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서습독관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세조 9년의 기사. 의서습독관과 의녀에 대한 상벌규정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는 국초부터 의학관련 인재를 국가에서 관리하였다. 이렇게 100년간 축적된 힘으로 <동의보감>이라는 전무후무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다.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조선왕조의 의서습독관 제도는 일반적인 유학자를 키웠던 습독청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렇게 키워진 인재들이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라는 거대한 의학 서적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
이 책들은 <동의보감>과 함께 조선의 삼대 의서로 꼽는 책이다. 책과 글자의 크기가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조선후기에 양이 많아 내용을 줄여서 여러 차례 간행하였던 <동의보감>이 25권인 데 비해 <향약집성방>이 85권, <의방유취>가 365권이니 정보의 양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학 분야 이외에도 모든 학문분야를 총망라하였으니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학문적 역량이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며, 모두 세종의 사람을 만드는 정책의 힘이었던 것이다.
국립암센터는 한의사 안 뽑고, 서울대는 한의학과 설치 거부자동차 산업이 성장한 것은 현대자동차의 힘인가? 반도체 1위 국가가 된 것은 삼성전자의 힘인가? 일부분 맞다. 하지만 국가에서 도로를 닦아주고 반도체 산업을 지원육성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역사를 쓸 때 한두 영웅의 신화로만 끝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영웅 신화는 역사를 쉽게 만들어주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둬야 할 역사의 교훈은 사라지게 만든다.
17세기 동아시아를 평정한 <동의보감>은 허준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5세기 세종 때부터 계속된 인력양성과 기술축적의 힘이다. 21세기 한의학이 예전과 같은 영광을 찾지 못하는 것을 두고 제2, 제3의 허준이 나오지 않아서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국립대학교나 국립암센터는 누구의 돈으로 운영되는가? 국민이 내는 혈세로 운영된다. 세금은 개인이 하기 힘든 여러 사업이나 학문, 산업을 일으키는 기반 시설에 사용된다. 국립암센터도 국민사망률 1위가 된 암 질환에 대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여 운영된다. 그런데 그 운영체계를 틀어쥔 사람들이 지나친 월권을 하고 있다.
한의학으로 암치료에 참여하겠다, 신종플루 치료에 접근하겠다고 하면 대뜸 한의학으로 암을 치료한 사례를 가져와봐라, 신종플루를 치료한 증거를 가져와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증거를 만드는 과정은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동네 의원이나 사립병의원들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국가에서 암센터를 만들고 국립의료원이나 국립병원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먼저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국가에서 한의학 인재 양성과 연구육성에 힘써야해방 이후 지난 2008년까지 국가에서는 한의과대학을 운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심지어 1994년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정부에서 출연한 한의학 관련 연구기관도 전무하였다. 전국에서 가장 적은 연구비를 지급받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의 한 부서에서 지난 8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작업을 했으니 투자대비 효과는 매우 큰 셈이다.
한의학 설치된 대학교와 그렇지 않은 대학교 |
- 한의학과가 있는 대학교 : 경희대, 원광대, 동국대, 동의대, 대전대, 대구한의대, 세명대, 상지대, 우석대, 동신대, 경원대 등 11개 모두 사립
- 의학과가 있는 대학교 : 서울대, 부산대, 충북대, 충남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 경상대, 강원대, 제주대 등 국립 10개와 사립 27개
- 의학과와 한의학과를 동시에 갖고 있는 대학교 : 부산대학교 1개 국립(2008년 한의학과 설립)
- 한의학과만 갖고 있는 국립대학 : 없음
- 학교 이름만 갖고도 한의과대학의 교육 및 연구 여건이 국립의과대학에 비해 열악할 것으로 충분히 짐작된다. 한의학의 발전을 통해 전세계 대체의학시장을 장학하기 위해서 국가에서는 가장 먼저 한의과대학에 대한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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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의 끈질긴 요구와 사립대학교에 있는 기존의 한의과대학들이 정원까지 감축해주는 대승적인 협조 속에 2008년 국립부산대학교에 한의학전문대학원이 드디어 설치되었다. 고종황제가 한의사를 배출하기 위해 만든 동제의학교(東濟醫學校)가 폐교된 이후 꼭 100년만에 이 땅에 국립한의과대학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의학계는 단 하나의 국립한의과대학만이 설립될 수 있다면 한국 사회에 가장 큰 힘을 갖고 있고 연구 여건도 좋은 서울대학교에 설치해줄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측의 대답은 의대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설치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적극적인 설립의지를 밝혀온 부산대학교에 한의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