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직거래왕산포구 배들이 잡아온 꽃게는 현장에서 직거래 되거나, 활어차에 위탁해 연안부두 공판장으로 넘겨진다.
김창근
포구에는 바다의 깊이와 넓이만큼 헤아릴 수 없는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선미호는 물때를 맞추느라 밤 12시에 바다로 나갔다. 좁은 배 안에서 쪽잠을 자다가 새벽부터 고된 그물 일로 하루를 보내고, 꼬박 스무 시간을 보내고서야 포구로 돌아왔다.
이 선장은 이곳 왕산에서 나고 왕산에서 자랐단다. 바다는 그에게 가정을 이루게 해 주었고, 두 딸을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켜 주었다. 바다에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부지런을 떨면 조금 더 거둔다는 것. 노력을 하면 반드시 그만큼 대가를 주는 바다의 정직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함께 뱃일을 하는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좋은 사람 만났으면 이런 고생 안하고 잘 살았을 텐데. 그게 많이 미안하네요. 매일 힘든 바다일하고 집에 가면 또 집안일 다 하고... 평생을 고생시켰네요."뱃일하는 포구 아낙들의 삶이 다 그런 모양이다. 왕산포구에 들어오는 배들은 대부분 부부가 함께 뱃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어쩌면 바다에는 이런 어머니들의 땀과 눈물이 섞여 있기에 더 애틋하면서 포근한지도 모르겠다.
왕산 뱃사람의 소망지금은 하나의 섬이지만 영종·용유도와 장봉도 사이는 서해안에서도 알아주는 황금어장이었다고 한다. 바로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지금의 인천공항자리는 수심이 낮고 모래와 뻘이 잘 섞인 곳으로 물 흐름도 잔잔해서 물고기들의 산란장이었다는 것이다.
"배 타고 10~20분만 나가면 물고기가 지천이었지요. 공항 들어서기 전에는..." 박창렬 선장이 먼 바다를 바라보며 옛 생각에 젖어 있다. 30여 종에 달하던 어종도 지금은 10여종으로 줄어들었고 고기를 잡으려면 3~4시간은 나가야 한단다.
봄, 가을에는 꽃게 조업이 많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쭈꾸미, 소라를 담아 온다. 봄이면 간재미가 많이 올라오고 여름이면 우럭, 광어, 농어를 잡아 왕산해변에 횟집으로 공급해준다.
"갈수록 힘들어져요. 왔다갔다 예닐곱 시간은 잡아야 하고 바닷일 하고 들어오려면 하루도 짧아요. 요새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고깃배들도 많아서 바다 경쟁도 심해지고..." "변변한 선착장 하나 좀 해줬으면 좋겠소. 옆에 섬은 몇 척 없어도 번듯하게 선착장 만들어줘서 언제든지 출항할 수 있는데, 여기는 배가 30척이 가까운데도 물 빠지면 배가 바다로 나갈 수 없어요." 털보선장이 하소연을 한다.
왕산 뱃사람들은 물때에 관계 없이 언제든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 마련이 그들이 가진 소박한 소망이다. 근동에서는 가장 많은 배들이 접안하는 포구임에도 불구하고 관광지 개발을 위해 뱃사람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배려는 아직 없다. 썰물때도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만 갖춰진다면 싱싱한 활어를 사고 팔 수 있는 어판장도 설 수 있단다. 펄떡이는 활어들과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의 정겨운 흥정소리를 이곳 왕산포구에서 들을 수 있을까?