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생겨도 맛 있는 단감

등록 2009.10.10 16:15수정 2009.10.1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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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부터 한 주 내내 어머니는 토요일에 감을 따야 한다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U-20 축구를 보고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일찍 일어나 어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감 딴다고 한 주 내내 전화를 할 정도이면 감나무가 많을 것 같지만, 여섯 그루 정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쉰 그루가 넘었지만 우리 가족 먹을거리만 남겨 두고 다 베어 냈습니다. 축구때문인지 잠깐 잠을 잤는데 어머니와 아내는 이미 감을 따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갈쿠리로 나무가지를 잡아 주고, 며느리는 단감을 땁니다.
시어머니는 갈쿠리로 나무가지를 잡아 주고, 며느리는 단감을 땁니다.김동수
시어머니는 갈쿠리로 나무가지를 잡아 주고, 며느리는 단감을 땁니다. ⓒ 김동수

 

"아가 내가 가꾸리(갈쿠리의 경사도 토박이말)로 가지를 잡아 줄 거니까. 감은 네가 따라."
"어머니 안 잡아 주셔도 딸 수 있어요."
"높아서 안 된다. 내가 가꾸리로 잡아 주면 쉽다 아이가."

 

시어머니는 갈쿠리로 가지를 잡아주고, 며느리는 감을 따고 참 아름다운 모습니다. 아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좀 특별합니다. 문안 인사를 며느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가 할 정도로 아침마다 전화를 주십니다. 아이들 셋 산후 조리를 어머니가 하셨는데 먹고 싶다는 것은 다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농약을 치라꼬 해도 안 친다 아이가. 단감 한 번 바라 잘 생긴 것이 하나도 없다 아이가."
"어머니, 서방님이 농약을 안 치는 이유는 바쁘고, 농약을 많이 치면 몸에 안 좋기 때문이에요. 농약을 안 친 단감이 더 좋아요."

"그래도 농약을 좀 치면 이렇게까지는 안 될 거다."

 

동생은 농약을 안 칩니다. 고추도 농약을 안 쳐 겨우 우리 가족 먹을 양념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단감을 보면 벌레가 파먹고, 씨알이 작습니다. 흠이 있는 감을 보면서 약을 한 번쯤은 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잘생긴 단감이 없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잘생긴 단감이 없습니다김동수
농약을 치지 않으니 잘생긴 단감이 없습니다 ⓒ 김동수

 

"재작년에 내가 이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아이가."
"나무에 올라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 드려도 기이어 올라가서 떨어졌잖아요."

"내가 안 올라가모 누가 감을 따노."

"아니 우리도 있잖아요."

"너희들이 있어도 감이 보이는데 우짜노."

 

 어머니께서 지지난해 가을 이 단감나무에 올라가 단감을 따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쳤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합니다.
어머니께서 지지난해 가을 이 단감나무에 올라가 단감을 따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쳤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합니다. 김동수
어머니께서 지지난해 가을 이 단감나무에 올라가 단감을 따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쳤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합니다. ⓒ 김동수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들이 다 그렇지만 눈 앞에 보이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부모님은 몸이 아파도 자식들을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시는데 자식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두 해만에 어머니는 감나무에 오르고 싶어도 오를 수 없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 아들이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땁니다. 감을 따는 아들을 보면서 그래도 어머니는 걱정입니다. 갈쿠리를 지팡이 삼아 행여나 아들이 감나무에서 떨어질까봐 조심하라는 말이 입에 붙었습니다.

 

 어머니가 올라가지 못하니 아들이 올라가야 합니다.
어머니가 올라가지 못하니 아들이 올라가야 합니다. 김동수
어머니가 올라가지 못하니 아들이 올라가야 합니다. ⓒ 김동수

 

"어머니 감 다 따지 말고, 몇 개는 남겨두죠."

"하모 그래야재. 감을 다 따는 것이 아니다. 남겨 두모 새들이 와서 먹는다 아이가."

"우리 엄마 정말 마음이 넉넉한 분이다."
"사람이 욕심이 너무 많어모 안 된다. 사람끼리도 나누어 먹어야 하지만 짐승하고도 나누어 먹을 수 있어야 하는기다."

 

감을 몇 개 남겨두었습니다. 남은 감과 파란 하늘을 보니 정말 아름답습니다.

 

 붉은 색 단감과 파란 하늘 참 아름답습니다
붉은 색 단감과 파란 하늘 참 아름답습니다김동수
붉은 색 단감과 파란 하늘 참 아름답습니다 ⓒ 김동수

 

"약을 좀 쳤으면 그래도 먹을 것이 있을 것인데 어쩔 수 없다."

"어머니, 농약을 안 친 단감을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사람들이 많아요. 서방님 때문에 우리는 진짜 친환경 단감을 먹을 수 있어요. 마음 아파 하지 마세요. 못 생겨도 맛만 있어요. 오늘 어머니하고 감도 따고 재미 있었어요. 우리는 이런 감을 먹는데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네 시동생이 고생이 많다. 시동생하고 동서에게 항상 감사해라."

"서방님과 동서한테 항상 고맙지요. 우리가 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감을 다 따고 바구니에 담으니 먹을만 합니다. 아내가 감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오늘 딴 감은 일주일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내에게 한 번씩 당신 나하고 결혼해서 먹는 것 때문에 굶는 일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 아내는 웃기만 합니다. 올해 감나무 농사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단감입니다.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단감입니다.김동수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단감입니다. ⓒ 김동수

 

2009.10.10 16:15ⓒ 2009 OhmyNews
#단감 #무농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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