비를 가리려고 한다"며 "이것 때문에 밖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시비지심이 강한 것처럼, 만날 따지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불공정하게 다루었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대검 중수부는 자기들이 한 일을 돌아봄으로써 자기 영혼을 구원받길 기원한다"고 꼬집었다.
유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고 하다가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지척거리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숭상하는 <성서>에 정치적 경쟁자를 죽이라는 얘기는 없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뉘우치고 회개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며 "이 대통령도 맘이 불편할 텐데 그분이 자기가 믿는 신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유 전 장관은 이해찬 전 총리를 "멘토이면서 큰형님 같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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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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