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부모가 하고 싶은 것

웬수 같은 자식, 마녀 같은 엄마 ⑪

등록 2009.10.16 15:12수정 2009.10.1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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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고도 의미심장한 실험 결과가 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4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행한 것으로, '마시멜로 실험'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마시멜로는 미국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과자 이름이다. 그 실험에 참가한 네 살배기 아동들에게 맛있는 마시멜로 과자를 하나씩 나누어 준 다음, 15분간 그 과자를 먹지 않고 참아 낸 사람에게는 포상으로 한 개씩을 더 주겠다고 했다.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 중 3분의 2는 끝까지 참고 기다림으로써 과자를 하나씩 더 받은 반면, 나머지 3분의 1은 15분간을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과자를 먹어 치웠다.

14년의 세월이 지난 뒤 연구팀은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의 행적을 조사해 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 당시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 낸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아는 정신력과 함께 사회성이 뛰어난 청소년들로 성장해 있었던 반면, 15분을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어 치웠던 아이들은 쉽게 짜증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곧잘 싸움에 말려드는 등 문제 성향을 지닌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14년 전의 사소한 선택이 삶의 길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보여 주었다.

사람은 일평생 선택을 하면서 산다.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처럼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고민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가 우리 삶의 성공 여부(사느냐, 죽느냐)를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선택의 집합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매 순간 행한 선택들이 모여 내 삶의 모양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우리가 행한 그 숱한 선택들이 올바른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당연히 자기 아이에게 어느 쪽이 올바른 선택인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고 싶을 것이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경쟁력이라 믿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라고 해서 항상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누구에게나 공부는 해야 할 것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있다. 당장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을 때 우리는 즉각적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쉽게 하고 싶은 것 쪽으로 기울려 한다.

단군신화에 보면 호랑이와 곰이 등장한다. 둘 다 사람이 되기를 원했지만, 곰만 사람이 되었다. 그 둘의 차이는 바로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중 어느 쪽을 먼저 선택하느냐에 있었다. 마늘과 쑥을 먹으며 굴 안에서 백날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는 환웅의 지시에 따라, 곰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뒤로 미루고 삼칠일(21일)을 견디어냈지만, 호랑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갔다. 그 결과 곰만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부모의 입에서는 당연히 '공부'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부모가 돈을 벌어 가정 경제를 감당해야 하듯이 아이는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니 부모 입장에서는 '마땅히 해야 할 공부를 먼저 하고, 하고 싶은 게임은 나중에 하기'라는 타당한(?) 규칙을 아이들이 잘 따라 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아이들은 어떨까? 아이들에게도 공부는 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 많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공부는 해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왜 아이들에게 공부는 해야 할 것인가. 부모들이 상상하듯이 학생으로서의 마땅한 의무이기 때문일까.


아이들에게 있어서 공부는 '부모가 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모가 끔찍이도 바라는 것이다. 아이를 공부시키는 것이 부모가 하고 싶은 것이기에, 부모에게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의존 상태에 있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과제인 것이다. 자기 욕구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의무이다.

'아이 공부시키기'는 부모가 하고 싶은 것이다. 부모가 해야 할 것이 아니다. 수긍하기 어려운가? 부모가 해야 할 것은 '아이가 잘 자라게 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전폭적으로 의존하던 단계에서 서서히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단계로 잘 성장해 가게끔 돕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면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지,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하기를 강제하는 것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공부는 누구나 다 한다. 같이 놀면서 배우고, 학교에서 수업도 받고 한다. 문제는 성적(등수)이다. 흔히 공부라고 불리는 성적이다. 남보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부모의 기대가 (부모가 하고 싶은 것이) 문제인 것이다. 공부는 아이가 해야 할 바다. 그러나 성적(등수) 올리기는 아이의 해야 할 바가 아니라 부모가 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경우에서든 부모가 공부 자체를 못 하게 막아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공부할 수 있도록 시간과 돈을 제공하는 것도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남보다 잘 하게 하는 것은 부모의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부모가 하고 싶은 일이다.

해야 할 바(공부: 아이의 성숙)보다는 하고 싶은 것(공부: 성적, 남보다 잘하기)에 집착하느라 부모는 아이와 원수가 된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강변하지만 사실은 부모가 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왜 부모가 하고 싶은 것을 나에게 강요하는가'라는 근원적 의문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어려서야 힘이 없어 끌려다녔을지라도,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서 반항하고 대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아이들도 일상생활에서 종종 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비록 아주 사소한 행동에 대한 선택이지만, 그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는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비싼 비용을 들여 아이에게 어떤 특별한 교육(높은 점수 따기 : 부모가 하고 싶은 것)을 시킬 것인가에 마음을 쏟기보다는, 어려서부터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동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게끔 부모가 솔선하여 본을 보인다면, 부모는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고서도 그 아이의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특별한 능력을 교육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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