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료와의 싸움, 이 말을 꼭 했어야 하는데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스님께 여쭸다.

등록 2009.10.14 16:07수정 2009.10.14 16:0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난생 처음 방송국이란 곳에 갔다. 그것도 방청을 위해서가 아니라 초대손님으로...<엄마헌장>이란 책을 내고 나니 여기저기서 부른다. 여성지에서 세 번 인터뷰 해간데 이어 ebs 라디오 방송에서도 불렀다.


승낙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했다. 떨리기도 하고 긴장도 돼서 안갈까 하다 가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미친 교육에서 제발 다른 교육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방송을 끝내고 나서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을 절반도 못했다. 시간이 너무 없어서...

MC가 두 가지 질문만 더 하고 끝내야 할 시간이라고 했을 때 짧은 시간 안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위한 질문을 골라야 했다. 

그래서 고른 것이 딸의 사춘기를 바라보며 어떻게 극복했는지와 농민들이 쌀이 남아 돌아 갈아엎는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으로 굶어죽는 북한동포에게 대북지원을 하자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두번째 것은 잘렸다. 너무 민감한 사항이고, 자녀교육프로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MC의 말이 맞기도 하지만 난 이렇게 말할 작정이었다. "좋은 대학 나와서 판검사 하고 그 사람들이 국회의원 돼서 하는 일이 쌀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굶어죽는 자기 동포는 살릴 수 없다, 라고 하는 인간을 만들 거면 아이들 공부를 안시키는 것이 낫다"라고요. 어차피 생방송이었는데 확 내지르고 볼 걸 그랬나.^^

나도 말을 아주 잘했을 때가 있었다. 정말 한 때. 그 때는 누구와 토론하는 것이 무척 재밌고 즐거웠다. 왜냐면 남들은 나보다 말을 잘 못했기에 내가 제압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는데 지금은 말을 잘 못한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지금이 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말을 잘했다고 생각하는건 실제로 착각이다. 왜냐?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가지고 끝까지 내가 옳다고 주장했었으니 남들이 할 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말을 잘 못하는 건 좀 성숙해서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펴지는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모르겠다.^^


오늘 질문하는 분은 아마 나같은 직장동료를 만났나 보다. 상대방이 화를 내서 할 말을 다  못해서 억울해 하시는데 내가 대신 사과하고 싶다. 오늘 법문은 내 입장이 아닌 상대 처지에서 듣도록 해야겠다.

질문 

얼마 전 직장 동료와 다투었습니다. 상대방이 화를 내며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나서 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때 이런 말을 해야 했는데….' 하고 바보같은 저의 모습을 후회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황에 맞게 말을 잘할 수 있을까요?

법륜 스님 법문

상대에게 욕을 먹을 때, 또는 어떤 일을 부당하게 당했다고 생각할 때, '그때 내가 이런 말을 해줘야 했는데' 하고 생각이 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지나고 보면 말할 것이 떠오르지요.

적절한 말을 잘하려면 그 상황에 빠지지 마라.

두 가지 조언을 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적절한 말이 그 순간에 떠오르기를 원한다면 내가 그 상황에 빠져들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 순간에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느냐면, 순간 화가 나거나 미워지거나 괴롭거나 불안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고 보이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즉 사로잡히기 때문에 어리석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적절하게 대응을 못 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그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거기에 대응할 것이 떠오르는 거예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바로 그 순간 일어난 사건에 휘말려들지 않으려면 날마다 정진을 하면서 자기 경계에 빠져들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상대가 욕을 하면 내 기분이 나빠지는데 사로잡혀 같이 욕을 하게 됩니다. 상대가 욕을 할 때 '아이고, 기분이 나쁘구나. 얼마나 기분이 나쁘면 저런 말을 할까?' 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상대는 화를 내더라도 나는 화가 나지 않아요.

내가 화가 나지 않으면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절한 아이디어가 나와요. 그런데 나도 화가 나니까 말은 해도 지나고 보면 실수한 것 같지요. 또 실수하기 때문에 말을 안 해버리면 나중에 바보같이 느껴지지요. 그러니 그 상황에 빠져들지 말아야 합니다.

답답한 이유는 이기고 싶은데 못이겼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적절한 말을 해줘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버리세요. 적절한 말을 하고 싶다는 뜻은 이기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때 그 말을 해서 상대의 입을 딱 봉해 버리고 싶은 마음, 이게 바로 이기고 싶다는 뜻이지요. 지금 왜 답답하냐면 이기고 싶은데 못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한테 묻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하면 이기느냐?' 하는 것을 묻는 거예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이기려는 생각을 버리고, 이기려고도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지려는 마음을 내면 그 시간에 아무 생각이 안 나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남을 미워하면 그 사람 만날 자유를 뺏긴다.

이기려고 적절하게 대응하려다 보면 남의 가슴에 못을 박게 됩니다. 내 가슴에 못 박힌 건 내가 깨닫고 뉘우치면 끝나는데, 남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 내가 뉘우친다고 끝이 나지 않습니다. 연애할 때 상대에게 차이고 나면 화가 나지요? 차이기 전에 내가 차버리고 싶지요? 그런데 내가 차버리면 나중에 내가 잘못했다고 느꼈을 때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내가 차이면 내가 놔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현명한 사람은 차이는 걸 좋아합니다. 혹시 지금 연애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일 때까지 조금 기다리세요. 내가 남을 미워하면 내가 그 사람 만날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미움이라는 것은 '너는 이곳에 오지 마라'는 출입금지와 같은 거예요. 내가 어떤 것에도 미움을 갖지 않으면 나는 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고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꾸 감옥으로 만듭니다.

이기려는 생각이 없으면 패배가 없다.

제가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방법은 이기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적절하게 말을 해 주겠다는 그 생각 자체를 버리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 바보 같지 않습니까?"라고 하겠지요? 예, 바보가 좋습니다. 진짜 바보는 바보가 똑똑한 척하려는 것이에요. 똑똑한 척하려니까 힘이 드는 거예요. 그냥 "아이고, 제가 잘못 했습니다" 하고 끝내버리면 돼요. 그러면 적절한 단어를 찾아서 적절한 말을 하려는 그런 머리를 안 굴려도 됩니다. 그렇게 하고, 한번 지나고 나서 돌아보세요. 훨씬 낫습니다. 이기려는 걸 좋아하지 마세요. 지는 것을 패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기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패배지요. 이기려는 생각이 없으면 패배가 아니에요.

나도 사실 아직도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한데. 그래서 남의 말은 안듣고 끝까지 제 주장을 하게 된다. 얼마전에도 한 도반의 말이 맞는데 그걸 수용을 못하겠어서 좀 우겼다. 우기면서 그렇게 말했다.

"법우님 말이 틀린 것은 아닌데 명령조로 말하는게 걸려서 들어주지 못하겠다"고.

예전 같으면 상대 말이 맞아도 속으로 생각하고 겉으로는 내 말이 맞다고 우길텐데 그래도 마음 공부가 몇 년인데 그렇게는 안하게 되고 우기고 싶은 제 마음을 보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무엇이든 물어라 #즉문즉설 #날마다 웃는집 #행복한 출근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2. 2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3. 3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4. 4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5. 5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윤석열·오세훈·홍준표·이언주... '명태균 명단' 27명 나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