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의 가을백담사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발자취와 시의 향기가 그윽한 절이다. 그러나 빼꼭히 들어찬 건물과 괴물처럼 계곡을 가로막는 수심교는 시인의 '나룻배 행인'과 같은 옛날 처럼 호젓한 절집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오균
10월 11일 일요일 낮 12시, 용대리에 도착하니 만원사례다. 공영주차장은 물론 골목골목마다 자동차들이 빼곡히 들어 서 있다. 흠, 서울에 있는 자동차가 다 이리로 왔나? 교통이 마비된 용대리 길에서 넋을 잃고 있는데 어느 노인이 다가온다.
주차를 하려면 자기를 따라오라는 것. 자동차를 겨우 옆으로 빼서 그를 따라 갔다. 골목을 끼어 노인을 따라가니 옥수수 밭이 나온다. 옥수수 밭에 겨우 주차를 하고 한숨을 돌린다. 황태국으로 점심을 먹고 난 후 백담사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러 갔다.
셔틀버스를 타는 길이 길게 늘어 서 있다. 많이도 변했다. 전에는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8km의 흙길을 전에는 늘 걸어서 다녔다. 지금은 도로에 시멘트가 깔리고, 셔틀버스가 다닌 뒤부터는 초입의 걷는 운치는 사라지고 말았다.
하산하는 등산객과 숨바꼭질을 하며 버스는 계곡을 더듬듯 기어간다. 드디어 확 트인 계곡에 고래 등 같은 백담사의 기와지붕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전엔 징검다리를 건너가거나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갔는데 '수심교(修心橋)'라 거대한 다리가 계곡을 가로 막고 있다.
"나는 나룻배/당신은 行人/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엷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경내의 만해 기념관 앞뜰에는 '나룻배 行人'이라는 시비가 행인의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시인은 흙발로 물살이 급한 이 여울을 건너갔으리라.
대청봉에서부터 백 개의 소(沼)가 있는 자리에 세워진 유서 깊은 백담사! 시인의 향기가 그윽한 백담사는 언제부터인가 수심교가 괴물처럼 여울을 가로 지르고, 빼꼭히 들어찬 사찰건물로 들어차 있어 이제 시인의 노래처럼 나룻배 행인의 운치와 한적한 절집 분위기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수심교에는 버스를 타려는 등산객들의 줄이 꼬리를 물고 저 멀리 백담사까지 늘어 서 있다. 버스를 타는 데 2~3시간을 저렇게 서서 기다려야 한다니 기가 막힌다. 좋게 보면 형형색색으로 옷을 입은 등산객들의 움직임이 단풍처럼 보이기도 하다.
대웅전에 들어가 삼배를 하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계곡에는 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돌탑들이 여기 저기 똬리를 틀고 서 있다. 저마다 무슨 소원을 담고 있을까? 돌탑이 세워진 계곡에서 설악산을 바라보니 역시 아름답다. 산은 산! 물은 물! 계곡은 계곡! 단풍은 단풍! 이것이 설악의 아름다움이다.
백담사를 나와 수심교를 건너 수렴동계곡을 오른다. 하산을 하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길. 저마다 스틱을 들고 황급히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군대의 행렬 같기도 하고, 두 개의 스틱을 들거나 배낭에 꽂은 모습은 검객들의 모습을 연상케도 한다. 좁은 길에서는 자칫 잘 못하면, 발에 걸리거나 스틱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님의 침묵은 사라지고 등산객의 발자국 소리와 먼지만 가득한 길. 시인은 백담사와 오세암으로 이어지는 이 숲길을 오가며 도(道)를 깨쳤다고 하는데. 등산객의 흙먼지와 발자국 소리가 어지러운 숲길은 저자거리와 흡사하다.
시인은 이 숲 길을 걸으며 나라와 겨레에 대한 '그리움'으로 노래했다. 그것이 바로 '님의 침묵'에 실린 88편의 작품이다. 등산객들의 군무 속에서 시인의 소리를 듣는다.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그리움을 안고 떠난 시인의 '그리움'이 아직도 뜨겁게 느껴진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