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빠른 임신과 생각지도 못한 퇴직

등록 2009.10.15 15:21수정 2009.10.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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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를 받고 오자마자 병가를 내었다. 그 사이 새 직원을 뽑는 공고가 나갔다. 기관장의 이동과 부서장의 영전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한 사이의 직원충원공고라 내심 반겼다. 그러나 딸 또래의 여직원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결혼식을 올린 직원이라서 보기만 해도 상큼한 신부티가 났다. 부서장에게 물어보니 몸이 안 좋아 일주일 휴가를 내었다고 한다.


그녀는 시내의 수십 군데의 연계기관의 교육을 담당해 유독 외근이 많았다. 그래서 내 딸이 그랬던 것처럼 심한 감기몸살인가보다 생각을 했다. 필요한 업무와 잔잔한 정을 나누는 그런 소통은 못 들어도 사람과 사람의 교감에서 충족된다. 그러나 가끔 가다가 모두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정보들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의 경우가 그랬다. 새직원을 뽑는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알고 보니 결혼한 여직원이 결혼하자 마자 임신을 했고 입덧이 심해 그만두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그만 둔 것이 의아했다. 왜냐하면 아직 창창한 20대에다가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핼쑥한 그녀는 우리가 보는 데서 입덧하는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그러나 여린 신체특성상 임신초기 많이 움직이면 유산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 2-3개월 쉬었다 복귀할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하루 수백 명, 그리고 자주 천 명, 이천 명이 참가하는 행사도 자주 하는 기관의 입장에서는 당장 한 두 달이라도 그녀가 없으면 대신 역할분담하기는 역부족이라고 행정과에서 판단해서 사직권고를 했던 모양이다. 산후 3개월의 휴직은 있어도 임신이라고 해서 2-3개월의 휴직은 내부규정에 없다.

수십 명의 경쟁을 물리치고 새로 채용된 직원은 혈기왕성한 씩씩한 젊은 새내기 청년이다.
아직 어려서 가족계획을 채 하지 못한 채 빠른 임신을 한 그녀는 생각지도 못하게 퇴직도 하게 되었다. 그녀를 보는 미혼여직원들은 서로 말을 삼가지만 결혼이나 임신은 잘 조절하지 못하면 바로 퇴직으로 이어진다는 눈치를 가지는 것 같았다.

어제 딸이 갑자기 문자를 보내왔다.
"참 살기 힘든 세상이야! 엄마는 내년 근무가 어떻게 될 것 같아?"
"아직 2개월 지나봐야 알 것 같아! 갑자기 왜?"
"내년에 계속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면, 엄마가 일하는 곳에 대한 소속감과 쏟은 열정과 사람들과의 교감은 뒤로 하고 대안을 서둘러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


딸과 함께 2년 전에 입사한 동기가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데 갑자기 어제 해고통지를 받은 모양이다. 특별히 잘못 가르치거나 학생들과 학부모와의 관계나 동료사이에 불협화음은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잘 가르치거나 새로운 학생을 끌어오는 그런 친화력도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 자리에 표나지 않게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좋게 보면 안정감을 주지만 공기관이 아닌 사기관에서는 아마 비전을 읽지 못했는지 아니면 30세가 꽉 찬 나이에 곧 결혼을 하고 준비하지 않은 시기에 곤란해질까봐 미리 선수를 쳤는지 운영자의 마음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딸은 그런 상황을 보고 남의 일이 아닌 자신과 나의 일과도 연계를 했던 모양이다.
정규직이란 법안에서도 해고가 곧잘 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계약직이나 임시직인 나나, 경험상 거치기 위해 사교육기관에 들어간 딸이나 앞날이 불투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오지 않은 내일의 일을 가지고 오늘 너무 걱정하느라 시간보내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고 딸에게 이야기했다. 오늘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가능한 많이 웃고 지내고 하루 세 끼 아닌 두 끼라도 잘 먹었다면, 내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80%가 된다.

내일 먹을 쌀이 없고 등록금이 없더라도 돌아가신 엄마는, 오늘 별 수가 없더라도 부지런히 발품과 손품을 팔면, 내일은 분명히 더 나아진다는 믿음을 갖고 사셨다. 그래서 엄마는 집에 된장과 간장을 퍼다 팔아서 국수로 일주일 내내 끼니를 때우고 사는 날이 있었어도, 결국에는 서울의 대학에 다니는 오빠들을 졸업시키셨다.

퇴직을 한 같이 일하던 딸 뻘 되는 여직원은 분명히 그녀만큼 해맑은 예쁜 여자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딸과 함께 일하던 아가씨도 또 다른 교육조직에서 누군가의 눈에는 무미건조하게 보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하면서 젊음을 보낼 것이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그 길은 고갯길이 되기도 하고 망설이는 갈래길이 되기도 한다. 인생이기 때문에... 
#임신과 퇴직 #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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