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노예', 죽음과 부상은 소방공무원의 일상

이제 언론과 국회가 소방관에 관심 기울일 때

등록 2009.10.14 09:32수정 2009.10.14 11:03
0
원고료로 응원
'자나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유명한 화재 구호다. 하지만 화재를 겪은 후에야 불의 무서움을 알듯, 소방관의 일상은 나와는 무관하다. 큰 화재나 참사, 또는 소방관의 죽음이 있기까지 소방은 대개 언론의 관심 밖이다.

지난 9일 소방방재청 국감은 소방에 대한 홀대를 여실히 드러낸다. 당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방방재청 국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질의를 갖고 중앙 119구조대를 시찰할 계획이었다. 짧은 시간 제대로 된 정책질의나 대안이 나오지 못할 것은 뻔했다.

하지만 여ㆍ야 의원들 간의 격돌로 인해 오후 4시에야 국감이 시작됐다. 시찰 계획은 취소되고, 약 3시간 만에 모든 질의가 종료됐다. 심지어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경남도당 정당 선거사무소 개소식으로 발길을 옮겨 국감에 불참하는 일마저 있었다.

언론도, 국회도 소방에 무관심하다.

"소방관 사고 줄이기 위한 발명은 우리 젊은 공학도들이 해야 할 일"

 '압사방지 소방관복'을 발명한 유찬우 학생의 프리젠테이션 첫화면
'압사방지 소방관복'을 발명한 유찬우 학생의 프리젠테이션 첫화면김희철 의원실

"화재진압 소방관의 사고가 안타까워 만들었어요."

지난 8월 12일 제8회 대학발명경진대회에서 '철골구조를 지닌 압사방지 소방관복'으로 교과부장관상인 금상을 받은 전북대 유찬우 군의 말이다. 이 작품은 납작한 모양의 산소통과 철골구조로 몸통을 보호하고 건물붕괴 등 비상시 산소통의 압력으로 피스톤을 밀어내 탈출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2008년 11월 소방방재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소방공무원 순직 원인으로는 화재 현장에서 건물 일부가 붕괴해 매몰되는 경우가 16건(30.8%)으로 가장 많았으며, 화염으로 인한 질식 8건(15.4%)이 그 뒤를 이었다. 이 발표가 유 군이 '압사방지 소방관복'을 발명하게 된 계기다.

그는 프리젠테이션 맺음말에서 "소방관 분들의 보살핌을 받는 국민된 도리로 그들의 마음의 화재는 우리가 꺼드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참담하고 비참한 사고들을 줄이고 없애는 것이, 우리 젊은 공학도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순간 부끄러워졌다.


'소방노예'라 스스로 이름짓는 소방공무원의 아픔

화재를 진압해야 하는 소방관은 '강렬한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이들에게 죽음과 부상은 일상이다. 작년 8월 은평 나이트클럽 화재진압과 같이 3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참사가 없었기에 보도되지 않을 뿐 지금도 소방관의 일상 속에 부상이나 순직의 위험성은 비일비재하다.

"어제(20일) 또 한 명의 소방관이 우리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광주소방본부 동부소방소 학운119안전센터 이철권 소방교님! 부디 저 세상에서는 '소방노예'라는 소리 듣지 않는 곳에서 고이 영면하시기를(2008년 7월 21일 소방발전협의회 성명서)."

 연도별 소방공무원 순직 공상자
연도별 소방공무원 순직 공상자김희철 의원실

김희철 의원(관악을·민주당)이 소방방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3~2008년 43명의 소방관이 숨졌다. 다친 사람은 1,892명에 이른다. 매년 7~8명이 목숨을 잃고 310여명이 부상을 입는 셈이다.

연도별 순직자는 2003년 7명, 2004년 8명, 2005년 6명, 2006년 6명, 2007년 7명, 2008년 9명이었다. 부상자는 2003년 360명, 2004년 327명, 2005년 291명, 2006년 298명, 2007년 279명, 지난해 337명이었다.

소방관의 고통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소방관들은 각종 재난 현장에서 참혹하게 훼손된 사체를 수습해야 하는 등 충격적인 상황과 자주 접한다. 더욱이 지난 은평 나이트클럽 화재 당시와 같이 동료 소방관이 바로 옆에서 순직했을 때 발생하는 엄청난 충격과 실의가 더해진다면 그들이 받는 정신적 충격의 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최근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퇴직한 소방관의 사망으로 인한 연금수령중단연령이 58.8세로 모든 공무원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장비도, 근무여건도 열악하기만 한 소방공무원

불길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소방관들의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개인 보호 장구다. 하지만 필수 장비로서 최소 5년마다 교체해야 하는 방화복조차 제대로 교체되지 못하고 있다. 소방차량 역시 30%는 내구연수가 경과했다. 일선 소방서는 지자체 관할이라 화재진화장비 구입에 중앙정부의 지원이 전무한 탓이다.

중앙정부 차원의 소방장구 첨단화 역시 마찬가지다. 소방방재청은 2007년부터 5년간 '호흡용 청정공기 충전기 개발' '개인안전 첨단장비 기술개발' 등을 위해 연구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예산은 2007년 25억 원, 2008년 27억 원에 그쳤다. 2008년 국가 연구개발분야 예산 10조 8000억 원 중 겨우 0.025%에 불과한 규모다.

장비만이 아니다. 소방관의 근무여건 역시 열악하다. 소방공무원은 현재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공무원 조직 중 유일하게 24시간 맞교대 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경찰과 교정직 공무원은 이미 몇 년 전부터 3교대 근무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제는 3교대를 넘어 이보다 더 발전된 형태인 4조 2교대로 대부분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소방관의 충원은 늘고 있지만 근무체제는 여전히 3교대와 거리가 멀다.

'3명 중 2명'인 61%에 달하는 16,020명의 소방대원들은 여전히 2교대를 하고 있으며, 관할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화재, 구조, 응급처치 등을 소방관 혼자서 처리하는 이른바 '나홀로 소방서' 역시 전국적으로 444개소나 된다.

"소방에 입문한 지 13년 6월여. 24시간 맞교대근무에 시도때도 없이 해대는 휴무(비번)날 근원 누가 견뎌내겠는가? 이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24시간 맞교대라는 살인적인 근무형태와 대가 없는 무분별 동원, 어느 누가 견디어낸단 말인가? 24시간 맞교대 근무에 자신도 모르게 죽어가는 이들이 왜 '현대판 노예'와 '비정규 공무원'이라 불리는지 정녕 모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2008년 7월 21일 소방발전협의회 성명서)

소방공무원 처우 개선 및 소방장비 개선 계기 되기를

그래서 유찬우 씨의 '압사 방지 소방관복' 발명품 소식이 더욱 반가웠다. 소방관 순직이라는 참사가 발생할 때면 의례 소방장비의 개선과 함께 인력 충원계획이 발표돼 왔다. 하지만 그와 같은 계획은 여전히 예산과 비용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지지부진했다. 결국 인명구조 과정에서의 위험부담은 온전히 소방관들만의 몫으로 남겨졌다.

"나는 '소방관의 기도'를 읽을 때마다 엄숙해진다. 시적 어귀로 표현된 소방관의 임무가 가슴을 파고들며 불기둥 속에 숨져간 소방관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소방관의 영결식장에서 우리는 그들의 삶과 죽음에 감동하며 흐르는 눈물을 참기 어렵다.(최철주, 「해피 엔딩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300면)"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도 24시간 근무제로 고생하고 계실 소방공무원에게 글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유찬우 군의 말처럼 "소방관 사고를 줄이기 위한 발명은 우리 젊은 공학도들이 해야 할 일"이라면, 소방행정을 주목하여 그 장비와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언론과 국회가 할 일이다.

'압사 방지 소방관복'이 언론과 국회의 소방행정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기를, 소방관의 순직이라는 비극을 접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장비 개선과 근무여건 개선의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압사 방지 소방관복 #소방공무원 #유찬우 #김희철 #국정감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은 선도 악도 아닌 그저 삶일 뿐입니다. 경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이념 역시 공리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